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피해자 유가려씨 싸움은 진행형
간첩조작 피해자 유가려씨 싸움은 진행형
강제추방 5년만에 방한, 전 국정원 과장 재판에서 눈물 증언 “대머리·아줌마 수사관 고문기억 생생”

9월21일 오후 4시50분 서울중앙지법 서관 506호, 증인 유가려씨(31)가 탄원서 든 손을 부르르 떨었다. 유씨는 법정에서 읽으려 했던 탄원서 스물네 문장 중 세 문장만 읊고 말았다. 울음이 복받쳐 흐느끼는 목소리만 나왔다. 판사가 제지해 그만뒀다. 피고인 권영철 전 국정원 안보수사국장은 책상 위 수첩만 본 채 유씨를 보지 않았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내게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진술을 하라며 때리고 욕하고 괴롭혔다. 6개월 간 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감금해 변호사를 못 만나게 했다.” 이날 유씨 진술내용이다. 유씨는 ‘국정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동생이자 같은 피해자다. 유씨는 국정원 수사를 받으면서 국정원으로부터 감금, 가혹행위, 고문, 변호인 접견 차단 등을 당했다고 밝혔다.

▲ 지난 21일 권영철 전 국정원 안보수사국장 국정원법 위반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한 유가려씨. 사진=손가영 기자
▲ 지난 21일 권영철 전 국정원 안보수사국장 국정원법 위반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한 유가려씨. 사진=손가영 기자

5년 간 강제추방으로 발이 묵였던 유씨는 지난 18일 한국에 왔다. 유씨는 지난 20일부터 이틀 간 서울 서초구에서 법원과 검찰을 오갔다. 20일엔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사건 원고로, 21일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참고인 및 권영철 국정원법 위반 사건 증인으로 검찰·법원을 들렀다. 유씨는 “나와 우리 가족은 그 누구로부터 사과받지 못했다. 해결된 문제는 없다”고 했다.

인권 모르는 국정원 “돈 밝히는 변호사, 선임할 필요 없다”

권영철 전 국장은 유씨 수사를 주도하며 변호인 접견을 막은 주범 중 하나다. 권 전 국장은 2018년 5월에서야 직권을 남용한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국정원은 우성씨 수사가 진행되던 2012년 10월31일부터 2013년 4월26일까지 유씨를 합신센터에 가뒀다. 조사 시작 한 달 후인 11월5일, 유씨는 북한이탈주민이 아닌 재북화교로 밝혀졌으나 국정원은 감금을 계속했다. 합신센터는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상 북한이탈주민만 보호대상으로 둔다.

우성씨 변호인단은 계속 유씨 접견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변호인 개념만 어렴풋하게 알던 유씨에게 ‘변호사 선임할 필요 없다’ ‘변호사 선임하면 상황만 더 악화된다’ ‘변호사는 돈만 밝히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접견을 원하지 않는다는 진술서를 쓸 땐 국정원 수사관이 대필할 문건을 줬다. 진술서 작성은 3번 연습했고 국정원은 3번째 장면을 영상촬영했다. 유씨는 ‘너의 가족의 목숨이 니 손에 달려있다’ ‘니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말을 수사관으로부터 들었다.

변호인단은 2013년 3월5~7일 사흘 연속 합신센터에 가 접견요청했으나 국정원은 이를 유씨에게 알리지 않았다. 3월5일은 유씨가 “변호인을 만나고 싶다”고 직접 밝힌 바로 다음 날이다. 유씨는 6개월 간 변호인 없이 수사 받다 갑자기 강제출국 명령이 떨어져 중국으로 추방됐다. 

이후 이번 방한까지 유씨는 우성씨를 만나지 못하다가 지난 18일에야 처음 만났다. 우성씨의 간첩 혐의는 2015년 10월29일 무죄 확정됐다. 유씨는 강제추방된 지 2년6개월 만에 중국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

“아줌마수사관은 뾰족구두로 밟고 대머리수사관은 가장 많이 때려”

유씨는 자신을 고문한 수사관 실명을 모른다. 40~50대로 보이는 ‘대머리’, ‘아줌마’, ‘큰삼촌’ 수사관으로만 기억한다. 대머리 수사관이 유씨를 가장 많이 때렸다. 유씨는 “남자다 보니 힘이 셌다. 그냥 밀치고 벽에 밀치고, 귀·뺨을 때리고, 다리도 툭툭 찼다. 밀려서 쓰러지면 일어나라고 다시 때렸다”고 했다.

▲ 유가려씨의 오빠인 유우성씨는 지난 21일 가려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재판에 함께 동석했다. 유우성씨는 국정원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다. 사진=손가영 기자
▲ 유가려씨의 오빠인 유우성씨는 지난 21일 가려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재판에 함께 동석했다. 유우성씨는 국정원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다. 사진=손가영 기자

아줌마 수사관은 뾰족한 구두를 이용했다. 유씨는 “뾰족 구두로 다리 한 쪽을 차면 넘어진다.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면 다시 구두 뾰족한 부분으로 허벅지를 탁 찼다. 근육이 수축해 굉장히 아픈 부위다. 뺨도 맞고, 서류 뭉치로 머리도 맞았다”고 말했다.

유씨는 6개월 간 감금과 고문·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에 대해 정부(국정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유씨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억으로 고통받고 아버지도 사건에 대응하느라 건강이 악화됐다고 했다. 유씨가 청구한 배상금은 1억8000만원 가량이다.

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에선 국정원의 증거 조작, 검찰의 방관 및 진술증거 조작 정황 등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검찰과거사위원회 대검진상조사단은 간첩조작사건을 재조사 대상으로 정했다. 유씨는 지난 21일 진상조사단 조사4팀을 들러 국정원·검찰이 자신의 진술을 고의로 누락시킨 사실에 항의했다. 유씨는 또한 국정원이 자신의 허위 자백을 받아낸 과정도 진술했다.

유씨는 오는 30일까지 한국에 머물다 갈 예정이다. 유씨는 이번 국정원 개혁에 “말 뿐인 개혁”이라 했다. 유씨는 “저희 사건 뿐 아니라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간첩조작사건에 휘말렸고 무죄를 받았다. 그런데 관련자가 확실하게 처벌이 됐느냐”며 “이런 이들의 손발을 묶는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이, 국정원의 수사권한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건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구속된 사람에게 변호인 접견권을 차단하면 인권 침해다. 우성씨 대리인단은 권영철 전 국장만 기소되자 ‘이는 개인 일탈행위가 아닌 조직적 범죄다. 다른 관련자들을 추가 기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권 전 국장의 국정원법 위반사건은 지난 21일로 4회 공판기일을 마쳤다. 다음 공판기일에 검찰 구형이 내려진다.

※ 아래는 유가려씨가 지난 21일 재판부(서울중앙집법 형사16단독)에 제출한 탄원서.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북한에서 살다가 오빠와 함께 살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꿈에 그리던 한국에서 오빠와 함께 살수 있다고 기뻐했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도착한 이후부터 모든 것이 악몽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제게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진술을 하라면서 저를 때리고 욕을 하며 괴롭혔습니다. 운동장과 복도 한가운데 세워놓고 ‘회령 화교 류가려’라는 글을 앞뒤로 붙여 사람들에게 구경시키고 망신주기를 했습니다.

잠도 재우지 않고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죽고싶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심장이 떨리고 너무 힘듭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괴롭힘에 못이겨 저는 수사관들이 원하는 허위진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매일 공포와 악몽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고 독방에서 그 누구와도 만날수도 없었습니다. 국정원수사관들은 어느날 저에게 ‘민변 변호사들이 너를 만나겠다고 하는데, 변호사들은 돈만 밝히는 나쁜 사람들이니 절대 만나면 안된다, 변호사를 만나면 너와 오빠가 위험해진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저는 2013년 3월 4일 증거보전 재판에서 변호사님들을 만나겠다고 말씀드렸고 국정원합신센터에 찾아오면 꼭 만나겠다고 몇 번이나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변호사님들이 저를 만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저는 아무도 저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나중에서야 변호사님들이 여러번 저를 찾아왔지만, 국정원이 못만나게 했고 제게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합동신문센터에 6개월동안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그동안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고 무섭고 너무나 괴롭습니다.

지금 이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도 지금의 현실이 괴롭겠지만, 억울하게 구속되고 독방에서 6개월동안 갇혀있어야 했던 제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해야 하고, 오빠를 간첩이라고 거짓진술을 해야 했던 그 괴로움을 결코 모를 겁니다.

간첩조작 사건이 진실이 밝혀졌지만 저와 저의 가족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판사님께서 저를 감옥과 같은 곳에 가두고 허위자백을 시키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잘못을 하는 사람은 꼭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부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가족과 같은 피해자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8. 9.21 유가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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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8-09-24 09:56:45
뾰족한 구두로 고문하다가 집에 가서는 지 자식들 성적 걱정하던 아줌마.... 주변 사람들에겐 세상 착하고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 이었겠지... 영혼없는 공무원이라고 봐줄게 아니라 영혼없는 공무원이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가 꼭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leo 2018-09-23 20:38:32
고문으로 간첩 조작한 개새끼들을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는 건, 앞으로도 계속 고문으로 간첩 조작하라는 면죄부다. 고문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다. 이 병신 같은 나라는 항상 가해자가 참회하지도 않는데 어설프게 먼저 용서부터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죄악이 반복된다.

jang bi 2018-09-23 04:09:27
정말 대한민국에 이런 개같은 인간들이 국가정보원에 있었다는게 국민으로서 창피하고 부끄럽다. 개같은 정권에서 사람이 살만한 정권으로 바뀌었으니 이런 파렴치한들을 반드시 벌을 줘야 할것이다. 유가려씨에게 너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