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종북의 늪’에 빠져 있다. 2012 대통령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둔 시점이다. 누군가는 북풍을 기획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대선에 활용하고 누군가는 또 확대재생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곳에서 ‘매카시즘 광풍’이 꿈틀대고 있다. 광풍이 잦아들면 국민의 냉정한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대선 승리를 이끌 ‘신의 한 수’가 될지, 대선 패배로 인도하는 ‘한심한 자충수’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편집자 주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없고, 지금까지 생래적으로 민주주의와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이 뭘 보겠나? ‘내 말을 따르라’ 아니, ‘내 눈치에 따르라’ 이거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대재앙이 올 것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주장을 흘려듣기 어려운 이유는 여권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제왕적 총재 시절보다 더한 1인 지배 체제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다.

새누리당 대표와 원내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까지 ‘친박근혜계’ 일색이다.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뽑힌 이정현 전 의원은 박근혜 전 위원장 핵심측근이고 김진선 전 강원지사 역시 친박근혜 성향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게다가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 후보로 뽑힌 강창희 의원은 ‘박근혜 대선캠프’ 시절 좌장으로 통했던 인물이다.

새누리당은 물론 국회까지 박근혜 수렴청정 체제를 구축했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러한 모습은 대통령이 될 때까지 어떠한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집요함일 수도 있지만, 당내 민주주의 질서를 숨 막히게 하는 ‘독재의 그림자’로 인식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최근 새누리당의 인사, 특히 지명직 최고위원까지 독식을 하는 것을 보면 ‘박근혜 미래 인사’를 볼 수 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도 쿠데타를 하고 국보위나 입법회의를 구성하면서 이렇게 완전히 독식한 적은 없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장악한 여당의 현실은 거꾸로 ‘박근혜 위기론’의 배경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현실은 ‘새로운 정치’ ‘소통의 정치’를 기대하는 국민 여론, 특히 젊은층이 바라는 정치와는 역행하는 모습이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견제받고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고 실패하기 십상임. 지금 새누리당은 시대를 역행하는 퇴행적 분위기가 만연. 이래서는 재집권도 어렵고 설령 집권해도 문제가 심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대선을 넘어서려면 당 안팎 ‘쓴소리’도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미래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보수언론이 주도하는 ‘북풍 몰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지난 1일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논란에 대해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있고 국민들도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보수언론은 연일 냉전 정서를 자극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 논란에 이어 임수경 민주당 의원까지 보수언론은 야권을 향해 융단폭격을 쏟아내고 있다. 현충일을 앞두고 보수언론이 ‘냉전프레임’을 전개하는 모습은 해마다 반복된 것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대선을 앞두고 한국사회 미래비전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야 할 시점에 엉뚱하게도 ‘종북 프레임’이 언론의 초점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선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풍 논란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단기적으로는 야권에 악재, 여권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과 대치하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안보 소재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풍몰이는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천안함 침몰의 후폭풍으로 ‘안보 프레임’이 거세게 작동했지만, ‘평화’를 내세운 야권의 주장에 유권자들은 손을 들어줬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경우 대선을 앞두고 미래 비전을 선보여야 할 시점에 보수·냉전 세력 입맛에 맞는 행동으로 스스로 ‘낡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한겨레는 6월 4일자 1면 <국가관 잣대로 제명?…박근혜 민주의식에 ‘부메랑’>이라는 기사에서 “여전히 그의 당선 가능성에 회의를 품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유는 그가 내세우는 가치가 2012년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담보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과, 그의 리더십이 개발독재를 이끈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권위주의적이고, 일방통행식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컸다”라고 지적했다. 

매카시즘 광풍에 기댄 대선 전략은 1992년 대선까지나 통했을 ‘흘러간 옛 노래’라는 지적은 박근혜 전 위원장 쪽에서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 모두 ‘매카시즘’ 여론몰이가 있었지만, 여론의 호응을 얻기는커녕 냉소의 시선을 자초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20년 전, 아니 ‘유신시대’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2012년 대선을 돌파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대선 승리를 기대하려면 20~40대, 수도권 유권자의 의구심을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총선 승리를 거뒀지만 이들은 야당 쪽의 손을 들어줬다. 이러한 흐름이 대선에도 이어진다면 새누리당 대선승리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보수신문 애독자나 유신시대에 향수를 느끼는 60대 이상 보수층들이나 좋아할법한 행동은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지도자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은지 진보신당 대변인은 “‘국가관’ 따위를 언급하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언행은 기회주의의 극치이며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라며 “‘국가관’이 문제라면 박근혜 위원장 및  군부독재에 몸담았던 의원들의 국가관은 ‘군사독재’와 ‘민주주의 파괴’, 그리고 ‘헌법 무시’인지 대답해 보라”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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