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게 없으니…”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국회 앞 농성
“변한 게 없으니…” 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국회 앞 농성
[현장] ‘형제복지원 특별법’ ‘과거사정리 기본법’ 통과 요구…2년 전 그 자리에서, 잊히지 않기 위한 무기한 농성 돌입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다시 국회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피해생존자인 한종선·최승우씨는 지난 7일 오전 4시부터 국회 앞에 농성을 시작했다. 지난 2015년 4월28일부터 약 2개월 동안 농성을 했던 그 장소다. 2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진상규명 움직임이 없자 다시 거리에 나온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9일 오전 국회 앞 현장을 찾아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형제복지원은 내무부 훈령에 근거해 1975년 7월부터 1987년 6월말 폐쇄 때까지 밝혀진 것만 3500여 명을 수용해 강제노역·구타·성폭행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고, 55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곳이다. 2012년 한씨가 국회 앞 1인 시위를 시작해 처음으로 피해자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국회에서 ‘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폐기됐고, 이번 국회에서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슷한 내용으로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발의했다.

▲ 국회 앞 농성 3일차를 맞은 9일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국회 앞 농성 3일차를 맞은 9일 오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지난 7일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사진=한종선 페이스북
▲ 지난 7일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사진=한종선 페이스북
한씨는 “박근혜 탄핵되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되면서 정신이 없었다. 사실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피해생존자 모임 내부에서) 많았는데 우리가 새 정부 힘을 뺄 이유는 없지 않느냐. 내각이 제대로 꾸려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9월정도 와서 안정화됐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 9월6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형제복지원 터가 있던 부산 주례동에서 시작해 약 486km를 22일 간 걸어 청와대까지 도보로 행진했다. 사건을 잊은 국민들을 위해 진상규명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들은 다른 국가폭력·시설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자는 의미에서 대구 희망원을 들렀고, 안산 선감도 피해자들을 만났다. 특히 선감도 피해자들을 만난 건 의미 있었다고 했다. 선감학원 문제는 1941년부터 1982년까지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에 있는 섬에 아동들을 강제 수용해 조선총독부·독재정부가 각종 인권침해를 벌인 사건이다.

최씨는 “직접 선감도 피해생존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연대의 힘이라고 할까나 그런 걸 느꼈다”며 “말을 안 해도 와 닿는 게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광명시청에서 청와대까지 행진 일정은 선감도 피해자들도 함께 걸었다. 최씨는 “유신정권에서 (선감도 인권유린) 사건이 있었고, 박인근(형제복지원 원장)이 그걸 보고 배우지 않았을까 싶었고, 그게 80년대까지 이어져 형제복지원 사건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먼저 모임을 만들고 스스로 주체가 돼 세상에 알린 만큼 “피해당사자들이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충분히 얘기하고 왔다”고도 했다.

청와대 앞에선 경찰에 가로막혔다. 가까스로 미리 약속이 됐던 청와대 행정관을 만났다. 최씨는 “청와대에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브리핑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그들도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소해주진 못했고, ‘우리가 법을 만드는 곳은 아니’라며 국회로 공을 돌렸다”고 아쉬워했다. 22일 간 6명이 주로 행진에 참여했다. 한씨는 “22일 내내 티격태격하면서 올라왔다”며 “그동안 피해자들은 누군가가 도와줘야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스스로 결정해서 국토대장정을 성공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구나’라는 성취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국가폭력 이후 소심하고 수동적이었던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건 ‘나도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이다.

▲ 지난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22일 동안 부산 주례동 형제복지원 터에서부터 서울 청와대까지 도보로 행진했다. 사진=이향직 페이스북
▲ 지난달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22일 동안 부산 주례동 형제복지원 터에서부터 서울 청와대까지 도보로 행진했다. 사진=이향직 페이스북

이번 국회 앞 농성도 피해자 모임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했다. 최씨는 “변한 게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한씨 홀로 58일을 버틴 경험이 바탕이 돼 준비가 수월했다고 전했다.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곧 천막도 칠 예정이다. 한씨는 “아직 우리는 큰 돈을 관리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며 공식 후원을 받지도 않는다. 아침과 점심은 빵이나 과일 등으로 요기하고 저녁만 식당에서 해결한다. “일단 아껴서 살고, 나중에 어려워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

12월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과거사정리법)’이 통과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내년 지방선거(6월13일)까지 농성을 지속하겠다는 게 현재 계획이다. 과거사정리법은 현재 진선미·소병훈·추혜선 등 많은 의원이 각각 발의해 국회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2005년 12월부터 5년간 활동했던 진실화해위의 활동을 재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씨가 용기 내 세상에 나선 2012년엔 이미 진실화해위 활동이 끝난 때였기 때문에 2기 진실화해위가 꾸려질 경우 형제복지원 사건도 조사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 형제복지원 불법감금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도록 하는 내무부 훈령에 따라 자행된 사건이다. 사진=형제복지원사건진실규명을 위한대책위원회 제공
▲ 형제복지원 불법감금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도록 하는 내무부 훈령에 따라 자행된 사건이다. 사진=형제복지원사건진실규명을 위한대책위원회 제공

지난달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등 해외 입양기관을 통해 형제복지원에 있던 아이들이 입양된 사실이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아소대(형제복지원은 군대식 체제였다)가 있었고 해외 입양기관에 보내기 위한 행사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팔아 이권을 챙겼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미약하지만 학계와 국회 등에서 노력해 증언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준 것이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었고 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씨는 “적폐청산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 문제에도 적폐들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가 폭력의 구조를 만들고 민간에 위탁해 인권유린이 발생하면 시설만 폐쇄하고 가해자가 사라지는 역사를 뜻한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다수는 건강이 좋지 않다. 농성을 결정할 때 우려의 시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씨는 “싸움에도 타이밍이 있을 텐데, 지금이 그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들의 공통적인 꿈은 투쟁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다. 2년 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도 한씨는 “대학에 가고 싶다”며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었다. 졸업장을 하나씩 따면서 수능까지 봤지만 공부에 몰입할 수 없는 탓에 대학 진학엔 실패했다. 최씨 역시 “검정고시로 못 다닌 중학교 졸업장도 따고 싶고 나중엔 방송통신대학교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겨울의 문턱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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