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신문 보면 들리는 ‘이명박 무너지는 소리’
신문 보면 들리는 ‘이명박 무너지는 소리’
이 대통령 기사 비중 떨어지고 ‘미래권력’에 대한 관심 부쩍

지난 5월 30일 이명박 대통령은 제66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했다. KBS 라디오 등을 통해 생중계된 이 연설 내용을 가장 비중있게 보도한 신문은 예상외로(?) 한겨레와 경향이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연봉이 7000만 원이라는 둥 허위사실에 근거한 노동계 공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 연설 내용을 ‘조금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앙일보도 약간 인용하긴 했으나 부산저축은행 사태 관련 기사 속에 단 세 문장뿐이었다. 국민·서울·세계·문화 역시 보도는 했으나 그리 큰 비중은 아니었다.

물론 ‘기사감’이 아니면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이 대통령의 연설에는 유성기업 파업,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입장이 담겨 있었다. ‘연봉 7000만원’, ‘불법파업’, ‘노사협력’ 등 보수언론의 비위에 잘 맞는 내용도 많았다.

확인 결과 조선·중앙의 경우 지난 2월부터 격주로 9차례의 대통령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거의 인용 보도를 하지 않았다. 2월에만 모두 합쳐 3차례 인용했을 뿐 3~5월(중앙 5월 31일자 제외)은 전무하다. 동아만이 매번 꾸준히 보도를 해오고 있었다.

   
지난해 6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TV와 라디오로 생방송된 제42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하고 있다.
 
단지 우연일까? 지난해에는 천안함, 세종시, G20, 연평도 포격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연설이 있으면 늘 비중있게 보도하던 조선과 중앙이었다. 종합편성채널 선정 이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조중동의 비판 보도가 늘고 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이런 논조뿐만 아니라 관심 정도, 비중 등에서도 이 대통령 ‘레임덕’ 현상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미래 권력’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방증일 수 있다. 조중동만 놓고 봤을 때,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언급된 기사 건수는 84건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4월에는 172건으로 두배 이상 늘었고, 5월엔 238건으로 세배 가까이 뛰었다.

언론사별로 보면, 조선 30건→61건→87건, 중앙 23건→56건→68건, 동아 31건→55건→83건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횟수만 문제가 아니다. 중앙의 경우, 박 전 대표에 대한 ‘사랑’이 비교적 노골적인 편이다. 한면을 털어 보도한 박근혜 ‘특사 패션’, 부쩍 늘어난 박근혜 관련 칼럼, 동남권 신공항 관련 논조 변화 등이 대표적이다.

중앙은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 줄곧 ‘경제논리=국익’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 이에 반하는 정치인 등을 ‘지역 이기주의’로 공격해왔다. 하지만 지난 3월 31일 “당장 경제성이 없더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박 전 대표의 입장 표명에 대한 중앙의 논조는 전과 비교해 너무도 얌전했다. 당시 김진 논설위원 겸 정치전문기자가 쓰는 연재칼럼에는 비난이 아닌 ‘아쉬움’과 ‘조언’만이 채워졌다.

   
중앙일보 5월 6일자 4면.
 
지난 5월 11일자 문화일보 1면과 3면에는 아주 ‘눈에 띄는’ 기사 5편이 실렸다. <4대강 공사현장이 불안하다>는 제목의 기획 기사였는데, 정부가 안전실태를 점검한 결과 4월 들어 20일 동안 무려 300건의 지적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굴착·배수조치 미흡, 난간 미설치, 제방붕괴 위험, 유속계산 오류 등 비판적 내용으로 가득찼다.

주목할 것은 문화가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 그것도 강력한 톤으로 4대강 사업을 비판한 것은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보수언론과 마찬가지로 줄곧 지지 입장이었으며, 지난 1월에는 <4대강 사업, 이제 논란 없고 차질없이 완결해야>란 제목의 사설도 실었다.

인터넷 매체 <뷰스앤뉴스>는 이에 대해 “MB가 자신의 유일무이한 업적으로 생각하는 4대강사업을 보수신문들이 맹비난하고 나선 것은 'MB 레임덕'이 본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조선 6월 2일자에 실린 박정훈 기사기획에디터의 칼럼 <4대강의 진실,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의 내용도 흥미롭다. 박 에디터는 칼럼에서 “4대강의 홍수 피해 상황을 보면 누가 국민을 속여왔는지 알 수 있다”며 “예년 수준 홍수가 닥쳤을 때 피해가 줄었다면 반대측이 틀린 것이고, 피해가 커졌다면 정부가 틀린 것이다. 애매한 변명으로 도망갈 구멍이라곤 없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와 이를 반대한 세력 모두를 ‘심판 대상’에 올린 것이지만 부담은 정부에 더 클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을 지지해왔던 유력 언론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 에디터는 “만약 정부가 틀렸다면 장밋빛 전망을 부풀린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업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반대 경우라면 온갖 언설을 쏟아냈던 일부 학자·환경운동가·정치인·종교인들이 혹세무민의 죄를 참회해야 한다”면서 “2년간 헷갈렸던 국민은 4대강의 심판을 벼르고 있다”며 글을 맺었다.

   
문화일보 5월 11일자 1면.
 
4.27 재보선 패배 이후 본격화된 이명박 대통령 레임덕 현상은, 한나라당 지도부 내 반기, 부산저축은행사태 등을 거치며 더욱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주요 언론도 이러한 현상을 분석한 다양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조선은 지난 5월 28일자 사설에서 “청와대를 떠날 사람은 빨리 떠나 보내고 임기말 진용을 갖춰 남은 1년 9개월을 맞을 채비를 갖춰야 한다”며 “그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경계하는 정권말 누수 현상(레임덕)을 가급적 늦출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고 정권에 조언했다.

결국 ‘늦출’ 수는 있으나 ‘피할’ 수는 없는 게 레임덕이라는 이야기다. 이 대통령도 지난 2월 “레임덕은 시기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현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한 정권이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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