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처럼 떠오른 미술계 신데렐라에서 학력위조 파문으로 하루아침에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신정아씨가 펴낸 자전에세이에 기자들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기자들은 20대 후반의 신입 큐레이터가 6년 만에 교수로 임용되는 신분상승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조력자였다. 그러나 신씨의 학력위조 사실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불륜을 들춰내 파멸시킨 것도 언론이었다. 신씨가 자서전을 통해 지난 수모를 되갚아 주려는 듯 기자들을 실명으로 비난하고 있는 이유다.

책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기자들은 10여 명이나 된다. 신씨는 자신과 친했던 기자들이 사태가 터지자 얼굴을 바꿔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 문화일보 S기자를 지목했다. 신씨는 S기자가 조선일보 J기자와 함께 삼총사처럼 가까이 지낸 사이였고, 문화부 기자로 발탁되는데 도움까지 준 사이인데 자신을 허영과 사치에 물든 여자처럼 기사를 써놨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신씨는 “(S기자가) 기사에 쓴 ‘명품족’ ‘과소비’라는 표현을 보고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며 “내가 예쁜 옷을 입으면 브랜드가 궁금하다며 목 뒤에 있는 옷 상표를 뒤집어 보던 사람이 S기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S기자가 기분이 우울해지면 명품 브랜드를 세일하는 곳에 가서 한꺼번에 옷을 이십여 벌이나 사와 자신이 말린 적도 여러 번이었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자신이 입었던 옷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백화점에서 골라놓아서 선물로 사다주기까지 했다고 공개했다.

   
▲ 미술관 통역아르바이트생에서 30대 대학교수로 임명된 신데렐라에서 학력위조와 공금횡령 혐의로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신정아씨가 최근 자신의 얘기를 책으로 엮어 냈다. 사진은 출판기념회에 나온 신씨. 사진=연합
 

"명품 더 밝히던 기자가 나를 허영과 사치에 빠진 여자로 묘사해 실소"

중앙일보의 Y기자와 A기자, J논설위원도 비난의 대상에 올랐다. Y기자는 2007년 7월20일자 기사에서 “그녀(신씨)를 가까이 봐온 미술계 인사들은 가정사와 사생활 등 꾸며낸 거짓말의 규모와 정교함이 ‘인생세탁’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며 “‘허언증(자신의 거짓말을 사실로 믿게 되는 병적인 심리상태)’적 행태라는 지적도 한다”고 쓴 바 있다. 신씨는 “Y기자의 경우에는 함께 저녁이라도 먹게 되면 자정이건 새벽이건 아무리 늦어도 잠실 집에까지 바래다주곤 했다”며 "나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기사를 쓰지 말거나 회사의 지시라 해도 버텼어야 마땅"하다며 인간적인 배신감을 토로했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칼럼을 쓴 J논설위원에 대해서도 친분이 있던 같은 신문사의 A기자 소개로 삼청동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면서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기자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내게 돌을 던지는 것을 보며, 원래 세상은 이런 것이었나 싶었다”고 밝혔다.

신씨는 심지어 조선일보 출신 C기자로부터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젊은 작가의 전시를 두 번이나 써준 계기로 서울 시내 호텔 바에서 접대를 하게 됐는데 C기자가 블루스를 추자고 하고 몸을 더듬었다는 것이다. 신씨는 “(C기자가 귀가하는 택시 안에서) 나를 껴안으면서 운전기사가 있건 없건 윗옷 단추를 풀려고 난리를 피웠다”고 주장했다.

"10년 알고 지낸 사교모임 '포야' 멤버, 걱정해주기 보다 취재에만 혈안"

책에는 같은 ‘포야’ 멤버이기도 했던 중앙일보 A기자의 이름도 나온다. ‘포야’는 기자, 교수, 정치인들이 소속된 사교모임이었다. 신씨는 A기자가 ‘포야’ 멤버였던 조선일보 K사회부장으로부터 인터넷에 이상한 기사가 떴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를 걸어왔다며 “전화상의 느낌으로는 친한 친구가 걱정해서 거는 전화가 아니라 이미 기자의 직업의식으로 돌아간 듯했다”고 썼다.

신씨는 A기자의 전화에 대해 “쉴 새 없이 질문을 하는 낌새가 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기사를 쓰기 위한 것”이었다며 “귀국일을 실제보다 며칠 뒤로 알려주면서 서울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락하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고 속인 사실도 털어놓았다. A기자는 이날 신씨와 나눈 얘기를 90분의 단독 전화인터뷰로 처리했다.

신씨는 유일하게 의리를 지킨 기자로는 국민일보 S부국장을 언급했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시절 모기업에 부탁해 매진됐던 명절 비행기 표 4장을 구해줬던 인연이 있는 S부국장의 경우에는 이메일을 통해 다른 것은 일절 묻지 않고 “건강 챙기라”는 말만 전해 고마웠다는 것이다.

통역 아르바이트에서 교수로 신분상승 하는데 언론 활용한 건 외면

책에서 드러나듯, 신씨와 기자들은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였다. 신씨는 10년 넘게 친분을 쌓아왔던 기자들이 학력위조 파문으로 한 순간에 등을 돌리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일까. 신씨는 ‘두 얼굴의 기자들’이라는 목차까지 따로 만들어 실명으로 기자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았다. 언론에 당한 신씨의 '복수'라는 말이 나도는 이유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신참 큐레이터였던 신씨가 불과 10년 만에 교수로 신분이 급상승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를 스타 큐레이터로 띄워준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신씨가 쓴 것처럼 조선일보 문화면에 신인 작가 전시가 두번 이나 실리는 등 신씨가 기획한 미술전시 관련 보도가 빈번하게 언론에 소개됐고, 일부 언론들은 허위 학위에 넘어가 경력 5년의 큐레이터였던 신씨에게 고정칼럼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신씨가 자신이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흘린 것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이후 신씨는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로 임용되고 광주비엔날레 공동 총감독으로 선출되며 승승장구했다. 이런 신씨를 과연 일방적인 언론의 피해자로만 볼 수 있을까.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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