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노조의 대화 상대가 실종됐고, 노조가 무력화 됐다. 경영진이 미디어홀딩스라는 곳에 숨어서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많다."

SBS 미디어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한 현재 'SBS 지배구조'의 문제를 지적한 이윤민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장의 말이다. 대주주, 사주에 의해 언론사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노조·시민사회 단체의지지 속에 지난 2008년 지주회사 체제가 도입됐지만, 현재 SBS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주 'SBS 개국 20주년 행사'가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SBS 내부에선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방송사에 지주회사를 도입한 것이 재벌 체제의 핵심인 총수 1인 지배를 얼마나 약화시켰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향후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할 경우, 민영방송 지배구조 모델이 될 수 있는 SBS 지주회사 체제의 문제와 해법은 없는 것일까.

▷ 2008년 '화려한' 시작, 3년만에 걱정 '태산'=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SBS가 지주회사 도입을 검토하게 된 배경을 두고 "2004년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지배주주인 태영 그룹, 윤세영 회장, 그리고 주요 주주들이 지상파 방송인 SBS의 공적 책무에 소홀해 왔다는 사회적 평가가 비등하면서 방송사로서 겪은 미증유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시 SBS 경영진은 지주회사 전환의 목표로 △방송의 공익성 강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제도화 △ 내부 거래의 투명성 증대 등을 주장했다. 그 결과 SBS 미디어홀딩스라는 지주회사 중심으로 SBS 그룹이 재편됐는데, SBS 미디어홀딩스가 SBS 지분 30%를 쥐고 태영은 다시 SBS 홀딩스 지분 63% 소유하는 구조가 지난 2008년 5월 정착됐다.

   
  ▲ SBS는 지난 16일 올해 창사 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을 열었다. 또 21일까지 오후 6시부터 사옥 특설무대에서 '투모로우 페스티벌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관련 행사를 진행 중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2005년 2월2일 사장 이취임식때 윤세영 회장은 격려사를 통해 "(지주회사로)우리가 실천하고자 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모델은 방송의 공익성 강화뿐만 아니라 민영방송의 정체성을 재확립시켜주는 제도적 장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SBS 내부에선 "윤세영 회장과 윤석민 사장이 SBS 미디어홀딩스를 통해 SBS 완벽한 지배·통제 아래 두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독립경영 흔들·콘텐츠 이익 유출, 핵심 문제"= 핵심적인 쟁점은 '지주회사 체제에서 자회사 독립 및 책임경영이 가능한지', 'SBS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통해 방송 공익성이 추구되고 있는지' 등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애초 취지가 퇴색된 현실을 제기했다.

이윤민 본부장은 "지주회사 체제 이전에는 지주회사 간섭이 있었지만, 태영이 SBS 경영진을 평가하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규정에 따라 SBS 경영진이 홀딩스의 경영평가를 받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례로 "지난 2일 윤석민 사장이 SBS 보도국장 등 보도국 간부를 불러서 홀딩스 계열사 지원 방안에 대해 회의를 했다"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SBS의 독립 책임 경영이라는 것이 사실상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노조쪽에선, 최근 월드컵 중계 논란을 두고 SBS의 상업성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해서도 이같은 현 지주회사 체제의 문제가 반영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본부장은 "미디어홀딩스가 지배하는 SBS에서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불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SBS 구성원들은 SBS 수익이 외부로 점점 유출되고 있고, 이 결과 제작 기반이 열악해지는데 우려가 크다. 지주회사 설립 이후 SBS가 자회사로부터 받는 콘텐츠 공급가격, 요율 등이 지주회사 설립 이전과 비춰 낮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낮은 계열사 이익을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로 이전시키는 '터널링'(tunneling)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SBS 홀딩스 입장에선, SBS가 아니라 지분율이 높은 SBS 콘텐츠 허브 등에서 이익을 내려고 하고 있다"며 "계열사간 투명하게 거래를 하고, 콘텐츠도 제 값을 받으며 안정된 경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SBS는 단기 순이익에서 31억 원 적자였지만, 미디어홀딩스는 71억 원 흑자를 냈다.

이외에도 노조는 최근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실시된 연봉제 등 점점 이익을 중시하는 사내 분위기에 우려를 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 SBS 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2007년 2월28일 전국언론노조와 민영방송노조협의회는 서울 목동 SBS 방송센터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영방송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주요 주주 간의 교차소유를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2008년 지주회사 출범 전후로 SBS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미디어오늘 자료 사진  
 
▷ 지주회사 대안은?= 애초 도입된 지주회사 취지를 살리고, 노조가 지적한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없을까. 지난 17일 '지주회사 체제, 방송의 미래인가'(미디어행동·서갑원 민주당 의원 주최)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사회 각계에서 주목되는 대안이 도출됐다. 공통되는 대안은 법을 통한 규제였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지주회사 체제에서 자회사 독립 및 책임경영은 불가능하다"며 "이윤 극대화를 추진하는 영리 기업에서 SBS의 독립, 책임 경영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같은 규율 사각지대를 방치하면 다른 회사에서도 동일하게 SBS가 겪는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방송사 지주회사에 관한 규정을 방송법에 담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터널링'에 대해선 "콘텐츠 수수료가 적정한지 면밀하게 거토해봐야 한다"며 "충분히 의심이 되면 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조가 노사 협상에서 위협수단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행동하셔야 한다"며 주주대표 소송 제도나 배임 관련 형사고소 등을 적극 주문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종편이 출범하게 되면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방송법에 지주회사를 포함하는 규정을 넣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방송사 규정이 무력화되는 것에 방통위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준상 사무총장은 △SBS 미디어홀딩스의 설립 조건 당시 이행조건의 철저한 검증 △미이행시 재허가 취소이전이라도 광고 정지나 허가기간 단축 시행 △SBS미디어홀딩스의 SBS 주식 소유 목적을 '지배'에서 '출자'로 변경 △SBS 미디어홀딩스와 SBS의 사업영역 재조정 △SBS 노조 추천 감사 제도의 신속한 도입 △방송법 내 지주회사 관련 규정 마련 또는 방송지주회사법 제정 등을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경우 SBS를 보다 압박하는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SBS가 지주제 전환시 약속했던 것을 지키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면서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난 2008년 대주주 전횡 방지를 위해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처럼 홀딩스의 SBS 지분율을 현행 30%에서 10%로 낮추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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