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기밀문서 폭로로 세상의 주목을 집중시켰던 위키리크스식의 정보공개가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부패방지법 제정 10주년을 기념해 6일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위키리크스 사례를 통해 본 정보공개․공익제보 운동의 발전방향’이란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 발제자로 참석한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위키리스크 전 대변인은 정보공개의 필요성을 ‘과잉기밀 사회’라는 키워드로 명료하게 정리했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비밀주의가 팽배하고 투명성이 부족한 과잉기밀의 세계가 살고 있다”며 “공익제보를 할 수 있는 제3의 기구를 통해 대중들이 눈을 부릅뜨고 정부, 관료사회, 기업 등을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런 측면에서 위키리크스는 정보공개 분야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충격적인 정보들은 세계 시민사회에 공익제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고 평가받는다. 돔샤이크-베르트는 “위키리크스는 여타 공익제보 사이트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었고 제보자들의 접근도 용이했다. 인터넷상의 공익제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날 돔샤이크 베르트는 위키리스크보다 발전된 형태의 공익제보 사이트인 ‘오픈리크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키리크스가 권력이 커지고 너무나 많은 정보를 통제하게 되면서 내부 부패가 발생했고, 정보가 오가는 플랫폼이 하나밖에 없는 중앙집권적인 조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오픈리크스는 다수의 플랫폼을 구축해 권력을 분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프리크스는 현재 진행 중인 비공개 테스트를 거쳐 다음 달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공익제보운동이 시작된 것은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다. 하지만 ‘삼성공화국’의 실체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처럼 제보자들은 하나같이 구속 및 파문 등 조직과 사회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다. 

발제로 나선 이지문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 부대표는 “일종의 공익제보자재단 혹은 기금을 설립해 그들을 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제보 운동이 꾸준히 전개되면서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부패방지법’을 제정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것으로는 제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이 부대표 자신도 학사장교로 복무하던 1992년 소속 부대가 부대원들에게 여당에 투표할 것을 강요한 일을 폭로하면서 이등병으로 파면됐다. 입사예정 중인 회사로부터도 쫓겨났었다.  

   
6일 오후 서강대 다산관 국제대회의실에서 열린 심포지엄 세션1 토론에서 오영택 전국공무원노조 부정부패추방위원장(맨 오른쪽)이 토론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런 우리 사회도 공익제보가 활성화될 수 있는 하나의 여지가 마련됐다. 바로 ‘경향리크스’다. 올해 4월에 문을 연 경향리크스는 현재까지 들어온 300여건의 제보를 받았으며 이는 여러 건의 단독보도로 이어졌다. 토론자로 나선 박래용 경향신문 디지털뉴스 편집장은 “위키리스크의 외교문서 폭로로 촉발된 중동 민주화 시위를 보면서 ‘과연 그들 국가보다 우리 사회가 투명한가’란 의문에서 경향리크스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제보자나 취재원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검찰이 언론사에 취재경위를 알고 싶다며 취재수첩을 압수수색하려는 시도도 있었기 때문이다. 박 편집장은 “그래서 압수수색이 아예 불가능한 해외서버를 구축하기로 했고 사법공조가 맺어지지 않은 스웨덴을 택했다”고 밝혔다. 경향리크스는 특수 암호화 단계를 거치게 돼 있어 정보 유츨 가능성을 차단했고 제보자에게 어떤 정보도 요구하지 않는다. 제보는 편집장과 담당기자를 비롯한 소수만 열람할 수 있다. 모두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박 편집장은 이러한 공익제보 사이트가 주목받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기존 언론에 대한 신뢰 붕괴”를 꼽았다. “언론을 더 이상 감시견이 아닌 안내견, 애완견으로 보며 이런 현실은 언론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공익제보가 있을 때 “일부 언론사는 폭로 내용보다는 어떻게 정보를 취득했느냐로 의제를 몰고 갔”기 때문이다.

둠샤이트 베르크는 “경향리크스는 알자지라나 월스트리트저널보다 기술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도 훨씬 더 앞서고 진지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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