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그의 아들 김정은 후계체제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에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변수이다. ‘안보 변수’가 한나라당에 유리할 것이란 관측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정국’의 반사이익을 노리려다 선거참패라는 된 서리를 맞았다. 안보 정국은 전쟁 대 평화라는 또 다른 대립구도를 불러왔고, 당시 야권의 ‘평화카드’는 적중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북한 변수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대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채 마무리를 준비하던 박근혜 전 대표는 2006년 10월 9일 북한 핵실험 사태 이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역전을 당했고 결국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채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하고 말았다.

   
문화일보 2006년 10월 19일자 6면.

문화일보는 10월 19일자 <북핵 이후 이명박, 2위 박근혜와 격차 확대>라는 사설에서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 사태가 대선후보 지지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헤 전 한나라당 대표 간 지지도 격차 확대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10월 18일자 8면 <북 핵실험 후 이명박 지지율 가장 많이 올라>라는 기사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대선주자의 지지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난 9일 북핵 실험 이후 실시된 3개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통적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가장 많이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북핵 변수는 힘 있는 지도자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는데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미필자’ 출신이지만, 박 전 대표보다는 높은 점수를 얻었다.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여성이라는 점이 북핵 변수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에서는 대선 1년 전 재연된 ‘북한 변수’가 달갑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CBS노컷뉴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선택은 ‘보수본색’ 강화이다. 보수진영의 이해요구를 대변하는 행보로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는 12월 21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대표께 의논드리고 싶은 것은 정부가 정부차원의 조문단 파견은 하지 않기로 결정돼 있지만, 국회차원에서는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국회차원의 조문단 구성도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조문단 구성은 박근혜 전 대표 거부로 무산됐다. 신기남 전 의원은 21일 성명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에 따른 국회 차원의 조문단을 구성하자는 민주통합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현 정부와 차별화된 ‘신뢰외교’를 주장했던 박근혜 위원장의 대북정책이 실제로는 이명박 대통령과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사실을 자인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유연한 대응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2006년 북핵 위기 때의 ‘악몽’을 재연하시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보수진영 입맛에 맞는 선택은 ‘집토끼’ 강화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진보나 중도 등 ‘산토끼’를 잡는 데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일신문은 12월 21일자 5면 <박근혜, '2006년 악몽' 두렵다>는 기사에서 “(2006년) 당시 보수진영에서는 군대경험이 없는 여성 정치인이 과연 위기상황에서 관리능력을 제대로 발휘할지 의문을 제기했고, 이는 박 위원장에게 큰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 당장은 안보정국 속에서 보수층 결집과 이명박 정권의 각종 실정이 가려지는 착시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는 보수정당에 대한 일시적 의존과 지지일 뿐이라는 지적이다”라고 보도했다.

주목할 대목은 야당이 요구한 국회 차원의 조문단 파견을 거부한 것이 박근혜 전 대표 위기관리 능력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을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하는데 ‘박근혜 비대위’가 이번 사태에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 12월 21일자 23면.

경향신문은 12월 21일자 23면 <또 '북한 징크스'…묻히는 박근헤 정치>라는 기사에서 “비대위원장으로 5년 만에 당 전면에 나선 날 '김정일 사망' 소식이 날아들면서 박 위원장의 메시지와 행보는 부각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김정일 사망 정국에서 '박근혜 비대위'는 아직까지 움직일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일 비대위 출범 소식은 '김정일 사망' 소식에 가려졌고, 비대위의 성패를 가를 초반 움직임도 완전히 묻혔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위원장 아들인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해 보수언론들이 ‘왕조 시대’ ‘세습체제’ 등의 표현을 동원해 비판하고 있는 것도 박정희 전 대통령 딸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선출의 형식과 내용, 절차가 다르지만 대를 이어 최고 권력자가 되겠다는 목표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