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4일 진행한 이명박 대통령 업무보고는 향후 방송과 관련해 공공성 제고보다 시장경쟁 강화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을 주제로 한 업무보고 이후 오후에 진행된 실무진 브리핑에서도 나타났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방송관련 문제는 IPTV에 대한 장밋빛 전망 외에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방통위가 중점추진과제로 잡은 '방송서비스 시장 선진화' 가운데 보도·종합편성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겸영범위 확대, 즉 신문-방송 겸영 부분이다. 이는 지난 6월 업무보고 준비 당시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신문-보도·종합편성PP 겸영, 다음은 지상파도 허용?

이에 대해 방통위 실무진은 4일 "신문-방송 겸영과 관련해 사회적 논의가 많이 있었고 뭔가 진전시켜야 된다는 게 있었다"며 "지난 6월에도 그런 생각은 있었다. 앞으로 그런 논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무진은 또한 "특별히 시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방통위가 관심을 갖고 추진을 해보겠다는 것"이라며 "(지상파 방송이 빠진 이유는) 일단 뉴미디어부터 시작해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방송통신위원회  
 
그러나 지난 2005년 이후 2조4000억 원 대에 정체돼 있는 방송광고시장에 보도·종합편성PP의 신규진입은 지상파, 특히 지역 지상파에 큰 악재일 수밖에 없다. 좁은 방송구역을 가진 19개 지역MBC와 10개 지역민방이 대기업이나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의 우월한 자본력을 등에 업고 전국을 방송구역으로 하는 보도·종합편성PP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CJ는 그룹차원에서 종합편성PP로 나서지는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바로 조선일보·중앙일보 등 대형 신문사다. 정부여당이 지난 김대중 정권 때부터 지상파 방송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과 정권 획득 이후 진행하고 있는 지상파 사장 인사, 공공연한 신문-방송 겸영 발언 등을 고려할 때 여론 독과점 논란과 정권 창출 논공행상 논란도 일어날 수 있는 대목이다. 적어도 '미디어간 교차소유 허용을 통한 미디어산업 활로 개척'에서 미디어산업이 지상파 방송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 미디어행동은 4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업무보고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건물 앞에서 방송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한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KBS만 빠진 채로 MBC, SBS, YTN노조위원장(오른쪽부터)이 회견에 참석했다. 심석태 SBS본부장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방통위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현재 논란 중인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추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상파 방송과 보도·종합편성 PP에 대한 대기업 진입제한 기준(3조 원)과 케이블방송 사업자간 겸영제한 기준(77개 방송구역의 5분의 1 이하)을 각각 완화키로 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방통위 원안대로 10조 원으로 가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방통위 실무진은 "원안대로 추진할 수 없는 게 지금 입법예고 기간이기 때문이다. 9일 공청회를 거쳐 모든 의견을 취합해 위원회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와 시민단체,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 등의 강력 반발로 공청회가 한차례 무산된 바 있어, 방통위 의지대로 일이 풀릴 지는 미지수다.

민영 미디어렙 도입, 지역방송·종교방송만 죽을까

다음으로는 민영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방송광고판매대행사) 도입을 통한 방송광고판매 경쟁체제 도입이다. 방통위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2009년 12월까지 민영 미디어렙 신설로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며 "방송광고정책의 일원화를 위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관리감독체계를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방송통신위원회  
 
이는 방통위 의도와는 무관하게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이자, KBS-2TV 분리 민영화와 MBC 사영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민영 미디어렙 도입으로 인한 연계판매 중단으로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은 경영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방송광고판매대행사 다원화를 통한 공영방송-민영방송 이원화 틀 짓기 압박 역시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가 올해 상반기에 KOBACO에 의뢰해 진행한 '방송광고제도 변화에 따른 매체별 광고비 영향 분석' 결과 일간지 광고시장 총 광고비도 현 연 1조6919억 원에서 완전경쟁체제 도입 1년 후 1조2617억 원으로 -28.1%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된다면 겸영을 하는 신문사의 결과는 달라진다. 한국신문협회(회장 장대환)가 지난 2005년 총회 결의대로 경쟁체제 도입을 계속 반대할지, 광고매출액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MBC와 SBS가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주최로 열린 '방송광고연계판매 심사관련 규탄대회'에 MBC 19개 지부와 민방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일단 민영 미디어렙이 거론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반대입장을 피력해 온 19개 지역MBC와 지역민방의 협의체 지역방송협의회는 4일 규탄성명을 발표한 상태다. 지역방송협의회는 "이명박 정권의 방송정책에 지역방송은 없다"며 "지역방송과 지역신문 등을 고사시키려는 방송정책 도입이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상파 방송 주파수, 통신사에 팔아 넘겨야 하나

끝으로는 지상파 방송 주파수 회수·재분배 문제다. 방통위는 일단 선발 이동통신사업자와 공공기관에서 이용중인 800㎒과 900㎒대역의 우량 주파수를 회수·재배치해, 내년 중에 신규·후발사업자에게 우선 배분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방통위는 이날 보고에서 올해 안에 디지털방송 전환에 따른 주파수 재배치계획을 수립하고, 수요가 많은 주파수는 경매로도 배분할 수 있는 법적근거 마련을 위해 올해 안에 국회에 관련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2년 아날로그TV 종료 후에 생기는 여유 주파수 대역을 후발사업자에게 할당하면 2013년부터 800㎒ 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뉴라이트방송통신센터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시장지배력이 있는 800㎒의 SKT 독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현재 지상파 방송의 몫인 698∼806㎒ 대역 주파수를 이동통신사 등 후발사업자에 재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SKT가 사용하고 있는 800㎒ 등 저대역 주파수는 KTF·LGT 등이 쓰고 있는 1.8㎓ 대역보다 품질이 우수하다. 

   
  ▲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방송통신위원회  
 
그러나 이는 지상파 방송사 쪽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단 주파수가 남을지 안남을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방통위는 지난 7월 "자체 TFT 연구결과 국내 TV방송 대역 총 68개 채널(2∼69번) 가운데 38개 채널(14∼51번, 470∼698㎒)에 전국의 DTV방송국(보조국 포함)의 채널배치가 가능한 것으로 1차 분석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 쪽은 이 결과를 믿지 않는다. 옛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 등에서 주파수 재배치 및 잉여주파수 산출을 위한 연구를 수 차례 진행했지만, 국내 여건을 충분히 반영한 지상파 디지털 방송망 구축 필요 주파수 수요가 명쾌하게 산출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 쪽은 차세대 방송 서비스를 위한 실험용 주파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상파방송의 역할을 지킬 수 있는 주파수 분배정책 확립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방통위 주파수관련 실무자는 현재 지상파 방송사, 학계, 연구계 등 전문가 23명이 참여하는 DTV채널배치추진협의회 운영과 관련해 운영기한을 못박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올해 안에 관련절차를 다 밟을 의지를 드러냈다. 방통위 실무진은 4일 오후 브리핑에서 "원칙적으로 경매제를 도입하는 것은 아니고 시장상황을 살펴보고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나, 경매제 도입으로 수십 조를 벌어들인 미국 사례를 그냥 지나치진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긴 어렵다.

   
  ▲ 국내 방송주파수 분배현황.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지난 3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경매에 붙인 700㎒ 대역의 낙찰자는 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과 AT&T였고, 낙찰 금액은 195억9000만 달러(약 19조6487억 원)였다. 4일 브리핑에서 '산업 위주로 업무를 보고했는데 방송 공공성을 강화하는 보고는 추후에 있나'라는 질문에 방통위 실무진은 "올해 내에 추가 업무보고 예정은 없다"고 답했다. 방송 공공성 인식에 대한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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