봄날은 간다. 팔랑팔랑 화사한 꽃눈이 내린다. 마지막 가는 길마저 저토록 찬란한 춤사위로 스스로를 마무리하는 존재가 세상천지 또 어디 있으랴. 봄꽃의 조락은 슬픔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을 버린 그 자리에 알찬 열매를 남기기 때문일 터. 자신의 몸을 던져 만들어내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는 봄날, 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지는 권력을 묵상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지만, 사람이 마지막 가는 모습만큼은 그저 추할뿐이다. 늙어 죽을 때나, 권력을 내놓고 스러질 때나…. MB정권 간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찬다. 시커먼 복마전의 문이라도 활짝 열어 제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부패 사건들이 흉측스런 모습들을 드러낸다. 그마저도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가장 도덕적인 정권? 가장 도둑적인 정권!

가장 ‘도둑적인 정권’에 부역했던 인사들 중엔 언론과 교육계 출신들이 유독 많다. 사회정의와 양심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언론과 교육계가 더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반증일터. 먼저 언론인들부터 살펴보면,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파이시티) 인허가 청탁과 함께 모두 13차례에 걸쳐 8억여 원을 받았다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동아일보 출신이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혐의로 기소된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조선일보 출신이고, SLS그룹 해외 법인카드를 받아 백화점, 호텔 등에서 1억300여만 원을 사용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 역시 조선일보 출신이고, 영업 정지된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중앙일보 출신이고,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에 연루된 최구식 의원은 조선일보 출신이고…. 아 숨차다. 그러고 보니 하나같이 조중동 출신이네…. 썩은 정권과 썩은 언론의 검디검은 유착!

MB정권 부역 리스트에 올라있는 교육계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볼까? 파이시티 인허가 연루 의혹은 물론 재벌회장으로부터 수십 차례 연예인 향응을 받았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고려대 교수 출신이고, 논문 표절과 땅 투기 및 자경확인서 조작 등의 의혹을 받았던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문화수석은 숙명여대 출신이다. 원제무 한양대 교수와 강준모 홍익대 교수, 임승빈 서울대 교수, 황기연 홍익대 교수 등은 파이시티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에서 거수기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불현 듯 머리를 때리는 섬뜩한 각성! 저 썩어 문드러지고, 간교한 이들을 배출한 토양이 바로 이 땅의 언론과 교육계 아닌가. 인허가 청탁으로 거액의 뇌물을 챙기고, 논문을 표절하고, 땅 투기를 밥 먹듯 하고, 권력의 거수기 노릇이나 하는 저들이 이 땅의 국민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던 언론인이요 교수였던 이들 아니었던가.

최근 한 저명한 교수님께서 어떤 신문 칼럼을 통해 이렇게 적었다. “한국사회를 이 정도로 발전시킨 원동력은 교육과 언론이었다”고! 교수님은 “타락정치의 마지막 문을 지킬 비판력의 재생은 결국 교육과 언론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터”인데 “그 무의식적 기대의 마지노선이 무서진 느낌”이라고 장탄식을 한다.

그는 또 “문명개화의 꿈, 부국의 꿈을 일구기 위한 한국인들의 몸부림, 그 선두에 교육이 있었다”, “미몽의 인민을 깨우고 교육열기를 전파한 것은 언론이었다”며 한말 개화기의 교육과 언론의 역할을 전한 뒤 “정말 역사가 그러한데 최시중과 곽노현, 언론계 원로와 교육계 수장이 그런 역사를 뭉개고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고 준엄하게 질타한다.

혹시라도 교수님의 인식이 한말 개화기쯤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교육과 언론이 여전히 사회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걸까? 그 마지노선이 무너진 게 벌써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라는 사실을 진정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이 땅의 교육과 언론이 심각한 퇴행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건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지금의 교육이 어디 교육이요, 언론이 어디 언론인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는커녕 해악으로까지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무한 입시경쟁에 지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잠을 자고, 아이들을 키우자는 학교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사건이 터져 나온다. 대학은 학문을 익히는 상아탑이라기보다 취업준비 학원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사회의 파수견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함몰된 채 허우적거리고, ‘찌라시’ 수준의 지면을 만드는 데 급급한 언론들도 수두룩하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신문방송에 대한 신뢰도가 32%(세계적인 홍보기업 에델만, 2012년 25개국 신뢰도 조사) 수준에 머물러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교육과 언론은 시급히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하는 ‘앙시앙 레짐’이다. 우리의 미래는 교육과 언론의 앙시앙 레짐을 깨고 새 틀을 세우는 데 달려 있다. 앙시앙 레짐의 모순이 심화되면, 그걸 깨려는 혁신가가 나타나기 마련.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그런 인물이다.

곽노현은 이 시대의 ‘황제권력’ 이건희 삼성회장을 편법상속 혐의로 고발했고(1997년), 서슬 퍼런 신군부 세력을 쿠데타 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고(1995년),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악저지를 위해 몸을 던졌고(1996년). 약자는 ‘법의 보호’아래, 강자는 ‘법의 지배’ 아래에 두기 위한 검찰개혁의 절박함을 끈질기게 호소하기도 했다. 곽노현은 우리 사회의 거악세력과 ‘맞짱’ 뜨는 데 자신의 삶을 몽땅 바쳐온 것이다. 2010년 서울교육감 선거에 나선 것도 잠자는 교실을 깨우기 위함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 학생들도 인간대접을 받는 학교,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경쟁 일변도 교육이 아닌 협동수업을 하는 학교, 국영수 실력만 재는 게 아니라 천 가지 재능을 다 인정해주는 학교, 장애인들도 정상인과 더불어 공부하는 학교…. 곽노현은 이런 학교를 꿈꾼다. 서울형 혁신학교와 문예체 교육, 새로운 유형의 진로직업교육 등 ‘곽노현 표 혁신교육’이 곳곳에서 싱싱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서 곽노현이 한 떨기 꽃처럼 지려하고 있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민주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던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를 매수했다는 죄목이다. 1심에서 벌금 3000만원, 2심에선 실형 1년을 선고받았다. 1, 2심 재판부는 모두 곽노현의 ‘후보매수의사’가 없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선거 끝나고 사퇴 대가를 지급해서 사후매수를 감행하고 선거민의를 왜곡했다’고 판단했다. 곽노현의 항변 그대로 사퇴한 후보를 어떻게 매수할 수가 있는가? 과연 약속 없는 대가지급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선거가 이미 끝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인데 민의왜곡은 어떻게 가능한가?

시대를 막론하고 앙시앙 레짐의 저항은 완강하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들 때문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앙시앙 레짐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 대표적 인물이다. ‘MB의 멘토’로 불려온 최시중은 KBS와 MBC, YTN, 스카이라이프 등을 MB맨들로 채움으로써 방송을 장악했고, 조중동 등 수구언론과 대자본에 종편을 홀랑 넘겨주었다.

국회 문방위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리면서까지 여론 독과점을 심화시키는 미디어법 날치기를 밀어붙인 장본인도 최시중이었다지? 물론 자신의 주머니에 수억 원의 검은 돈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권력을 쥐고 있으면 화수분처럼 뇌물이 콸콸콸 쉬지 않고 쏟아지는, 이 탄복할만한 체제를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었겠지.

이렇듯 곽노현과 최시중이 살아온 삶의 궤적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을 싸잡아 매도하는 이들이 있다. 도대체 ‘도둑적인 MB정권’의 핵심이었던 최시중과 평생 우리 사회의 큰 도둑들과 맞짱 떠온 곽노현을 어떻게 똑같은 파렴치범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언필칭 지식인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이다. 마녀사냥식 여론재판 혹은 인민재판식 도매금 매도행렬에 휩쓸리는 건 지식인의 처신이 아니다.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날카로운 분별력으로 구체적인 정의를 가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지식인이라기보다 앙시앙 레짐을 수호하는 ‘지식 기술자’일 뿐이다.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궤변은 99% 대중들의 피로와 실망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런 글쟁이는 차라리 조용히 사라져 달라.

(필자의 요청으로 필명을 사용합니다. 편집자주)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