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장의 근무환경이 백혈병 발병과는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14일 오후 경기도 수원 기흥캠퍼스에서 “인바이론사에 의뢰해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에 대한 재조사를 벌인 결과, 6명의 백혈병 발병자와 반도체 생산라인의 근무 환경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국 보건안전 컨설팅 회사인 인바이론(Environ)사는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조사한 ‘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 재조사 결과’를 이날 밝혔다.

폴 하퍼(Paul Harper) 소장은 “조사대상 라인인 기흥 5라인, 화성 12라인, 온양 1라인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인 결과, 측정된 모든 항목에서 화학물질 노출 위험 수준이 매우 낮았고, 근로자에게 위험을 주지 않는 수준”이라며 “이들 사업장의 근무환경이 근로자에게 위험을 주지 않으며 삼성전자가 모든 노출 위험을 높은 수준으로 관리·제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2시간여 동안 인바이론, 삼성전자 경영진의 발표 및 질의 응답이 이뤄진 과정에서 언론과 시민사회 및 학계의 이번 발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깨끗하다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희박하고, 과거보다 진전된 조사 자료의 공개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날 발표와 질의응답을 재구성해 제기된 의문점을 점검해봤다.

조사 목표는 무엇이며, 어떻게 조사했나

   
▲ 왼쪽부터 인바이론사 수석연구원 제임스 풀, 프레드 볼터, 연구총책임자 폴 하퍼, 자문단 교수 존 미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연구원 모두는 공개되지 않았다. ⓒ 삼성전자 제공
 
인바이론은 이번 조사에서 △근무 환경의 유해성 여부, △근무환경에서의 발암물질 여부, △생산라인에서 유해 물질 노출 여부와 발병자와의 업무 연관성 등을 점검했다. 인바이론은 △기흥5라인과 화성 12라인, 온양 1라인을 직접 조사한 결과, △과거 라인에 대해서는 노출 재구성을 통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바이론은 직접 조사 결과에서 “600개 넘는 시료를 채취해 미산업위생협회가 승인하고 개발한 검증방법을 통해 공정 구역별로 조사를 해 1단계 정성적 평가, 2단계 정량적 평가, 3단계 종합 평가를 했다”며 “대부분의 공정 구역이 미 산업 위생협회 기준에 따라 매우 잘 관리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화학물질)35가지 유사노출군(SEG, Similar Exposure   Group) 중 33가지에 대해서는 글로벌 노출기준 대비 10% 미만”이며 “2가지에 대해서는 50% 미만으로 위험이 낮은 것으로 판정됐다”고 덧붙였다.

또 인바이론은 재구성을 통한 조사에서 “발암물질로 포름알데이드, 전리 방사선, TCE(트리클로로에틸렌)을 검출 유무를 보면 (대상자)6건 중 4건은 해당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한 작업이 전혀 없었다”면서 “2건은 누적치를 산정해보니 위험을 일으키 수 있는 수준보다 낮았다”고 밝혔다. 결국 “해당 암을 발병시킬 수 있는 작업 환경 노출과 실제 암과 관련성이 없다”는 결과다. 

1. 구체적 데이터 왜 공개하지 않나

이날 시민사회 단체쪽과 기자들은 인바이론이 구체적인 데이터는 공개하지 않은 채, 철저한 검증을 했다고 발표한 것에 공개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은 “보고서에 결론, 주장만 있을 뿐 데이터가 없다”며 “삼성측에서 밝히고 싶지 않은 영업 비밀이 있는지 궁금하다. 대중에게 공개할 의향이 있나”고 의문을 제기했다. 경향신문 기자도 “자세한 내용이 없어 아쉽게 생각한다”며 “삼성이 모아준 자료에 대해 자료가 맞는지 여부를 평가했나”고 물었고,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도 “보고서 데이터는 어떻게 되나. 전체 보고서를 열람할 수는 없나”고 물었다.

인바이론측은 “오늘 시간적 여유가 없어 구체적 데이터를 다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결론을 도출하는데 충분한 데이터를 사용했다”며 “삼성 간의 계약서로 인해 다른 고객사와 마찬가지로 기밀사항이다. 공개 여부는 삼성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DS(Device Solutions)사업총괄 권오현 사장은 “영업 비밀, 당사 비밀을 제외하고는 (공개하는 것을) 검토해보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한 기자는 “영업 비밀이 있음에도 왜 외부 기관에 조사를 의뢰했나”며 “보고서 내용이 충분히 발표될 수 없다는 것을 애초 예상하지 않았나”고 꼬집었다.

2. 발암물질 정말 없나

인바이론, 삼성전자가 이번 조사 결과 유의미한 발암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산업보건전문의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공유정옥 활동가는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보고서를 보면 실제로 회사가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발암물질이 있었다”며 “데이터가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데 (삼성)회사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노출 재구성 조사가 의미 없지 않나”고 지적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9년 실시된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 결과 삼성 반도체 기흥사업장 5라인 감광공정에서 벤젠이 소량 검출된 바 있다.

인바이론측은 “라인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참조해 평가 실시했다”며 “벤젠은 전혀 탐지 안 됐다”고 일축했다. 권오현 사장도 “전혀 (벤젠을)쓰지 않는다”며 “내부적 분석, 국내 해외 유수 분석 기관에 조사를 의뢰해 보니 벤젠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공유정옥 활동가는 현재 미공개 된 산업안전보건공단 2차 역학조사를 언급하며 “(진위 판단을 위해서)회사에서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요청해 (사실 여부를)밝혀달라고 하면 된다”고 재차 의문을 제기했다.

3. ‘삼성 백혈병’ 피해자측은 왜 조사에서 배제했나

   
▲ 권오현 삼성전자 DS(Device Solutions)사업총괄 사장. ⓒ삼성전자 제공
 
인바이론이 이번 조사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도 검토해 공정하고 면밀한 조사를 했는지도 의문 중 하나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 문제”라며 “문제를 제기했던 당사자들의 참여가 거의 없엇고 제가 알기로는 제안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디지털데일리 기자도 “제3의 기관에 의뢰를 하면서 시민단체를 배제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인바이론측은 “이해 당사자로서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이번 조사 과정에 참여했다”며 “신뢰성 있는 평가를 했다”고 말했다. 권오현 사장은 “반올림에 조사 참여를 수차례 요청했다”며 “(시민단체를)일방적으로 배제한 적은 없다”고 일축했다.

4.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없나

인바이론이 ‘일부 현재 작업 환경을 조사해서 삼성전자의 전체 근무 환경이 백혈병과 무관하다’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됐다.

프레시안 기자는 “현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사실 백혈병에 걸린 (과거)피해자를 조사하는 것이 맞지 않나”며 표본의 ‘대표성’ 문제를 제기했다. 동아일보 기자는 “행정소송 때 산재가 인정이 된 것은 (피해자가 근무했던)3라인인데 이번에는 왜 5라인을 조사했나”고 물었다.

이에 대해 권오현 사장은 “(작업자의 경우)비슷한 환경에 노출된 (현직)사람들을 넣었다”면서 “(시설쪽으로도)최신 라인이나 옛날라인이나 비슷하다”고 말했다.

5. 제3의 기관? 인바이론은 믿을 만한 곳인가

미디어오늘 기자는 “인바이론을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보건 분야에 정평이 난 곳’이라고 소개했지만, 알아본 바로는 인바이론은 ‘고엽제·간접 흡연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도 있다”며 “인바이론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기자와 만나 “해외 관계자들을 접촉해 본 결과 ‘고엽제와 간접흡연에 대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한 인바이런의 과거 조사에 대한 뒷말이 많다”며 “‘청부과학’이라는 책에도 인바이런의 논란이 되는 조사가 소개돼 있다”고 설명했다.

<청부과학(원제: Doubt is their product)>(이마고 펴냄)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산업보건과 교수인 데이비드 마이클스가 지난 2008년 출간한 책으로 ‘논리와 순수;라는 이미지의 과학이 감추고 있는 어두운 현실을 폭로한다.

그러나 권오현 사장은 “인바이런사 히스토리는 잘 알 수 없다”면서도 “해외 유수 기관을 서베이 해보니 평판이 좋고 제일 우수한 회사라고 했다”고 말했다.

6. 깨끗하다면서 왜 이렇게 '삼성 백혈병' 피해자 많나

삼성전자가 반도체 근무 환경이 유해하지 않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점도 의문 중 하나다.

서울신문 기자는 “반올림에 신고된 백혈병 사례 140여건 중 하이닉스 4건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삼성전자”라며 “발병 원인이 삼성에 없다 하더라도 삼성에 근무하는 분들이 왜 이렇게 많이 백혈병에 걸리나. 꽤병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많이 아프다고 호소하나”고 의문을 제기했다. 백도명 교수도 “(삼성전자의)백혈병 발병률은 어느 정도인가”라고 물었다.

권오현 사장은 “정부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는 (기업체간)대동소이하다”며 “(시민단체의)일방적인 의견인 것 같다”고 반박했다. 인사팀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백혈병에 걸린 직원을 26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인바이론도 “(삼성전자 백혈병 발병률도)일반적인 평균 발병률과 같다”고 말했다.

7. 왜 이 시점에서 발표했나

삼성전자가 그동안 백혈병 문제에 침묵하다가 현 시점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도 의문 중 하나다. 근로복지공단은 14일 ‘삼성 백혈병’ 노동자 관련 1심에 패소한 것에 불복해 항소를 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MBC 기자는 “기자회견에서 다루고 있는 범위가 행정소송에서 수세를 위한 전략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기옥 삼성전자 법무팀 상무는 “회사는 임직원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연구 보고서는 소송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상무는 이번 항소와 관련해 “1심에서 보조 참가인으로 참여했는데,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더라도 1심 보조참가인 지위 유지된다”며 “회사 임직원이 갈 수 없어 대리인으로 변호사를 선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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