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연대 ‘노조 포비아’ 벗어나 새 노조로
대한항공 직원연대 ‘노조 포비아’ 벗어나 새 노조로
[대한항공 직원연대 향한 시선 ①] 민주노조 경험한 전·현직자 “노조라는 총 쥐고 싸워야”… “박창진 보호도 노조 밖에 없다”

“조양호는 박근혜보다 더 어려운 상대다. 국가 앞의 시민은 법의 보호라도 받는다. 재벌 앞의 노동자는? 노조 밖에 없다. 노조 설립은 이번 싸움의 기본이다.”(직원 A씨)

대한항공에서 민주 노조 설립을 경험했던 전·현직 직원은 한 목소리로 ‘현재 필요한 건 새 노조’라고 말했다. 이들은 “회사는 이미 주동자 색출과 대응 방안을 마련해놨다”며 “회사의 ‘노조혐오’ 프레임에 휩쓸리지 말고 원칙대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퇴진을 목표로 한 ‘대한항공직원연대’는 지난달 25일 공식 출범했다. 전·현직 직원으로 구성된 직원연대는 십수명의 조직위원을 꾸리고 규약을 정하는 등 정비 과정을 거치고 있다. 직원연대는 “국회, 검찰, 공정위 등과 연대하는 통합체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반면 3000명 가량이 모인 대한항공 직원 카카오톡 익명대화방에선 ‘노조’ 언급은 금기시되고 있다. 노조 얘기가 나오면 민주노총이 언급되고 회사는 즉시 ‘순수성이 의심된다’거나 ‘민주노총이 배후’라며 분열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조 언급 금물’이란 지침이 생겼다.

▲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대한항공 사옥. 사진=이우림 기자
▲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대한항공 사옥. 사진=이우림 기자

2000년 대한항공에서 새 노조 설립에 참여했던 한 직원 A씨는 “트집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대안은 노조 밖에 없는데 시간은 충분히 지났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 노조를 언급하지 않는 것만이 영리하게 회사 측 프레임을 뛰어넘는 방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박창진 지키는 방법은 새 노조 설립, 지금부터 해야”

A씨는 “노동자가 기업 안에서 ‘시민’이 되는 방법은 노조를 만들어 조합원이 되는 것이고 이건 200년 넘은 역사의 판단을 받은 사실”이라며 “노조든 민주노총이든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해 직원들이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5년 전 회사와 대립한 승무원의 연이은 부당해고 사태를 지켜본 B씨는 “선례를 비춰보건대 또 박창진 사무장의 파면부터 시작되지 않겠느냐”며 “회사는 내부고발자, 집회주도자들 파악을 해놓고 법무팀과 대응안을 짰을 것이다. 이들을 지킬 방법은 노조를 만들어 직원들을 노조법 보호 안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라 지적했다. B씨는 6월 각종 정상회담, 지방선거, 월드컵 등을 지적하며 “시점 상 서두를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부기장 C씨는 ‘외부의 도움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은 기사만 쓰고 빠진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보수언론은 직원연대를 공격할 것이다. 제보도 나올 것은 다 나왔고, 수사기관의 사법처리도 한계가 있다. 수사 끝나면 직원연대도 없어질 것인가? 내부에서 스스로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5월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광화문 촛불집회'를 마친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이 시민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5월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광화문 촛불집회'를 마친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이 시민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C씨는 “지금은 박창진 사무장만 가면을 쓰지 않지만 직원연대가 더 확장되려면 누군가는 가면을 벗고 나설 수 밖에 없을 때가 온다”며 “그 때를 위해서라도 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노조는 ‘총’… 총 쥐고 싸움 시작해야”

구체적인 방법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직원연대 토론방에 참여하는 기장 출신의 D씨는 “대한항공 촛불은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가 그랬던 것처럼 유연함과 날렵함이 있어 가능했다”며 “회사는 과거 싸움 방식이 매우 익숙해 철옹성과 같이 대응할 수 있다. 기존 방식대로 싸우면 철옹성에만 부딪혀 을(직원)들끼리 싸움이 일어날 수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면 회사는 지금처럼 대응방식을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D씨는 “노조나 민주노총 혐오는 보수언론이 이십년 넘게 만들어왔고 괜히 공격만 당할 것이란 우려도 이해되는 부분”이라며 “한 직원이 ‘첫 집회 참석을 매우 망설였으나 한 번 나온 뒤엔 안 나올수가 없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대한항공엔 그런 직원이 태반인데 그렇게 경험을 쌓아가면 결국 자신감이 생기고, 0.1%의 가능성이 10%, 20%로 점점 늘어난다”며 조급함을 경계했다.

▲ 지난 5월18일 대한항공직원연대가 주최한 ‘조양호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3차 촛불시위’가 열렸다. 사진=이우림 기자
▲ 지난 5월18일 대한항공직원연대가 주최한 ‘조양호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STOP 3차 촛불시위’가 열렸다. 사진=이우림 기자

그럼에도 D씨는 “가장 안전한 게 노조다. 총과 같은 것”이라며 “직원들은 이 총을 쥐어야 하지만 언제 어떻게 쏘고, 뭘 장전할진 열린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직원연대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침묵을 풀고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민주노총이냐 한국노총이냐, 민주노총에 들어가면 회사가 망한다는 마타도어는 회사가 20년  동안 활용해 왔고 지금도 한다”며 “직원연대 스스로 논의해 답을 찾아나가면 될 일이니 우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서로 설득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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