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미디어평론가 명박근의 온라인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 칼럼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와 언론의 ‘속내’를 들춰내고 도발적인 ‘촌평’도 시도할 예정입니다. 필자 요청으로 필명 ‘명박근’을 사용하게 된 점 양해 바랍니다./ 편집자

김구라가 10년 전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진다며 출연하던 방송에서 모두 하차했다. 그 말은 그가 이불을 덮어 쓰고 혼자 떠들다 누구에 의해 녹취돼 들춰진 게 아니라 대중에게 했던 말이다. (물론 그 말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이 잘못됐다.) 당시에는 왜 그런 것이 통용되고 용인됐을까. 단순히 김구라가 무명이라서?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당시에는 인터넷 담론에 대해 곱건 곱지 않건 ‘내버려뒀다’. 그런 이야기에 가치관이 파괴될 만큼 우리 사회가 허술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10년 전이든 그 이전이든 문제될 과거 발언에 대해서는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 (공직선거 출마자는 그럴 수 있다. 이는 국민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인물로서의 자질을 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예인 심지어 개그맨까지 ‘바르고 옳고 고운 말’을 써야 하고 그 발언에 대한 윤리적 책임까지 강요당하는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김구라 후폭풍’에 소설가 서해성은 물론, 배우 정찬, 영화감독 장진이 발끈하고 나선 점이 눈길을 끈다. 이런 식으로 김구라를 ‘매장’하는 엄숙주의에 반발하고 나서는 것이다. 소상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들이 분개한 것이 ‘나는 과연 책잡힐 말을 했는가’하는 공포가, 창의력을 기반으로 선 예술인의 무대에서 맹위를 떨치는 현실이 아니었겠나 하는 점이다.

이런 식의 ‘공포’는 누구에게 더 이득이 됐을까. KBS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김형태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선거 당시 제수씨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친정 기자에게 “잘 봐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김 당선자의 이 바람은 KBS 뉴스에 한 줄도 안 나가는 현실이 됐다. 같은 원리로 이명박의 갖은 악행과 비리는 철저히 은폐됐다. 결국 행정, 입법, 사법부를 장악하고, 4부라 불리는 언론마저 완벽하게 장악한 세력에게만 이익이 됐던 것이다. 정보력, 여론 파급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정권 비판세력은 늘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확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부터 불거진 현상들이다. 근원은 ‘대통령을 비난하면 다친다’는 일종의 ‘관습법전’이다. 이런 상식 밖 논리는 4년 동안 온 사회에 내면화됐다. 밥줄이 끊기고 여기저기 불려다니고 심지어 감옥까지 가는. 수많은 ‘본보기’를 통해, 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단면은, 거역하려면 큰 손실을 불사해야 하는 하나의 현실이 됐다. 감옥에서 벌써 5개월째 갇혀 있는 정봉주를 보자. 행위상으로만 볼 때 그는 ‘말을 해서’ 잡혀간 양상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사기 전력이 있는지 검증 차원에서 발언하다가 권력자의 눈 밖에 나서 영어의 몸이 된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진보진영은 이런 현실에 맞서기 위해 강요된 공포와의 싸움 대신 ‘적들의 부적절한 발언’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결국 국면은 ‘누가 더 자극적인 망언을 했는지’를 찾아내는 검색전쟁에 천착하게 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니체 말처럼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처럼 된 꼴이다.

말을 사려 깊게 하는 것은 덕목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를 심리적 신체적으로 결박하고 침묵하게 만드는 기제로 오용한다면 이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저 친구 왜 이래?’ 이럴 것을, 스스로 밥줄을 끊고 속죄의 길을 걷게 하는 유치한 엄숙주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권을 청산하겠다는 이들의 가슴에 이런 엄숙주의를 지울 의지가 있는가. 없다면 정권교체가 우리에게 무슨 실익이 있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