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구속)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이익을 위한 합병안에 찬성하도록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대한 해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이사장은 직권남용과 위증 혐의로 구속된지도 두달 가까이 되는데도 여전히 이사장직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문 이사장이 국민연금 이사장 때가 아닌 복지부장관 시절에 벌인 일이라 해임사유가 안된다는 이유로 해임건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등 복지 관련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21일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건물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문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범죄 혐의의 확정 여부를 떠나 문형표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며 “국민연금은 삼성-최순실-박근혜 비리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그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지원을 위해 국민연금은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구의 반대에도, 또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투자위원회를 열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했다. 이 과정에 외압을 행사한 당사자가 당시 복지부장관을 맡고 있던 문형표 이사장이었다. 이를 두고 이들은 “국민연금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자가 어떻게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할 생각을 했단 말인가”라며 “모든 것이 드러난 만큼 당연히 이사장에서 물러나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고, 그 죗값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국민들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면 문형표는 즉각 해임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법 등 관련 법·규정에 따르면 이사장은 직무에 따른 의무를 위반한 때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공단에 손실을 생기게 한 때에는 임면권자가 해임할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문 이사장은 장기간 조사와 구속으로 직무에 따른 임무를 전혀 수행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사장으로서 충실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점도 해임 사유에 해당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들은 “그런데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계속 눈치만 보다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과 국회의 질타에 몰려 마지못해 내일(22일) 문 이사장을 면담해 자진사퇴의사를 확인하겠다고 한다”며 “사퇴의사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해임절차를 통보해야 하는 게 맞다. 그저 여론에 밀려 보여주기식 면담을 진행하는 것이라면 국민들의 분노는 복지부로 향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들은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재벌과 정권에 악용되었다는 것에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치솟고 있다”며 “그럼에도 그 중요 책임자였던 문형표가 아직도 이사장을 물러나고 있지 않은 것은 국민들을 정말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날 참석한 정용건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집행위원장은 “문형표 이사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을 하도록 직권을 남용해 국민연금에 490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며 “국민의 돈 550조원을 갖고 국민 노후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자리에 있는 자가 이런 지경에 있는데 이사장직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삼성물산 제일모직 문제로 국민연금이 털렸는데, 이사장이 물러나지 않고 있는 국민연금을 국민이 어떻게 용납하겠느냐”며 “즉각 해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연금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김욱동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문형표와 같은 부역자는 지금 즉각 퇴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부위원장과 함께 국민연금 비상임이사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문형표 이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의 이익을 대변했다”며 “메르스 사태 때 공포에 떨게 하고 있을 때도 오히려 삼성(의료원)을 대변했다. 문 이사장을 해임하기 위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사팀장은 “보건복지부는 해임건의를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로 ‘문형표가 저지른 짓이 이사장으로서가 아니라 그 전에 보건복지부 장관 때 저지른 것이기 때문에 해임사유가 안된다는 것’을 들고 있다”며 “(이런) 해괴망칙한 궤변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그렇게 형식논리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이사를 해임하거나 주무부처 장관이 임명권자에 해임건의해야 한다는 법률부터 이행해야 한다”며 “이 같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또다른 직권남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경진 위원장은 현재 국민연금의 기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100조원 안팎) 가운데 주총을 앞두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KT의 의사결정에 대해 제대로 된 주주권 행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기자회견 뒤 만난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기금운용을 주주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익률 위주로 해왔다”며 “하지만 연금보험료는 국민과 노동자들이 지급하는 것인데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하는데 찬성표를 던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3월 예정된 KT 주총 안건인 황창규 회장 연임안에 대해 최 위원장은 “KT의 경우도 사람 잘라서 기업 이익을 낸 황창규 회장에 대해 연금이 찬성 입장을 내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며 “이렇게 가서는 되겠느냐. 노동자의 목을 자르는 데에 국민연금이 동원돼서야 되겠느냐. 기금운용의 전반적인 것을 따져봐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