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수신료 인상 문제를 다룬 KBS <생방송 심야토론>에 김인규 KBS사장이 패널로 출연했다. 이례적이다. KBS가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토론회를 연 것도 처음이지만 사장이 자사의 이해가 걸린 TV토론회 자리에 패널로 나온 것도 처음이다.

사장이 직접 수신료 문제에 대해 궁금한 점에 응답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는 점에서는 ‘용기있는 출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선의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어색하고, 일방적이었다.

우선 토론회 편성 자체가 방송의 상식을 벗어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금요일 느닷없이 ‘수신료’를 주제로 토론회를 편성했다. <생방송 심야토론>에서 ‘수신료’를 주제로 잡고 김 사장 등이 출연한다는 것은 출입기자들에게도 방송 하루 전날인 24일 밤 10시경에야 통보됐다. 그만큼 황망하게 토론회가 잡혔다는 이야기다.

물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긴급 사안인 경우 얼마든지 ‘긴급하게’ 토론회를 편성할 수 있다. 그러나 TV 수신료가 그럴 정도의 사안이었던가? TV토론을 하자면 얼마든지 이전에 할 수 있었다. TV토론을 통해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사장이 직접 이 문제를 설명하고자 했다면 국회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이전에 하는 것이 마땅했다.

게다가 토론회 방식 또한 거칠기 짝이 없고 일방적이었다. KBS 수신료 문제를 제대로 다루자면 당연히 언론전문가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의 관계자 등이 패널로 참석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의 축소판 같았다. 국회 문방위 여야 의원들과 김사장이 벌이는 수신료 청문회나 다름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문방위원장 대신 ‘사회자’가 그 역할을 맡았다는 점, 그리고 국회에서와는 달리 김 사장이 말 할 기회를 ‘충분하게’ 제공했다는 점 일 것이다.

   
▲ KBS <생방송 심야토론>에 출연한 김인규 KBS 사장
 

김 사장은 이날 평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다할 기세였다. KBS방송이 ‘청와대 방송’으로 전락했다느니, 직원들에게 보복징계를 일삼는다느니 하는 것들은 “모두 오해였다”고 항변했다. 야당에서 사내 여론조사를 들어 KBS의 불공정성을 따지면 그는 “광고주협회와 한국언론재단의 여론조사가 더 공신력 있다”며 “편파적이지 않다”고 목소리 높였다.

한 야당의원이 KBS방송이 이명박 정부의 프로파간다 도구로 전락했다는 어느 KBS 기자의 글을 인용하자 김 사장은 “한 사람의 말을 마치 전체의 의견인양 말하는 것은 보도의 렐러번스(relevance․적절성)에 어긋난다”며 “주의해 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국회에서 ‘의원’과 ‘사장’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풍경이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김 사장의 거침없는 행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KBS가 정권의 나팔수가 되고 있다는 안팎의 따가운 질책과 비판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태도였다. 토론 내내 KBS의 공정성과 공영성이 논란이 되자 그는 ‘공영성평가위원회’라는 것을 만들 구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기구를 만들어본들 뭐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김 사장은 토론 내내 KBS의 공영성과 공정성에는 ‘지금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오죽하면 한 한나라당의원까지 “사내에 그런 (비판적인) 의견이 있으면 사장이 고민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 마당에 다른 ‘기구’ 하나 더 만들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선거방송이 불공정했다는 민주당 의원의 지적이 있자 자신의 넥타이 이야기로 이를 맞받아 쳤다. 그는 자신의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원래 오늘 아침 아내가 파란색 넥타이를 골라줬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파란색 넥타이를, 민주당 의원들은 빨간색 넥타이를 하고 온 것을 보고 분홍색으로 바꿔 맸다”는 것이다. 김사장으로서는 재치있는 ‘위트’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선거보도의 공정성 문제가 그런 식의 ‘농담’ 한마디로 쉽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인가. 하지만 그랬다. 야당의원들의 잇단 추궁은 ‘시간이 없다’는 사회자의 제지 속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이날 방송토론은 언뜻 국회 청문회장을 방불케 했지만 실상은 김 사장에게 크게 유리한 자리였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토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시간은 70분이나 연장됐다. 이 또한 TV토론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정치적 논쟁이 치열한 이슈일수록 상호 치열한 공방 때문에 토론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이번처럼 ‘파격적으로’ 토론시간을 연장한 경우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 사장 출연을 빼놓고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 KBS <뉴스9> 26일자 방송
 

KBS는 26일 KBS <뉴스9>에서 이를 “여야, 수신료 인상 ‘선결 조건’ 열띤 토론”으로 보도했다.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여야의원들의 ‘설전’을 주로 전했다. 그 때 나왔던 KBS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싹둑’ 잘렸다.

김 사장은 이번 방송토론에서 자신의 성적이 나쁘지 않다고 자평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즉흥적이고 편의적인 긴급편성, TV토론의 기본을 무시한 패널 구성과 거친 진행 등 이번 TV토론이야말로 KBS가 왜 문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김사장은 최근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고 있는 ‘친일파 백선엽 다큐’에 대해 ‘내부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내부심의’가, 그런 내부심의를 내세워 KBS가 별 문제 없다고 하는 김 사장의 ‘태도’야말로 KBS 문제의 핵심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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