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갱신=오후 3시 45분]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 직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 보도와 관련해 한겨레신문 내부에서 정파적 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문제 제기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신공항 백지화 발표 직후 박근혜 전 대표의 반응을 놓고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함께 읽은 독자라면 헷갈렸을 것이다. 한 쪽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직접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고, 다른 한 쪽은 이를 이 대통령에 대한 '정면 비판'이라며 '결별까지 각오한 경고'라는 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4월 1일자 1면 <살짝 비켜간 박>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한 데 대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유감스럽다"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얼핏 보면 박 전 대표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고 백지화를 뒤집으려는 것처럼 비쳤"지만 세종시 때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날선 비판을 쏟아냈"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이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 4월1일자 조선일보 1면
 
반면 한겨레는 같은날자 1면 기사에서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약속 파기’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동남권 신공항을 내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박 전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약속 위반’을 거론한 것은 누가 봐도 이 대통령을 겨냥한 대목"이라며 "다가오는 대선 경쟁에서 스스로 후보를 쟁취하겠다는 ‘홀로서기’ 선언으로 들린다. 최근까지 지속된 이 대통령과의 유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게 기대거나 얹혀 가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선 ‘결별’도 각오하겠다는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4월1일자 한겨레 1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두 신문이 서로 다른 분석 기사를 내놓은 데 대해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조선일보가 신공항 백지화 후폭풍을 잠재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한겨레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제대로' 해석한 것일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 진보언론실천위원회(진보언론실천위)의 판단은 '아니다'이다. 조선일보와 논조는 다르지만, 그러한 분석 기사를 쓴 '배경'은 매우 닮아있다는 게 진실위의 시각이다. 

진보언론실천위는 지난 14일 펴낸 진실위 소식지 <진보언론>에서 "당시 취재 현장에서는 한나라당에서 결별이라는 말은 친이-친박간의 분당과 직결되는 의미로서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결별을 각오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며 "이튿날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가 지역구 가서 한 발언 이해한다'는 톤의 발언이 소개되면서 결국 결별이란 해석은 머쓱해졌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 이후 지금까지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결별'하려 한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 정치부의 한 기자는 <진보언론>에 "결별은 너무 나간 해석이다. 차별화 내지 선긋기 정도가 맞다"며 "수차례 결별 해석 부분을 제목과 본문에서 빼달라고 건의했으나 그대로 나갔다"고 말했다.  

보도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진보언론>이 작심하고 비판하고 나선 데는 한겨레의 '확대 해석'이 이번 건에 그치지 않은 데다, '정파적 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봤기 때문이다.

한겨레 노조 <진보언론>은 "한국 사회에서 한겨레를 포함한 기성 언론들은 사실상 특정 정치 세력과 이념적으로 가깝고, 각 정파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치 공학성' 보도를 일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며 "이번 사태에서도 조선일보가 친이-친박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해 화해를 유도하는 관점에서 사태를 해석했다면 한겨레는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길 희망하는 프레임에 갇혔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내부 갈등을 바라보는 한겨레의 '정치적 시각'이 너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인 셈이다.

특히 <진보언론>은 "대운하에 대해서 한겨레의 보도태도는 잘못된 공약은 당선됐다하더라고 실행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고, 동남권 신공항에서는 약속의 이행 여부와 이에 따른 혼란상을 묻고 있다. 이는 명백한 이중잣대"라는 한 조합원의 지적을 전하며 대운하와 동남권 신공항을 바라보는 한겨레의 '이중성'을 꼬집기도 했다.

<진보언론>은 특정 정치현상과 관련해 여러 차례 조선일보와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던 한겨레의 보도에 대해 "이런 경우 그동안에는 한겨레의 입장이 장기적으로 옳았음이 입증되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번 경우는 '판정패'를 당한 듯 하다"고 비판했다.   

백기철 한겨레 정치부장은 이에 대해 18일 "사안 자체가 갖는 정치적 폭발력에 대한 가치 판단은 지금도 맞았다고 본다. 다만 '제목을 좀 더 중립적으로 뽑아야 했던 것 아닌가'라는 지적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백 부장은 '4대강'과 '동남권신공항'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에 이중잣대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신공항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이 아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자체 보다는 정치 지도자의 약속 위반에 초점을 맞춘 보도였고, 그러다보니 ('4대강'과 '동남권 신공항'에 이중잣대가 적용된 것처럼) 그렇게 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박 전 대표가 '장기적으로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 비판적으로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31일기자회견 당시  한겨레 기자가 박 전대표의 전날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자 "지금, 한겨레 신문이죠?"라고 되묻고 "박 전대표와 관계를 너무 그렇게 보실 필요 없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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