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갑질 속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대변하고자 했다”
“방송계 갑질 속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대변하고자 했다”
‘그대 잘가라’ 출판기념회, 아내 오영미 작가가 본 고 김광일PD…“남겨진 아이들 위해 기억의 조각 긁어모으기 시작”

EBS ‘야수의 방주’ 촬영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광일 독립PD의 아내 오영미 작가의 에세이 ‘다큐PD였던 당신-그대 잘가라(출판사 그러나)’ 출판기념회가 26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렸다.

방송작가이기도 한 저자 오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김PD에 대한 기억과 독립PD들의 삶을 가족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한편 독립PD가 처한 현실도 지적했다.

▲ 고 김광일 박환성 PD가 탔던 차와 차에서 발견된 햄버거. 사진=장슬기 기자
▲ 고 김광일 박환성 PD가 탔던 차와 차에서 발견된 햄버거. 사진=장슬기 기자

오 작가는 이날 “(김PD가 세상을 떠난) 2017 여름은 유난히도 추웠다. 몸과 마음, 모두가 추워 덜덜 떨며 흐느껴 울었고, 살갗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며 “단지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다음은 남아공 현지시각으로 지난해 7월14일 오후 6시경, 한국시각으로 15일 오전 1시경 오 작가와 김PD가 나눈 마지막 대화다.

김PD “오전 촬영하고 이동해서 오후 촬영하고 이동…”
오 작가 “아, 몸은 괜찮지? 밥 잘 챙겨 먹어. 사랑해”
김PD “ㅇㅇ걱정하지마…문단속 잘하고 잘자…내일 일어나면 연락하고 나도 시간 되면 연락할게. 나도 사랑해~~~”
오 작가 “응 응~ 많이 많이 사랑해~”
김PD “ㅇㅇ나도~~~”
오 작가 “밥 잘 챙겨먹고~^^ 운전 조심해~ 나 너무 졸려서 자야겠다ㅠ 일어나서 연락할게. 운전 조심해~”
김PD “지금 이동”

▲ 김광일PD와 오영미 작가가 나눈 마지막 대화. 사진=장슬기 기자
▲ 김광일PD와 오영미 작가가 나눈 마지막 대화. 사진=장슬기 기자

이후 김PD는 답이 오지 않았다. 오 작가는 “‘지금 이동’이란 말이 마지막 말이었다. 대체 당신은 어디로 이동하려고 했던 걸까”라며 그리워했다. 오 작가는 남편을 만나러 한국독립PD협회 소속 송규학 협회장, 복진오 PD, 권용찬 PD등과 인천국제공항에 갔다. EBS 관계자, 국회의원, 많은 동료PD들이 모였고 취재진도 찾았다. 오 작가는 “난 나서는 것이 두려웠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인터뷰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뒤 가만히 서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랬던 오 작가가 펜을 들었다. 그는 “저마저 그 사람의 모든 기억을 잊고 다락방에 숨겨뒀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기억의 조각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PD와 오 작가 사이엔 두 자녀가 있다.

오 작가는 “(이 책은) 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방송계 ‘갑질’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방송인들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라며 “많은 이들이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가 난 지 6개월을 넘어 7개월로 향하고 있다”며 “변화의 발걸음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건 방송계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26일 오후 오영미 작가의 책 '그대 잘 가라' 출판기념회에서 오 작가가 출판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26일 오후 오영미 작가의 책 '그대 잘 가라' 출판기념회에서 오 작가가 출판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고 박환성PD의 동생 박경준씨도 참석했다. 박씨는 “오 작가님의 책은 유족 입장에서 아픈 기억이지만 사고 당시의 기억을 가능한 한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좁게는 방송 전반, 크게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부분이 개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아공 현지로 직접 떠나 PD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유족과 동료 PD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공개됐다. 남아공 사고 현장에 술을 따르며 권용찬 PD는 “오늘 이 자리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두 다큐멘터리스트가 잠들었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영상이 나오는 동안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쳤다.

송규학 독립PD협회장은 축사에서 “이 책은 독립PD나 방송계분들에게만 읽히는 책이 아니라 분야를 망라하고 다 같이 볼 수 있는 책이 돼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했다”며 “독립PD들을 더 기억해주고 ‘이런 사람들이 방송을 만드는구나’라고 공감해준다면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선 가수 타투와 희승연씨의 공연과 유현덕 한국캘리그라피협회 회장의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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