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되면 더 이상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MBC에 들어온 지 15년이다. 아침이면 출근해서 일을 하고, 저녁이면 퇴근을 하고, 때 되면 월급을 받는 조직, ‘직장’. 그렇담 15년간 나에게 MBC는 단지 ‘직장’이 아니었던 거 같다.

아니 나에게 뿐만 아니라 MBC 구성원의 많은 분들이(25년 이상 무슨 방송을 만들어 오셨는지 인제 와서 공정방송을 하겠다는 분들은 아닌 것 같고) MBC를 단지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어떤 조직보다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했고, 항상 자랑스러움을 갖고 MBC의 구성원임을 밝혔다. 주인이 없는 회사라 결단력이 부족하고, 강력한 리더십이 없음을 아쉬워했지만, 사주의 이와 요구에 따라 영혼을 팔지 않으면서, 학교에서 배운 언론인으로의 자세를 지킬 수 있음을 감사했다.

   
  ▲ 조준묵 MBC PD  
 
광고가 우리의 월급을 책임지는 회사라 광고주를 끊임없이 신경 써야 했지만, MBC의 구성원들은 ‘삼성’같은 절대 권력은 우리만이 견제할 수 있다며 ‘PD 수첩’이 삼성 비리를 다룰 때면 이런 프로그램은 더 잘 만들어야 한다면서 서로 체크를 하면서 제작하는 자부심이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MBC의 조직위상은 흔들렸지만,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직업을 택한 사람으로서 권력과의 불편함은 숙명임을, MBC를 둘러싼 논란과 논쟁은 언론사로서 치러야 할 비용이며, 이런 과정이 민주주의라 생각했다.

하지만 MBC가 ‘비정상’ 이란다. 이 조직에 몸 담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나도 당연 ‘비정상’이란다. ‘정상화’ 해야 한단다.

반평생 때려잡자 빨갱이만 외치는 보수 신문의 논설위원이, 손 씻고 주체사상 책을 보고 4월 15일이 되면 기쁜 날이라며 춤을 추던 작자가 어느 날 세상이 다 알던 북한의 실상을 자신은 이제야 알았다며 우익단체 나팔수가 되어 나타나, 공영 방송의 뉴스를 시사 프로그램을 드라마를 다큐멘터리를 시트콤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본부장을 결정하는 게 MBC ‘정상화’ 란다.

ROTC구국연합, 육해공군해병대(예)대령연합회, MBC 방송허가 취소운동 등이 모여서 MBC 사장 청문회를 열겠다고 하고, MBC를 책임지겠다고 파리 떼처럼 꼬인 자들이 그들 앞에서 소신을 밝히는지 신념을 밝히는지 사상을 밝히는지 무엇을 밝히는지 모르겠는데 참석해 고해성사를 하고 성적표를 받아들고 MBC를 들어오는 게 MBC ‘정상화’란다.

그렇게 MBC가 ‘정상화’ 되고 있어서, 어디서 뭘 했던 사람인지도 모르는 - 이대로 가다가는 기자 PD가 아니라 예비역 대령 정도는 돼야 방송을 말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겠지만 - 방송과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단지 방문진 이사라는 직책을 하사 받았기 때문에 30년 이상 뉴스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던 사람들에게 볼펜을 던지고, 책상을 치면서 호통을 치고, 프로그램을 검증한다며 난도질하고, 출연자에 대해 왈가왈부 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흔적도 없던 사람들이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된다.

덕분에, ‘정상화’ 덕분에 조직의 전문성, 조직인으로의 자부심 따위는 속절 없어졌다. 30년 이상 프로그램 만들고 기사 쓰는 것 보다 순간 정치적으로 연줄 잡는 게 중요해졌고, 직장인으로서 자기 책임을 지면서 일 하기 보다 ‘어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는가가 중요해졌다. 김우룡의 이른바 ‘정상화’ 이후 한때 “MBC에서는 고등학교 어디 나왔어”가 유행했다.

김우룡과 그 친구들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길래 기자로서, PD로서 일하는 것을, 한 조직에 몸 담고 일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글을 쓰고 있는데,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진보그룹이 금메달 따는데 방해한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후안무치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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