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하나가 ‘SNS원천규제법’이라고 불리면서 철회된 것은 일종의 해프닝이다. 이번 해프닝을 계기로 다른 더욱 중요한 문제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자 적는다.

이번에 철회된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 민주당 장세환 의원 등이 공동발의한 법은 망중립성 법안이 맞고 그렇게 심하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망중립성이란 일종의 초과규제적인 공정거래법 류의 규제로 보면 되는데 통신 즉 원격통신(telecommunication)의 발달로 이 통신의 물리적 기반인 통신망을 제공하는 사업자들을 다른 분야의 사업자들보다 더 강하게 통제하여 국민, 기업 및 정부 간의 통신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규범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망사업 같은 경우 자연스럽게 독점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아주 먼 비유이기는 하지만 물이나 전기가 기본적인 생활의 필수요소라는 이유로 수도사업자나 전기사업자에게 다른 사업자들에게 부과되지 않는 소비자보호의무가 부과되는 것과 비슷하다. 즉 통신사업자들에게도 그러한 공적책무를 부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맹아는 사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도 이미 포함되어 있다.

제3조(역무의 제공 의무 등)

① 전기통신사업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역무의 제공을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전기통신사업자는 그 업무를 처리할 때 공평하고 신속하며 정확하게 하여야 한다.
③ 전기통신역무의 요금은 전기통신사업이 원활하게 발전할 수 있고 이용자가 편리하고 다양한 전기통신역무를 공평하고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 파놉티콘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이다.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단어로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이다. 사진은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의 내부. ⓒ위키피디아
 
영리사업자들에게 ‘공평하고 저렴할’ 의무를 법적으로 부과하다니, 이런 의무를 동네식당이나 이발소에 부과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만큼 통신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통신을 공공성의 영역에 넣어보려는 시도 중의 하나인 것이다. 

망중립성규범은 물론 이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망을 이용하는 기업들과 개인들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장제원 의원 안이 실제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고 이 안은 최근 망중립성이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로 보면 행정규칙의 형태로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령으로 법제화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별금지규범에도 한계가 있어 불법정보와 합법정보를 차별하여 불법정보의 유통은 거부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허용된다는 취지의 예외조항들이 들어가 있다. 이 조항이 아마도 불법정보를 통신사들도 차단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SNS 원천규제법”이라는 표현의 근원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모든 전기통신사업자들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소위 “망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정보 차단명령을 준수할 의무(44조의7)가 있고 또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를 자발적으로 차단할 권한도 있다(44조의2). 물론 두 가지 제도 모두 위헌심사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헌법소원은 위 제도들의 다른 측면 때문에 제기된 것이지 사업자가 불법정보 또는 권리침해정보도 반드시 유통시킬 의무가 있다는 취지로 제기된 것은 아니다.

물론 위 법안이 전혀 예기치않은 결과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 SK텔레콤이나 KT같은 통신사들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정보차단요구에만 응하고 있지 포털들처럼 자발적으로 불법정보나 권리침해정보를 솎아내고 있지는 않다. 통신사들에게도 ‘불법정보를 차단할 권한’을 법조문에 명시해주면 혹시나 통신사들도 자발적인 권리침해정보 솎아내기를 시작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선 그렇게 시작을 하면 통신사들은 과거 국영이거나 거의 특허를 받아서 설립된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 포털사들보다 훨씬 더 ‘고분고분’하며 바로 여기에 국가에 의한 간접적인 검열의 공간이 열리기는 한다. 하지만 요원한 가능성의 책임까지 장제원 안에 부과하여 '원천규제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안의 공익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균형이 맞지 않는다. 

혹시 사람들이 장제원의원안을 다른 법안과 혼동한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지난 10월20일 25차 전체회의 회의록을 보면 앱규제 방식에 대한 나의 질문에 답하면서 박만 위원장이 “사업자들이 미성년자에게 스마트폰을 판매할 때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필터링을 반드시 부착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 발의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회의가 끝난 후에 나도 다른 자리에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바로 올해 터키정부가 이와 비슷한 법안을 시도하였다가 거의 터키판 촛불시위를 만나서 좌초되었다. 국민이 정보를 취득하려는 행위를 자신이 소유한 단말기가 아예 처음부터 차단하도록 만든 것이야말로 터키국민들에게 ‘원천적’규제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박만 위원장이 언급한 스마트폰필터링의무화법안이 누구 발의안인지는 모르겠는데 실제로 발의가 되었다면 이 법이야말로 ‘SNS원천규제법안’이라고 할만하다. 이 법안은 박만 위원장이 추진한 것이 아니고 전 위원장이었던 이진강 위원장이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다.스마트폰필터링의무화법안은 아마 일본에 비슷한 법이 있어서 이진강 전 위원장이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발의가 되어 있다면 주시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장제원 안에 대해서도 이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은 전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망중립성 최근 논의는 통신 내용 상의 차별 보다는 통신포맷 상의 차별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망중립성법안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좀더 세밀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선 망중립성규범은 전반적으로 원래 이용자들과 사업자들 사이의 공정한 협상과 경쟁을 위한 일종의 공정거래법적 규제이므로 국민 입장에서 반대할 법안은 아니고 반드시 공정거래법적인 성격이 갖춰지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다. 즉 망중립성법안은 기본적으로 망사업자에게 공적책무를 부과하려는 법인데 ‘우리나라는 브로드밴드 자원이 충분해서 망트래픽이 공정하게 분배되는지 다툴 필요는 없고 망사업자들 지원만 충분히 해서 계속 브로드밴드강국 자리만 유지하면 된다’는 논리에 밀려 ‘망사업자보호법’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항상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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