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통신사 서비스에 매년 요금을 지불해 왔다면 어떨까. 고화질이라고 해서 IPTV 가입했는데 일부러 화질을 떨어뜨려 가정으로 보내준다면, 검색결과를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포털업체가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뭔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국내 IT업계의 현실을 비판한 신간 <한국 IT산업의 멸망>(북하우스)의 저자 김인성 씨는 인터뷰에서 "이런 IT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IT업계가 고차원적인 마케팅과 언론을 통해 고객에게 각종 혜택을 돌려주는 것처럼 포장해 온 많은 상품들이 사실은 업계의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국내 IT업계를 한마디로 "촌스럽다"고 표현했다. 한때 세계가 주목했던 IT선진국에서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리고 폐쇄적으로 변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그의 책 표지에는 그래서 이런 문구가 달렸다. '소비자만 몰랐던 업계의 음모와 진실. 그들이 감추려 한 블랙박스가 열린다.' 

 IT업계를 혹독하게 비판한 그는 리눅스와 오픈소스 개발자로 포털사이트 시스템 설계와 구축, 컨설팅을 해온 시스템 엔지니어다. 다음은 김씨가 자신의 저서와 인터뷰에서 밝힌 IT업계가 소비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비밀 중 일부다.

1. 기본료・문자서비스 과금, 통신사의 상술에 불과하다.

   
김인성 지음/북하우스펴냄
 
저자에 따르면 통신사들이 기본료를 받았던 건 초기설비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서라는 명목 때문이었다. 그러나 통신사들은 설비투자에 들어간 돈을 이미 다 회수했음에도 기본료를 없애지 않고 있다. 이 돈은 그대로 통신사의 수익이 되고 있다.

저자는 또 "통신사들이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문자서비스에 소비자들이 비싼 비용을 물도록 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통신사들은 그동안 160바이트의 문자메시지 국제표준을 80~90바이트로 제한한 후 그 이상의 긴 메시지는 독자 규격의 '멀티미디어 문자방식(MMS)'를 사용토록 해 추가 비용을 받아챙기기도 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최근 '문자메시지 무료화'를 언급했다가 업계의 공격에 시달려 입장을 번복해야 했다. 지난해 KT가 문자서비스로 올린 매출은 5700억원, SK텔레콤은 6500억원, LGU+는 3000억원이었다.
 

2. 통신사들, 통화수입 지키려 정부가 개발한 원천기술까지 배척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동통신 원천기술을 개발했지만 통신사들이 자신들의 통화수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이 기술의 상용화를 고의적으로 지연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때문에 한국은 이동통신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국이 디지털 이동통신 강국으로 급부상했던 것은 다른 나라보다 앞서 CDMA(3세대 이동통신 기술 표준 가운데 하나)를 상용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성공에 고무된 정부는 3G를 넘어 4G에서 다시 한 번 이동통신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이동형 무선인터넷기술인 '와이브로'를 집중 육성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기술은 데이터통신 위주의 이동통신이었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 보면 음성통화 시장을 위협하는 기술이었다.

결국 통신사들은 와이브로 사업권을 따낸 뒤 설비투자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와이브로의 상용화를 막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통신 기술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다른 나라의 기술 표준을 따라가는 형국이 되었다. 저자는 통신사들의 와이브로 투자 지연에 대해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한 계산된 행위였다"면서 "통신사의 이기주의로 인해 국가경쟁력이 상실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3. IPTV는 화질이 나쁜데다 인터넷속도까지 떨어뜨린다.

IPTV는 초고속인터넷망을 통해 실시간 방송과 VOD(주문형 비디오)를 제공하는 유료방송 서비스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에 이어 후발주자로 뛰어든 IPTV 업계는 IPTV의 특성에 맞춰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 등을 묶은 결합상품을 내놓으면서 가입자들을 빠르게 흡수해 가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 알려져 있지 않는 사실이 있다. HD급 화질이라며 선전하는 IPTV의 화질이 불법 다운로드 동영상 품질보다 나쁘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자이자 시스템 엔지니어인 김인성 씨는 최근 펴낸 <한국 IT산업의 멸망>에서 한국의 IT업계가 독점화되고 폐쇄화 되면서 스스로 몰락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디어오늘
 

IPTV를 통해 실시간 방송을 전송하려면 17Mbps(전송속도 단위) 정도가 필요하다. 언뜻 100Mbps의 초고속인터넷 속도를 감안할 때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초고속인터넷의 속도는 평균 70Mbps 정도에 불과한데다 과도한 트래픽으로 방송이 절대 끊기는 불상사가 생겨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IPTV를 보는 집에 들어가는 초고속인터넷을 방송데이터를 최우선으로 처리하도록 설계하고(서비스품질정책), 화질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것. 저자는 "지방의 느린 인터넷 환경에서는 실시간 방송 뿐만 아니라 VOD서비스도 불가능한데, 업계가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최대한 화질을 떨어뜨리고 있다(손실압축)"고 주장한다.

IPTV와 인터넷을 동시에 사용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발생한다. IPTV와 하나의 회선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인터넷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전송속도의 한계 때문에 인터넷 데이터보다 방송데이터를 우선 처리하도록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터넷전화까지 쓰면 속도는 더 느려진다.

4. 은행거래・전자상거래시 다운받으라는 '액티브X'가 컴퓨터를 바이러스 소굴로 만든다.

최근 금융계에서 해킹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인터넷 거래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과연 인터넷뱅킹은 안전할까?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은행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우 운영체제가 깔린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다른 웹브라우저도 안 된다.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필요하다. 문제는 정부가 안전하다고 국내 표준으로 선정한 MS의 '액티브X' 방식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인터넷뱅킹을 하려고 하면 각 은행마다 MS의 '액티브X' 프로그램과 고유한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소비자들은 이들 프로그램이 자신의 돈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컴퓨터에 내려 받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 프로그램들은 설치목적이 불분명하고, 심지어 컴퓨터의 보안을 위협한다고 단언한다. 액티브X는 웹 프로그램이 컴퓨터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보안 위험에 빠뜨리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보안모듈 역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컴퓨터를 느리게 만든다.

5. 국내 포털은 검색결과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포털의 대표적인 서비스는 누가 뭐라 해도 검색이다. 하지만 국내 포털이 검색결과를 잘못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내 포털들은 사용자가 원하는 데이터가 아닌 검색결과에 부합하지 않는 내부 데이터를 먼저 보여준다.

예를 들어 네이버에서 검색어를 입력하면 해당 단어가 들어간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지식인 게시글이 먼저 노출된다. 특정한 경우에는 네이버에 비용을 지불한 스폰서 사이트가 맨 위에 위치한다. 저자는 국내 포털이 "정확한 정보를 찾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검색어 광고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게 된 포털이 시장을 뺏기지 않기 위해 사용자들을 포털 안에 묶어두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이런 폐쇄성 때문에 네이버 바깥에 있는 전문 커뮤니티의 데이터들은 네이버에 검색되지 않는다. 반면, 구글은 사용자가 입력한 검색어와 가장 부합하는 결과를 해당 국가의 언어로 화면 맨 머리에 보여준다. 저자는 "아이폰과 구글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국내 IT업계도 각성하고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대우하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며 "국산을 애용하는 게 애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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