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정부비판 프로그램을 2주 동안 불방시킨데 항의해 사무실에 현수막을 걸었다는 이유로 실무책임자를 포함한 제작진을 징계하겠다고 밝혀 내부에서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이를 보다못한 입사 9년 차 이하 PD 138명은 연명으로 김인규 KBS 사장에 대해 이런 치졸한 징계를 멈추고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13일 KBS와 <추적 60분> 제작진에 따르면 KBS는 지난 11일 강희중 <추적60분>CP를 비롯해 김범수·임종윤 PD에 대해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KBS는 이달이 지난달 추적 60분 ‘4대강’ 편을 불방시킨데 항의해 ‘추적 60분 불방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글이 적힌 현수막을 KBS 시사제작국 사무실에 내걸었을 뿐 아니라 떼라고 해도 안뗐다는 것을 징계방침의 이유로 들었다. 성실근무 수행 및 인격존중을 해야할 취업규칙 및 인사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 추적60분 4대강 편이 불방된 이후 추적60분 사무실에 나붙었던 현수막. 시사제작국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철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터  
 
KBS 홍보실 간부는 13일 “당사자 진술서 받고 있는 중”이라며 “현수막을 내걸어 직장질서에 문제를 일으켰고, 현수막의 내용도 상호 인격존중의 선을 넘은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징계통보를 받은 강희중 CP 등은 징계위원회 회부 사실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를 보다못한 입사 2∼9년 차 강윤기 김광수 신효정 유지윤 이재훈 등 KBS PD 138명은 13일 오후 성명을 내어 김인규 사장 등 KBS 경영진을 강도높게 성토했다.

이들은 현수막 달았다는 이유로 징계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치졸하다. 참으로 치졸하다”며 “현수막에 붙인 글자 수는 ‘추적60분 불방, 책임자를 문책하라’ 15자다. 당신들 눈에는 이 15자에 서린 분노와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을 리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칼끝은 막내들을 향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딱하다. 한두명 골라 본을 보이려는 그 참을수 없는 비겁함이 바로 지금 당신들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시사제작국장이 직접 현수막을 잡아 뜯고, 추적 60분 담당 부장이 인터뷰 횟수를 세어가며 후배들의 프로그램을 미숙하다고 비난한 것을 두고 “(차라리) 특종을 잡아오라고 꾸짖으라. 살아있는 권력의 허물을 왜 놓치냐고 매를 들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2주 연속 불방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경영진에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것에 대해 “최소한의 유감표명도 그 어떤 소통도 없었다. 오히려 승진해 자리를 찾아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 절망도 사치”라며 “수시로 불거지는 제작 자율성 침해에 분노도 지쳐간다”고 탄식했다.

   
  ▲ 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8일 오후 본관 1층 로비에서 <추적 60분> '4대강' 편 불방 긴급규탄대회를 열었던 장면. 이치열 기자 truth710@  
 
특히 KBS 뉴스 프로그램에 대해 이들은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미안할 정도”라며 “현장에 있어야 할 PD/기자들에게 어느덧 성명서 쓰는 일이 일상이 됐다”고 자조했다.

그러면서 김인규 사장과 KBS 경영진이 대화합을 하지 말고 차라리 계속 징계하고, 내부 불신을 더 키울 것을 주문하며 그래야 축배가 독배의 다른 말임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수 있다고 이들은 원망했다.

이들은 김인규 사장에게 “그저 한줌의 명예라도 소중히 하신다면 언론하는 후배들에게 권한을 돌려주고 사퇴하시라”라며 “누누이 들었을 말이지만 진정으로 사퇴하시라”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KBS 홍보실 간부는 “KBS에 들어왔으면 KBS의 취업규칙과 인사규정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음은 KBS 29∼35기(입사 2∼8년차) PD들이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부탁한다. 경고한다. 당장 멈추라.
- 추적60분 사태를 보는 29기 이하 PD 성명서

치졸하다. 참으로 치졸하다. 이번엔 현수막이 이유다. 대상은 34기와 35기다. 뭐라 쓰였었는지 되새겨본다. ‘추적60분 불방. 책임자를 문책하라.’ 15자다. 당신들 눈에는 이 15자에 서린 분노가 보였을 리가 없다. 한자 한자에 감춘 후배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을 리가 없다. 그저 생채기 생긴 알량한 권위만 있었나 보다. 그래서 망나니 칼춤을 추고 싶었을 게다. 그리고 칼끝은 막내들을 향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딱하다. 한두명 골라 본을 보이려는 그 참을수 없는 비겁함이 바로 지금 당신들의 수준이다.

난장판이다. 국장이 자신의 손으로 현수막을 잡아 뜯었다. 부장은 인터뷰 횟수를 세어가며 후배의 프로그램을 미숙하다 몰아쳤다. 제작진 전원이 감사실도 다녀왔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들어야 할 질책은 이런 것이 아니다. 특종을 잡아오라고 꾸짖으라. 살아있는 권력의 허물을 왜 놓치냐고 매를 들라. 2주 연속 불방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당신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최소한의 유감표명도 그 어떤 소통도 없었다. 오히려 승진해 자리를 찾아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 절망도 사치다.

수시로 불거지는 제작 자율성 침해에 분노도 지쳐간다. 제작과 보도를 막론하고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미안할 정도다. 현장에 있어야 할 PD/기자들에게 어느덧 성명서 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역으로 요청한다. 이제 대화합을 강조하지 말라. 징계의 칼춤은 계속 추시라. 조직내부의 깊은 상처와 불신의 간극은 더욱 키우시라. 기왕에 높이 든 승자의 축배를 맘껏 즐기시라. 그래야 우리도 털끝같은 기대를 저버릴수 있다. 그 축배가 독배의 다른 말임을 두눈 부릅뜨고 지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특보께 권한다. 착각하지 마시라. 특보께선 한국방송공사라는 공공기업체의 수장으로 오는데는 성공하셨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의 수장으로 조직원들의 인정을 받고 있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라. 지난 정권에서 사장으로 오려했다는 구구한 로비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특보를 엄호하던 사람들의 면면을 돌아보시라. 전직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그 누구를 언론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는 공영방송 특강의 저자이시니 더욱 잘 아실테다. 그저 한줌의 명예라도 소중히 하신다면 언론하는 후배들에게 권한을 돌려주고 사퇴하시라. 누누이 들었을 말이지만 진정으로 사퇴하시라.

한 시인이 말한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미련한 우리는 아프다. 길을 걷다가.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뉴스를 보다가. 돌연 욕이 나오고 눈물이 흐를 정도로 우리는 병들었고 아프다. 추적 60분 제작진 몇몇의 인사위원회 회부 소식에 달린 한 선배의 절절한 댓글에 다시 가슴이 먹먹하다. ‘정말로 정말로 후배들에게 이러는 것 아닙니다.’ 부탁한다. 경고한다. 당장 멈추라.

2011년을 여는 1월에

-29기 강윤기 기훈석 김경정 김상미 김세원 김영민 김자현 김진원 김홍범 박지영 이진희 전인태 조성숙 염지선 오은일 이현정 정효영 허양재-30기 강민희 김광수 김대현 김무성 김민희 김승욱 김영숙 김한솔 김해룡 남진현 박덕선 박석형 박성재 박정훈 백승철 양자영 양천호 이기연 이동은 이은형 이준화 이형일 전수영 정경아 정범수 정희선 조민지 조지호 최수영 최형준
-31기 강민승 고국진 김문식 김웅식 김자영 김종연 김효진 맹남주 박소율 송윤선 손광우 신주호 신효정 심하원 염정원 오준석 우현경 윤성현 이경민 이나정 이동훈 이송은 이승현 이지윤 이지희 이진희 이휘현 장소랑 정순아 정현진 차영훈 최승희 한상우 함혜영 황국찬 황혜지-31기경력 강봉규 강승연 강지원 김명숙 이민정 이은미
-32기 김미해 남상원 박진석 손자연 유재우 유지윤 장윤선 지우진 하종백
-33기 김동휘 김영우 김윤정 김정하 김정현 김태두 박수정 박지은 박현진 유종선 윤민아 이선희 이재훈 이태헌 장효선 전온누리 조영중 진정회 홍아람
-34기 김근해 김민경 김민정 김범수 박민정 서승표 안상미 안지민 원승연 유정아 유혜진 유호진 이명희 이윤정 이정미 임세준 정연희 정현재 조혜은 현재성 황초아
-35기 김은비 손수희 심정애 안상은 이주영 이호 임종윤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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