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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레이팅으로 데이터 공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제로레이팅으로 데이터 공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새 정부 ‘제로레이팅’ 본격 도입 논의, 사업자 부익부 빈익빈 야기하고 이용자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망중립성 원칙 흔들 우려도

SK텔레콤 가입자는 자회사가 운영하는 11번가의 쇼핑 데이터 요금을 무료로 제공받고 있다. SK라는 통신망을 쥔 사업자가 이 망에서 서비스를 하는 제휴 서비스의 데이터 요금을 감면하는 것으로 이를 ‘제로레이팅’이라고 한다. 현재 일부만 허용되고 있는 제로레이팅을 정부는 본격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나섰지만 역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 불공정 경쟁 야기

시민사회와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통신사 중심의 제로레이팅 정책이 부당한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2015년 2월 뉴시스 기사를 보면 “모바일 데이터 프리를 적극 시행해 SK텔레콤 소비자에게 부담 없는 모바일 쇼핑 환경을 구현한 것이 (시장 1위를 차지한)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11번가 관계자 발언이 나온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른 나라였으면 부당거래에 대한 자백으로 볼 것이다. 공정거래법으로 제재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민단체 오픈넷은 제로레이팅이 ‘시장지배력 남용’ 및 ‘부당지원’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 서울 시내 통신대리점. 사진=연합뉴스
▲ 서울 시내 통신대리점. 사진=연합뉴스

OTT(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시장도 마찬가지다. 콘텐츠연합플랫폼(푹)이 의뢰해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SK텔레콤 이용자가 가장 많이 쓰는 동영상 앱은 옥수수(47.7%)였고, KT의 경우 올레TV모바일(45.9%) LG유플러스의 경우 비디오포털(47.5%)이었다. 기본앱 탑재 및 제로레이팅의 효과로 보인다.

한 OTT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제로레이팅은 SK-포켓몬고 사례를 빼고는 기업집단 내부거래에 의한 것이었고, 외부사업자는 시도할 수 없어 그 자체로 차별소지가 있었다”면서 “모바일 시장 지배력이 OTT시장 지배력으로까지 옮겨가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2. 비계열사 제로레이팅은 문제없다?

물론, 통신사들은 “계열사 뿐 아니라 다른 사업자들에게 같은 조건으로 개방하면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모든 사업자와 같은 조건으로 계약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전무하다.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는 “어떤 회사와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고, 계약조건을 공개하라고 요구할만한 근거도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비계열사 제로레이팅이라고 하더라도 막대한 데이터 비용을 감당해야하는 제로레이팅은 자본력이 막강한 사업자만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간 격차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나 유튜브 같은 사업자가 SK나 KT와 제로레이팅 계약을 맺게 된다면 군소 검색사업자나 OTT사업자들은 밀릴 수밖에 없다.

3. 사후규제하면 괜찮다?

정부는 제로레이팅을 우선 시행해보고 사후규제로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송재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 과장은 7일 정책 토론회에서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허용하되, 불공정행위 발생 가능성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 하는 사후 규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EU도 사후규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역시 같은 방식으로 도입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박지환 변호사는 “유럽의 경우 네덜란드는 제로레이팅이 금지돼 있다”면서 “국가마다 시장상황이 다르지만 한국의 경우 통신사 과점 문제로 경쟁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통신사를 대상으로 한 사후규제가 제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유명무실한 규제가 될 우려도 있다. 오랜 기간 통신사들이 지속적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고도 불법 마케팅을 벌여온 이유는 ‘과징금’으로 얻는 피해액보다 ‘불법행위’로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SK텔레콤의 영업정지를 결정해놓고선 SK텔레콤의 피해가 덜 가는 시기에 맞추기 위해 영업정지 시작일을 연기해 빈축을 샀으며 방통위의 조사를 거부한 LG유플러스는 현행법의 한계로 75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 받는 데 그쳤다.

4. 이용자 혜택? 공짜는 없다

정부가 제로레이팅 검토에 적극적인 이유는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요공약으로 내건 상황에서 다른 가계통신비 정책과 달리 통신사의 반발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로레이팅은 공짜가 아니다. 이용자에게는 무료지만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용자의 데이터 요금을 대신 내주는 방식이다. 콘텐츠·플랫폼 사업자는 광고를 늘리거나 상품 가격을 올리는 등 다른 방식으로 지출한 비용을 충당할 가능성이 높다.

▲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의 데이터 프리 정책. SK텔레콤 가입자의 11번가 쇼핑 데이터 요금은 11번가가 부담해 소비자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의 데이터 프리 정책. SK텔레콤 가입자의 11번가 쇼핑 데이터 요금은 11번가가 부담해 소비자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극단적으로는 제로레이팅을 통해 특정 사업자의 독점구조가 구축된다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독점에 따른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지난 7일 국회 토론회에서 이금노 한국소비자원 연구위원은 “독과점의 고착이나 이용자 묶어두기, 콘텐츠 다양성 제한 등까지 고려해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편익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부분이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우려 탓에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망 중립성 원칙을 고수해온 것이기도 하다. OTT업계 관계자는 “누군가를 우대하는 건 누군가를 차별한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제로레이팅은 사실상 망중립성 원칙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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