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검찰총장의 취임 일성은 ‘종북 좌파 척결’이다.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다. 검찰 칼날의 방향을 암시하는 예고편이기 때문이다. 검찰수장과 일부 언론이 ‘색깔론 광풍’을 조장하고 있지만, 국민이 공감하지 못할 경우 임기말 권력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 편집자 주

“종북 좌익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 한상대 검찰총장의 지난 12일 취임사는 참으로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검찰 안팎에서도 발언 배경을 놓고 술렁일 정도였다. 검찰총장은 엄정한 법집행을 책임지는 인물이지 보수단체의 ‘안보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8월 15일자 <한상대 총장은 ‘종북좌익 세력’의 증거부터 대라>는 사설에서 “(종북좌익 척결은) 법적 용어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쓰는 이념성이 다분한 말”이라며 “한 총장은 무엇을 보고 체제수호를 위해 좌익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가”라고 지적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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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총장 발언이 뜬금없어 보이지만, 이 주장에 힘을 싣고 변론을 아끼지 않는 언론도 있다. 중앙일보는 8월 15일자 <한상대 검찰총장의 종북세력 척결 선언>이라는 사설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활개 치는 종북·친북 현상을 제어할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면서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종북 세력에 지나치게 관대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대한민국의 존립을 흔드는 종북 세력에 대해 철저히 대처하는 것은 검찰의 당연한 책무다. 오히려 지난 정부에서 검찰이 이 소임을 방기한 것이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상대 총장 발언은 ‘공안통치’를 노골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에 흘려듣기 어려운 내용이다. 임기 4년차인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사정기관을 활용해 비판여론을 옥죄려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한상대 총장 발언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무차별적 수사와 기소, 광우병 위험성을 다룬 MBC PD수첩에 대한 무리한 기소, 네티즌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에 대한 정치적 기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사문화된) 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통신죄를 이용한 수사 및 기소, 용산 과잉진압에 대한 편파적 수사와 수사기록 비공개 등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꾸준히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2년은 19대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로 검찰의 엄격한 정치중립성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이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체제수호가 과거 군사정권시절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온 점을 상기할 때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중대한 선거들을 앞둔 상황이라는 점에서 (한상대 총장의) 발언은 심각하게 우려스럽다”면서 “정부 정책 실패에 비판적인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를 사실상 협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의 우려도 이 지점이다. 한국일보는 8월 15일자 사설에서 “과거 국가 권력이 사회 비판세력을 부당하게 친북·종북으로 엮어 탄압한 기억에서 많은 국민이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이 앞장서 사회적 논란을 부르거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 처신은 절대 금물”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일보도 8월 13일자 8면에 <‘정치 중립’ 시험대 오른 권재진·한상대>라는 기사를 실었고, 국민일보는 이날 <권재진·한상대 성공은 선거관리에 달렸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논란 등으로 국민 신뢰를 잃어버린 검찰을 추슬러 다시 ‘국민의 검찰’로 되돌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검찰 수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취임 일성은 ‘권력의 검찰’에 대한 우려를 자초하는 내용이었다.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고 ‘죽은 권력’을 물어뜯는데 매진하는 검찰 이미지를 변화시키겠다는 노력은 커녕 더욱 노골적으로 권력 편향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도덕성과 자질 면에서 ‘함량 미달’ 지적을 받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검찰총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없었다면 검찰총장은 꿈꾸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이 대통령이 한상대 검찰총장 카드를 굽히지 않은 것은 임기말 사정라인만큼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을 기용하겠다는 의지가 투영됐다는 분석이다.

한겨레는 8월 15일자 사설에서 “검찰의 공안몰이는 결국 현 정부의 실정을 호도하고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방지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며 “자격 미달인 자신을 검찰총장에 발탁해준 이 대통령에 대한 은공을 갚고 충성을 다하는 길로 여긴 것 같다. 참으로 나라의 앞날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공안몰이를 통해 권력 비판 목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권력의 보호막을 자처할수록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조선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종북세력 수사는 자칫 ‘공안통치’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면서 “검찰이 무리하다 책을 잡히면 안 하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19대 총선과 대선 등 굵직한 선거가 다가오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이나 언론이나 여론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섣불리 공안통치 카드를 꺼낼 경우 ‘정권심판 투표’를 자극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8·15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무너뜨리고 이명박 정권을 심판해서 민주진보개혁진영이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한상대 총장의 발언은) 정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발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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