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수·진보언론 할 것 없이 한목소리를 내는 사안이 있다. 바로 ‘민생사안에는 관심도 없는’ 여·야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것에 대한 비판이다. 조·중·동은 물론이거니와, 경향도 기사와 사설을 통해 이를 비판했고, 한겨레 정도가 찬반 의견을 모두 실었다.

이 법안은 정말 국회의원 ‘그들만’을 위한 것일까? 물론, 국회의원들의 행동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기습상정한 데 이어, 만장일치로 통과되기까지 불과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반목을 거듭하는 여야의 모습에 익숙하던 국민의 입장에선 낯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동안 불법이었던 법인이나 단체의 정치자금 후원을 상당 부분 허용한 것이다. 이번 정자법 개정안은 법인이나 단체 자금으로 직접 정치자금을 후월하는 것을 여전히 금지하고 있지만, 법이나 단체가 그 구성원들에게 정치자금을 모아서 지원하거나, 단체의 결의에 따라 그 구성원들이 직접 후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또 하나의 쟁점은 국회의원의 입법활동과 관련해 정치자금을 받더라도 처벌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의원들을 풀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논란의 발단이 되고 있다.

정치자금법, 단지 ‘동료구하기’ 아니다

그러나 개정안의 기본 취지와 내용은 청목회사건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의원들에게 입법 로비를 하고, 이를 위해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후원하는 것까지 금지하고 있는 것을 푼 것이다. 여야 의원들이 ‘소액다수 후원금 제도’를 합법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물론 여기에는 이들 단체들의 ‘후원금 입법 로비’를 사실상 용인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따라서 이번 정자법 개정안은 국회의원들의 형태와는 별개로,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여부를 놓고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치자금법의 진짜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도 정치할 수 있게 하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동시에 지지자들도 그들을 후원할 수 있게 해, 돈 없는 이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정치자금법은 일종은 ‘풀뿌리자금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정치는 돈과 무관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이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할 수 없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청목회 사건에 대해서도 “유럽에서는 허용되는 일이며, 미국에서도 노조가 정치참여위원회를 통해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말했다.    

돈 없는 이도 정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장치

보수 언론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과 노조의 경쟁적인 로비로 사회적 갈등이 커질 것이라고 보도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실을 호도하는 ‘불공정한’ 지적이다. 매번 터지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서 드러나듯, 기업들은 공공연하게 거액의 자금을 정치권에 뿌려댄다. 이미 정치자금법의 테두리밖에 서 있는 셈이다.

문제는 노조의 정치자금인데, 현재 여기에 대한 법적 제약이 많다. 현행 정치자금법 31조 2항은 ‘누구든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등이 이 조항이 헌법에서 보장된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박 대표는 “정치자금법을 약자의 입장에서 볼 때 보수 언론의 보도는 그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갈등은 인간사회의 본질이기 때문에 이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참여, 결사, 재정후원 등을 허용해 노조가 갈등 안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런 것들이 보장되는 유럽은 되레 노사갈등이 드물게 일어나는 편이다.

그는 진보매체들 역시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수언론과 마찬가지로, ‘돈 안 드는 정치’라는 비현실적인 프레임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결국 돈 있는 사람만이 정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현대 정치에는 ‘돈’이 필요하다. 다만, 돈의 부정적인 기능은 최소화하고 정치적 약자들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에 집단적으로 후원할 수 있을 때, ‘1인 1표’라는 민주주의가 현실 정치에서 구현된다. ‘정치자금’을 단순히 비판적으로만 보기보다는 이런 원칙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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