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을 ‘3·1운동’으로 끌어내린 사람이 이승만”
“‘3·1혁명’을 ‘3·1운동’으로 끌어내린 사람이 이승만”
‘이승만은 태생적 독재자’ 논쟁…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발족

1919년 일본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온 국민이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3‧1독립선언 95주년을 앞둔 26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3·1운동의 혁명성을 앞장서 부정하면서 ‘3·1혁명’의 의미가 축소됐다는 역사학계의 주장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이날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국에서 민국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3‧1혁명 95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의 3·1운동에 대한 인식이 논쟁의 대상이 됐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는 이날 기념강연을 통해 “‘운동’은 흔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한 시대 역사를 움직였던 일련의 ‘사건’을 의미해 왔으나 그것을 ‘혁명’이라고 할 때에는 그 운동력이 체제를 바꾸었거나 거기에 준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선진들이 ‘3·1혁명’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독립운동적 측면에서는 ‘민족혁명’의 성격을 가졌다고도 했고, 전근대적인 정치체제를 뒤엎고 새로운 정치사회체제를 재래했다는 점에서는 ‘민주혁명’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3·1운동에서 나타난 ‘민주정신’이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국가 건설로 구체화됐다”며 “한국 민주화의 여정이 깊었던 것은 군국주의 일제 이후 서구화로 포장된 이승만의 위장 민주주의와 일제 군국주의 아류인 박정희의 유신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데에 결정적인 힘이 됐다”고 평가했다.

   
26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3‧1운동 95주년 학술회의에서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사진=강성원 기자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임시정부의 마지막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1944)에는 3·1운동을 ‘3·1대혁명’이라고까지 명명했고, 해방 이후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제헌국회에 제출된 헌법 초안엔 ‘3·1혁명’으로 표기됐다.

이 위원은 “이는 독립운동 진영의 3·1혁명 인식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제헌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이승만 세력과 한민당에 의해 ‘3·1혁명’은 ‘3·1운동’으로 바뀌었다”며 “제헌헌법 전문 심의과정에서 ‘3·1혁명’의 혁명성을 앞장서서 부정한 이승만은 필요에 따라 ‘3·1혁명’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결국 이승만이 ‘3·1혁명’을 오로지 정권의 획득과 유지라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혁명’을 내세운 것과 배척한 것을 되풀이한 이중성이야말로 ‘3·1혁명’의 의미가 축소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희경 경희대 교수는 3·1운동과 관련해 제헌국회의 헌법 전문에 관한 논의에 대해 “3·1운동이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이고, 민주주의는 이후 한국인의 투쟁을 통해 만들어 온 것이라는 점에서 수입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이승만이 최초로 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사실 이승만의 견해에 따르면 3·1운동은 일종의 혁명으로, 이승만이 처음부터 독재적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가 만약 태생적 독재자였다면 3·1운동을 통해 우리가 민주정부를 세웠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사실을 헌법전문에 넣어 역사에 길이 남기자고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나미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이승만이 헌법 전문에 3·1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공포하고 민주정부를 세웠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것을 두고 이승만이 태생적 독재자는 아니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라며 “그는 하와이 동지회 시절 등 처음부터 독재적인 양상을 보이며 태생적 독재자라고 하는 증거가 무수히 많고, 이는 이완용이 비록 나라를 일본에 팔았지만 그렇게 일본을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사생활이 건전하고 채식주의자였다고 하는 논리와 유사하다”고 반박했다.

   
▲ 서울시 중구 장충동 자유총연맹 광장에서 대형 태극기가 이승만 동상 너머로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이날 오전엔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3‧1운동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고 3‧1운동의 위상을 재평가하기 위한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도 발족했다.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도산학회 회장)을 상임대표로, 이종걸 민주당 국회의원과 박순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지도위원장 등 10명을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윤경로 상임대표는 이날 대회사에서 “우린 그동안 3‧1운동을 개천절과 제헌절, 광복절 등의 여러 국경일과 함께 불러왔는데, 3‧1절의 뜻에 제헌절이나 광복절 같은 역사적 의미를 담지 못한 채 단순히 3‧1절로 무미건조하게 불러온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기미 3·1운동의 주체가 일반 백성이었다는 점에 주목해 3·1운동은 백성이 궐기한 민(民) 주체 혁명이었다는 점에서 민간 차원의 기념사업이 필요해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위원회는 3‧1운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최근 학계에서는 3‧1운동의 역사적 의미가 단순한 항일운동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일대 전변의 계기를 제공한 혁명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면서 “3‧1혁명을 계기로 군주제가 극복되고 민주공화제 이념이 뿌리를 내렸으며, 민중의 민족적·계급적 각성 또한 크게 높아졌다는 시각이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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