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무용가, 한국에서 ‘인간 존중’을 몸으로 말하다
아프리카 무용가, 한국에서 ‘인간 존중’을 몸으로 말하다
[인터뷰] ‘아프리카박물관 노동착취’ 고발한 무용가 엠마누엘 사누 “인간이 아이폰보다 싸게 팔리는 시대, ‘인간 존중’ 몸으로 말하고 싶다”

“사람 두 명이 아이폰보다 싸게 팔렸다. 울고 또 울었다.”

아프리카 대륙 출신 남성 두 명이 경매 시장에서 ‘1200디나르’(90여 만 원)에 팔렸다. 지난 14일 미국 뉴스채널 CNN이 보도한 리비아 난민 인간시장 리포트에 나오는 영상이다. CNN은 아프리카 난민 12명이 경매 시작 6~7분 만에 팔리는 모습, 경매인이 “땅 파는 인간” “크고 힘센 인간”이라 소리치는 모습, 이같은 ‘난민 시장’이 최소 9곳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미국 보도채널 CNN이 지난 14일 리비아 트리폴리 인근에서 벌어지는 아프리카 출신 난민 경매 시장 실상을 보도했다. 지난 8월에 찍힌 위 두 남성은 1200디나르에 낙찰됐다. 사진=CNN보도 캡쳐
▲ 미국 보도채널 CNN이 지난 14일 리비아 트리폴리 인근에서 벌어지는 아프리카 출신 난민 경매 시장 실상을 보도했다. 지난 8월에 찍힌 위 두 남성은 1200디나르에 낙찰됐다. 사진=CNN보도 캡쳐

현대무용가 엠마누엘 사누(37)씨는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파는 21세기에 있다”고 분노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그는 “우리는 고통이라는 잣대로만 잴 수 있는 인간”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품 이름은 ‘데게베(Degesbe)’로, 풀이하면 ‘무엇을 찾고 있는가? 거기엔 아무 것도 없어’라는 뜻의 부르키나 파소 민족어다. 지난 5년간 한국에서 ‘아프리카 흑인’으로 불려 온 그가 한국 사회에 묻고 싶은 질문이다.

한국은 리비아와 얼마나 다른가

사누씨는 지난 2014년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포천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노동 착취 사태’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당시 박물관장은 서아프리카 국가 부르키나 파소를 직접 찾아와 사누씨가 속한 댄스컴퍼니에서 채용 오디션을 열었다. 박물관에서 아프리카 전통춤을 추는 일자리였다. 동료 무용수가 ‘좋은 일자리가 아닐 것 같다’고 우려했으나 그는 2012년 한국행을 택했다.

2012~2014년 계약 기간 동안 책정된 월 급여는 60여만 원으로 시급 3000원을 넘지 않았다. 그마저 비행기 삯으로 월 10여만 원씩 공제해 실 수령액은 50만 원 수준이었다. 그와 동료들은 ‘한 달에 두 번씩 입 안이 헐 만큼’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받았다. 주 6일 근무, 하루 공연 횟수는 40~60분씩 최소 3회였다. 이들 무용은 하루 1회를 해도 체력이 소진될 정도로 체력 소모가 컸다.

▲ 공연 '데게베' 포스터.
▲ 공연 '데게베' 포스터.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권 다양한 나라에서 일을 해봤지만 이같은 처우는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이들은 2014년 2월 최초 고발 기자회견에서 “부당한 대우를 거부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그 자체가 노예”라며 자신의 일을 ‘노예노동’이라고 불렀다.

작품 ‘데게베’는 그가 한국에서 겪은 인종차별 경험을 담고 있다. 열악한 처우보다 참기 힘든 것은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었다. 사누씨는 “우리는 당신들을 도와주는 거야”, “한국인과 아프리카인은 달라” 등의 말에서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박물관 재직 당시 한국인 직원에게만 추석 휴가가 주어지는 것을 보고 문제를 제기했고 박물관 측은 ‘당신이 본국에서 이만한 샐러리를 받을 수 있겠냐’ ‘우리는 너희를 도와주려고 고용한 것이다’ 등의 답을 내놨다.

소소한 차별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택시잡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택시기사가 차를 세웠다가 이들의 피부색을 확인하고 ‘안태운다’며 승차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머리를 만져봐도 되냐’ ‘몸을 만져봐도 되냐’ 등 낯선 이에게 쉽게 할 수 없는 질문도 많이 받고 실제로 허락없이 손을 대는 사람도 있다. 한 중년 남성은 사누씨에게 반말로 말을 걸면서 바로 옆에 서 있던 고등학교 남학생에겐 존대말로 말을 걸기도 했다.

“재난지역 시민들, 대안학교 청소년, 장애인들과 무용으로 소통해”

그런 그가 2017년까지 한국에서 무용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좋은 한국인 동료들을 만난 덕분이다. 그는 박물관에서 나온 후 홍대에 있는 문화단체 ‘에스꼴라 알레그리아’와 함께 협업해 예술모임 ‘쿨레칸’ 팀을 결성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춤에 관심이 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댄스 커뮤니티를 만들어 4년 째 운영하고 있다. 커뮤니티는 구성원들이 부르키나파소로 2~3개월 동안 연수를 가고 새로운 무용수를 키워낼 정도로 성장했다. 이번 ‘데게베’도 댄스 교실 무용수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 노들야학에서 아프리카 춤 교실을 열고 있는 엠마누엘 사누. 사진=쿨레칸 제공
▲ 노들야학에서 아프리카 춤 교실을 열고 있는 엠마누엘 사누. 사진=쿨레칸 제공

그는 지난 3년 동안 하자작업장학교(청소년 대안학교), 일본 후쿠시마 재난지역 시민들, 노들야학 학생들 등 다양한 사람들과도 무용활동을 함께 해왔다.

다양성 교육의 일환으로 시작한 하자작업장학교 아프리카 춤 수업은 벌써 4년째에 접어들었다. 1년차부터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엠마누엘이 만드는 공연에 무용수로 출연하기도 했다. 교실 참가자들은 스스로 논의를 열어 자신들의 춤을 ‘아프리카 댄스’라 부르지 않고 부르키나 파소의 정체성을 살린 ‘만딩고’라고 부르기로 정했다. 한국무용을 ‘아시아 댄스’라고 칭하지 않듯, ‘아프리카 댄스’라는 말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누씨는 원전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 재난 지역을 올해까지 두 번 방문했다. ‘we21재팬’이라는 시민단체가 ‘재난 지역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표현하고 놀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이들을 초청한 것이다. 초청을 주도하는 활동가는 아프리카 대륙의 무용을 “생명력을 주는 몸짓”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교육공간인 노들야학 학생들과 함께 무용 수업을 한 지는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사누씨는 “장애의 유무와 별개로, 사람은 춤으로 함께 어울리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며 ”조금 느리더라도 각자의 속도대로 즐겁게, 그리고 함께 가자는 것이 수업의 취지“라고 말했다.

▲ 쿨레칸이 여는 아프리카 댄스 커뮤니티 구성원이자 공연 '데게베' 출연진 모습.
▲ 쿨레칸이 여는 아프리카 댄스 커뮤니티 구성원이자 공연 '데게베' 출연진 모습.

“언제부터 아프리카 사람이 흑인이었고 아시아 사람은 황인이었나”

그는 데게베 작품을 1년 전부터 준비해왔다. 공연이 비판적 메시지를 가지게 된 계기는 우연적이다. 자전적 작품을 구상하다 ‘인간의 의미’에까지 자연스럽게 고민이 확대됐다. 20세기 나치 골상학은 두개골 크기, 피부색으로 인간의 우열을 가렸고 미국 사회 또한 1960년대까지 인종 간 결혼을 법으로 금지했다. 21세기엔 ‘인종차별하면 안된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등의 말이 힘을 얻고 있다. 동시에 리비아에선 아프리카 난민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사누씨는 리비아 경매 시장과 관련된 모든 뉴스와 영상 제작물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 난민 문제는 그들이 줄기차게 지적해 온 문제”라며 “각 당국, 유럽연합, 아프리카국가연합체 등이 보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CNN이 실체를 보도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상황을 ‘마이크를 둘러싼 쟁탈전’으로 무대에 올렸다. 데게베 속 무용수들은 극의 후반부에서 마이크를 둘러싸고 고성을 지르고 서로를 밀치는 쟁탈전을 벌인다. 사누씨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내가 말할 수 없나” “나는 할 말이 많다” “나는 모두처럼 말할 수 있다. 나는 모두와 같다” 사누씨의 극중 대사다.

“진짜 잠 든 사람은 깨울 수 있다. 그런데 잠든 척 하는 사람은 절대로 깨울 수 없다.” 부르키나파소 속담으로, 잠든 척 하는 사람은 ‘인종차별을 머리로 알면서도 계속 하는 사람이나 그런 상황’을 뜻한다. 사누씨는 공연 안무가 마무리 될 즈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존중을 말할 수 있는 공연이 될 수 있을 거라 느꼈다”고 말했다. “모두가 ‘우리는 호모사피엔스’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개념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에게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사태는 ‘끝난 일’이 아니다. 무용수들이 체불임금을 받고 박물관 측과 합의한 후 고국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는 “법적 테두리내에서 사건이 정리된 것이지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해결됐느냐’고 물었을 때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 적이 있다”며 “돈이나 법이 할 수 없는 일을 데게베로 환기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인간 차별에 대한 메세지를 다큐멘터리, 뉴스 등 기존 통로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나의 한국에서의 경험을 다룬 이야기이며,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우리는 16세기가 아닌 21세기에 살고 있고, 지금의 인간은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월감과 열등감을 버리고, 우리들은 서로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합니다” 사누씨가 정리한 공연 시놉시스다. 데게베 공연은 오는 25일부터 이틀 간 서울 서교동 포스트 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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