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취재를 통제한 채 진행된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처리와 관련해 청와대는 “다행이다”라는 공식 반응을 전했다. 야당을 속이고 언론의 취재까지 봉쇄한 사실상의 ‘의회 쿠데타’에 대한 청와대 입장은 그러했다.

한미FTA 날치기 처리는 청와대가 한나라당이라는 말 잘 듣는 국회의원 집단을 제어하는 ‘힘’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청와대를 향해 항의의 연판장을 전하고 심지어 대통령 사과에 탈당까지 요구하기로 했던 그 의원들도 청와대의 국회 비준촉구라는 출격 명령에 순순히 응했다.

야당은 사상 초유의 의회 쿠데타라고 반발하는 상황이지만 이명박 정권 청와대는 특유의 ‘결과 중심주의’ 사고를 보여줬다. 과정이 어찌됐건 결과만 원하는 대로 되면 그만이라는 위험한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한 청와대 입장을 말씀드리겠다. 어려운 과정을 거쳤지만 한·미 FTA가 비준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간 한·미 FTA에 대해 절대적 지지를 보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청와대는 한미FTA에 대해 국민이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날치기 행태를 치하하는 모습도 보였다. 최금락 홍보수석은 “오랫동안 한·미 FTA 비준을 위해 애써온 의원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거수기’를 자처한 원내 제1당 한나라당의 기습적인 날치기 처리와 한나라당 출신 박희태 국회의장의 동조로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부끄러운 장면을 연출했지만, 청와대는 “애써온 의원 여러분께 고맙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청와대의 ‘결과 중심주의’는 민심 외면과 맞닿아 있는 모습이다. 민심을 경청하지 않는 권력은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야권에서 이명박 대통령 퇴진운동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은 실행여부와 무관하게 청와대가 얼마나 민심에 귀를 막고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미FTA 날치기 처리는 지금까지 국회에서 벌어졌던 각종 법안 강행처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물론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이다.

하지만 그러한 중요한 결정을 국회 날치기로 그것도 언론이 통제된 상태에서 처리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와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는 23일 성명에서 “한미 FTA 마저도 580만 중소상인에 대한 보호대책마련에는 소홀히 한 채, 국내 자동차 대기업과 통상관료 및 외국의 개방 압력에 이끌려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이 파국의 책임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당연히 져야 한다”고 말했다.

농민은 물론 중소상공인들의 반발도 심상치 않다. 결국 한미FTA가 대기업, 그것도 특정 분야의 이익을 안겨줄 지는 모르지만 광범위한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도 여론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론의 반발이 거셀 것이란 점은 어느 정도 예견된 부분이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언론의 역할’을 주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방송사와 보수신문 등에서 한미FTA 처리 과정의 문제점과 피해 문제 보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전하면서 여론 환기에 나설 경우 ‘비판 여론’을 정면 돌파 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23일 한미FTA 관련 긴급 관계 장관 회의 발언은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를 놓고 격론이 오갔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갈등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제 더 이상 갈등을 키우는 것은 국가나 개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의회쿠데타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갈등을 키우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은 검찰과 경찰을 향한 대통령의 ‘메시지’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야당과 시민사회, 시민들의 반발을 공권력으로 ‘제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 발언에 대해 “헌정사상 유례없이 언론 취재까지 철저하게 막으며 ‘비공개’ 날치기로 의회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는 야만적 의회 폭거와 정치 쿠데타를 벌여놓고 어떻게 이처럼 당당할 수 있는지 그 뻔뻔스러움이 놀라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대통령은 정작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도대체 누가 갈등을 키우고 있으며 누가 국가의 이익을 망치고 있는데, 적반하장으로 국민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가.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치 폭거를 사주해 놓고 오히려 국민을 우롱하고 협박하는 청와대의 후안무치함은 국민의 끓는 분노와 원성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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