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성범죄로 논란인 ‘언론인 단톡방’을 두고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부소장은 채널A를 언급했다. 채널A는 지난 3~4월 성폭력 2차 가해성 보도로 논란을 샀다. 3월12일엔 정준영씨의 불법촬영 피해자 신상을 확인해 그 신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냈고 4월26일엔 ‘김학의 사건’ 피해자 실명을 노출했다.

이는 지난 3년간 미투운동을 경험했음에도 성인지 감수성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언론 사례로 나왔다. “성폭력 보도 윤리를 알아도 잘하고 싶지 않다거나 평기자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의사결정 구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변화는 왜 더딜까. 기자 단톡방 사건은 한 단면을 보여줬다. 언론인의 직업 윤리 상실이다.

9일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주최한 ‘강간문화 카르텔 : 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 긴급토론회 참가자들은 성인지 감수성과 직업 윤리 회복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언론에 촉구했다. 토론회는 불법촬영물 유포, 성폭력 피해자 2차 가해로 논란이 된 언론인 단톡방 사건의 원인과 대안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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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서울 서소문동 환경재단에서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주최한 ‘강간문화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 9일서울 서소문동 환경재단에서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주최한 ‘강간문화 카르텔: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성인지 감수성은 언론계 오랜 숙제다. 최이숙 동아대 교수는 한국 언론의 오랜 ‘강간문화’ 역사를 짚었다. 강간문화는 “여성에 대한 성적 공격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인간 삶에 불가피한 자연현상처럼 받아들이는 문화”다. 1969년 서울신문 사보의 한 만평은 당시 남성 언론인의 여성관을 보여줬다. 교정기자가 맞선을 본 여성을 그려놓고 신체 여러 군데를 교정한 그림 제목이 ‘직업의식’이었다. 취재원을 성매매 업소에서 만나는 관행은 지금도 횡행하고 고급 정보를 얻는 취재법으로 장려까지 된다. 단톡방은 음성적으로 공유된 문화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란 지적이다.

최 교수는 언론인의 이런 모습은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한국 언론 전체가 각성해야 할 문제라 밝혔다. 언론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주요 제도이고 이를 형성하는 주체는 언론인이다. 기자의 부도덕함은 기자 집단을 향한 불신으로 확대되고 결국 언론 신뢰도는 위기를 맞는다.

불신은 이미 팽배하다. 최 교수는 기자 단톡방 논란을 두고 “기자들 원래 다 그렇다”고 말한 반응이 가장 아팠다 했다. 김효실 한겨레 기자는 “오래전부터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예고된 참사”라며 “시민들은 이미 이 문제를 언론인의 자질, 전문성 부족으로 보고 있는데 언론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조회수를 향한 경쟁적 시장이 언론계 변화를 막는다는 지적이 있지만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우세하다. 이윤소 부소장은 ”채널A가 민우회에 관련 교육을 요청했을 때 거부했다. 이미 언론사가 참고할 보도준칙, 윤리기준은 많다“며 ”1회성 교육보다 내부의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왜 문제가 발생하는지 토론하고, 조직문화를 점검해 구조를 개선하는데 실질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인 교육 내실화는 필수 과제로 지목됐다. 최이숙 교수는 수습기자 때부터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받아야 하며 모든 언론인이 자신이 완결무결하지 않다는 반성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이버성범죄 논란이 된 기자 단톡방은 익명의 언론인 200여명이 모인 정보공유 오픈채팅방에서 음성적으로 파생된 별도 채팅방이다. 사진은 정보공유방에 가입할 언론인을 추가로 모집한다는 공고글.
▲ 사이버성범죄 논란이 된 기자 단톡방은 익명의 언론인 200여명이 모인 정보공유 오픈채팅방에서 음성적으로 파생된 별도 채팅방이다. 사진은 정보공유방에 가입할 언론인을 추가로 모집한다는 공고글.

김경희 교수는 미국 저널리즘 학계의 선례를 들었다. 김 교수는 “2005년 미국 텍사스대 연구교수로 있을 때 학부생 과목 3개를 수강해봤는데 3개 모두 1주차를 젠더 교육에 할애하더라”면서 “한국도 미디어컨텐츠 제작 관련된 학과 모두에 적용해봄직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기자들이 성폭력 사건에 가져야 할 공감능력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성폭력 피해자 실태조사를 하며 확인한 건 피해자가 받는 고통의 크기는 우리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이라며 “기자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르는 기준은 윤리의식”이라 말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취재에서 취득한 정보는 보도 목적에만 쓰는 게 기본 윤리인데 이를 위반했다”며 “1차적으로 회사의 엄정한 징계가 필요하지만 유사한 사건들 대부분 감봉에 그친다. 강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불법촬영물 유포 뿐 아니라 공유 요청도 성폭력특별법에 따라 사법처리 돼야 한다”며 “언론인들이 정보를 생산·유통하는 지위를 활용해 이런 관행을 방관해온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이경 디지털성범죄아웃 활동가는 기자들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기자 단톡방 참가자들은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실명, 직업, SNS 사진 등 사생활 정보를 무작위로 공유하며 성희롱했다. 고 활동가는 “업무 때문에 불가피하게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자들이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은 없다”며 “단톡방 참가자들은 성폭력 범죄를 유희거리로 삼으면서 친밀해지더라”고 말했다.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여성주의 저널리즘 윤리도 거론됐다. 김효실 기자는 “네이버가 뉴스스탠드 서비스를 하던 때 일부 언론사들은 조회수를 올리려고 여성의 노출사진을 선정적인 제목과 함께 무분별하게 올려 이득을 봤다. 강간문화 카르텔의 대표 사례”라며 “데스크가 (사이버성범죄 수단이 되는) ‘오픈카톡방’, ‘블라인드앱’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 간 격차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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