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에 공모한 것으로 지목된 정아무개 이병이 평소 내무생활을 하면서 선임병들에게 끔찍한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 선임병의 가혹행위는 담뱃불로 팔을 지지거나 바지 지퍼부위에 에프킬라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등 성범죄를 방불케했다.

국방부가 정 이병에 대해 사전공모했다는 점만 강조하는 반면, 정 이병이 가혹행위에 시달렸다는 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아 군 조사에 신뢰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는 7일 발표한 성명에서 인권단체들의 방문조사를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는 해병대 사령부와 국방부를 비판하면서 “정 이병에 대한 피의 사실은 무차별적으로 언론에 공표하는 반면, 사건 발생 이전 정 이병이 부대에서 당한 가혹 행위에 대한 국방부의 언급은 일절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해병대 총기사고 진행경과 브리핑에서 공개된 총기 사고현장 상황도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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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공개한 정 이병의 가혹행위 사례에 따르면, 부대내 선임병들은 △정 이병을 아무런 이유 없이 상황실에 앉혀놓고 장시간 일어나지 못하게 했고 △안티프라민을 목이나 얼굴에 바르고 건드리거나 씻지도 못하게 했으며 △기독교 신자인 정 이병의 성경책을 태웠을 뿐 아니라 △다리에 테이프를 붙여 털을 강제로 뽑는 일을 했다. 또한 이들이 정 이병의 팔에 담배불로 세차례 지졌다고 했으며, 특히 '성기를 태워버리겠다'며 정 이병의 바지 지퍼 부분에 에프킬라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끔찍한 가혹행위를 했다고 군인권센터는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이는 엄연히 성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정 이병이 선임한 김인숙 변호사가 김포 2사단에 가서 직접 조사해온 내용이다”며 “우리가 파악한 것으로 볼 때 국방부가 내놓은 정황으로는 공모라고 보기 어렵고, 사전 모의했다는 부분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임 소장은 “이런 조사결과가 나온 것은 정 이병과 김 상병이 평소에 부대 내에서 얼마나 많은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또한 국방부가 이런 가혹행위는 놔둔채 정 이병의 피의사실을 이런 식으로 언론에 공표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이번 사건의 원인이 ‘기수열외 문화’라는 점을 들어 “군 수뇌부가 이런 문화를 묵인하면서 불거진 사건으로, 전형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 사건이 돼버렸다”며 “군 수뇌부가 이 같은 악습을 묵인해왔기 때문에 이 문화가 계속됐다는 점에서 수뇌부의 책임이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군 중앙수사대장 권영재 대령이 5일 오전 서울 국방부에서 해병대 총기사고 진행경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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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해병대 사령부의 한 관계자는 “정 이병에 대한 가혹행위 내용은 오늘 국방부에 구성된 수사팀이 조사해 발표한 내용과 같다”며 “정 이병은 저계급자이므로 기수열외 대상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수뇌부 책임론에 대해 “소대장과 부대장도 몰랐다고 한다”며 “(왕따의 변형된 형태의) ‘기수열외’라는 것의 실체가 이렇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앞으로 좀 더 병영문화를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5일 직권조사를 결정, 조사관을 현장에 파견해 현재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인권위는 “1980년대 이후 해병대 내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총기 사망사건이라는 점에서 사건 당일 오후 현장에 방문해 기초조사한 결과 △총기 및 탄약관리 부실, △장병신상관리 부실, △병영 내의 음주, △‘기수열외’ 등에 의한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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