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개원할 예정이었던 제19대 국회가 20일이 지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개원 협상에서 무리한 요구를 계속했기 때문’이라면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소속 의원들의 한 달치 월급을 ‘반납’ 받았다. 민주통합당은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에서   양보를 거듭했는데도 새누리당이 협상에 성의 있게 응하지 않는 채,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문제,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등 집권세력에 불리한 사건들에 대한 국정조사를 피하려고 개원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국회 문을 아예 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임기가 끝나는 대법관들의 후임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비롯해서 많은 현안들이 국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시급한 것은 ‘천안함 침몰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다. 6월 23일자 한겨레 1면 머리와 3·4면 전체를 메운 ‘천안함, 두 개의 문’이라는 기사는 새누리당과 야당이 하루라도 빨리 국회를 열어 국정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뒤 ‘천안함의 진실’을 밝혀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미국 버클리대학 박사 출신으로 ‘30년 경력의 대잠수함전 전문가’인 안수명(69) 씨는 “서해바다라는 현실의 조건과 잠수정의 공격능력, 어뢰가 목표물을 탐지해 찾아가는 음향신호 처리의 관점에서 보면 (어뢰에 의한 폭발의) 확률은 소수점이 얼마가 되든 0.00000001% 수준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2011년 6월 정보공개법에 따라 미국 해군에 ‘천안함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자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자료를 받지 못하자 한국 정부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천안함 폭발 사건’에 관한 조사결과 등을 바탕으로 연구와 검토를 거듭한 끝에 ‘어뢰에 의한 폭발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미국 퍼듀대 화학공학박사로, 알루미늄 부식 및 폭약 전문가인 김광섭(72) 씨는 지난 4월 25~27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열린 한국화학공학회 학술강연에 초청받았다가 강연 직전 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는 “강연 발표문에서 천안함 합조단의 알루미늄 흡착물질 분석이 잘못됐다는 점과, 1번 어뢰의 인양 장소가 ‘1번 어뢰설’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더니 발표가 취소된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재미 원로 과학자의 주장은 한·미 양국군이 북한을 천안함 침몰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만큼, 이를 입증할 책임 또한 양국 군, 곧 합조단에 있다고 말한다. 또 합조단 조사 결과에는 ‘주장’만 있고 ‘입증’은 없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비판이다.”(한겨레, 6월 23일자 1면 기사)

   
 
 
2010년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연안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건을 둘러싸고 지난 2년 남짓 동안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은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고 주장해왔고, 민주진보 진영의 야당과 일부 언론은 ‘북한의 어뢰 발사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며, 여러 정황을 분석해 보면 좌초에 따른 침몰이거나 기뢰에 의한 폭발일 가능성이 크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초점으로 한 공방전은 이명박 정권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다. ‘민관 합동조사단’은 “가스터빈실 좌현 하단부에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한 것”이며 “어뢰에 적힌 1번이라는 표기법이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 일치한다”는 요지의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반론을 펴는 사람들은 “어뢰 폭발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근거가 없고, ‘1번’이라는 표기는 북한식이 아니라”고 맞서왔다.

합동조사단에 민주당 추천 민간위원으로 참여해서 활동하다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해군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신상철 <서프라이즈>(인터넷 포털) 대표는 2011년 8월 22일 첫 번째 재판을 받았다. 그때부터 2012년 6월 11일에 열린 11차 공판까지 법정에서는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어뢰 폭발’ 대 ‘좌초 뒤 침몰’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피고와 그의 변호사들이 증인들에 대한 심문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밝혀낸 것은 ‘천안함 어뢰 폭발설’이 신빙성이 박약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재판은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에 못지않게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므로 언론이 당연히 깊이 있게 보도해야 마땅한데 오직 한 매체 말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1차부터 11차까지 공판 진행과정을 소상하게 알리고, 전문가의 논평과 분석을 보도해왔을 뿐 ‘진보언론’에서는 ‘천안함 재판’에 관한 기사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진보언론의 기자가 현장을 취재하는 모습을 내가 직접 본 적도 있는데 정작 그 매체에는 기사가 실리지 않았다. ‘침묵의 카르텔’을 맺었다면 모를까,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19대 국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8개월을 남긴 지금 ‘천안함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천안함 좌초설’을 ‘이적행위’라고 끈질기게 공격해온 새누리당은 지난 23일 재미 학자 두 사람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반론을 펼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관계는 파탄을 향해 치달아왔다. 생산적 교류는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19대 대통령선거가 본격적인 국면에 접어들면 ‘천안함 사건’은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서 국정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뒤 진상을 가려내야 한다.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이 확증되면 반대 진영은 승복해야 할 것이고, ‘어뢰 폭발이 아니라 좌초 등 다른 원인에 의한 침몰’이라면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보수언론이 잘못을 선선히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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