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 4대강 편 방송예정일 이전에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KBS가 왜 반정부 방송을 하느냐며 수신료 인상 분위기가 안좋으니 참고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정보보고로 올린 KBS 정치외교부 기자가 해당문건이 공개된 데 대해 "끔찍한 일을 맞고 말았다" "테러행위를 당했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해 KBS 기자들 사이에 논쟁이 되고 있다.

15일 KBS 보도본부에 따르면, 청와대를 출입하는 최아무개 KBS 정치외교부 기자는 KBS 새노조가 지난 3일 작성된 정치외교부 정보보고를 공개한 데 대해 KBS 보도정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어제 내 소중한 취재원이 후배 기자에 의해 실명으로 세상에 노출돼 버렸다"며 "기자 경력 만 18년을 보름 앞에 둔 상황에서 기자로서 도저히 맞아서는 안될 끔찍한 일을 맞고 말았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취재활동과 보도를 업으로 하는 기자의 취재 핵심이 취재원과의 신뢰 관계라는 점을 들어 "제 2노조(KBS 새노조)의 정보보고 공개는 내 손발을 잘라버린 것과 다를바 없는 테러행위"라며 "이제 어떤 고위급 취재원이 내게 속 깊은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하겠는가? KBS 보도본부, KBS 기자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걱정과 안타까움, 무기력감, 자괴감이 내 머리를 짓누른다"고 개탄했다.

최 기자는 "타사 동료 선후배 기자들로부터 위로도 받았다. 습관적으로 아침 취재를 시작하려니 겁이 덜컥 난다. 내 취재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식 데스크 사인이 난 기사가 아니고, 참고 사항으로 보낸 내용까지 세상에 다 공개되는 상황...취재한 내용을 가감 없이 다 보내야 하나? 마음이 혼란스럽고,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자 초년 시절 얼굴을 내보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실수로 얼굴이 방송된 한 아주머니가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으나 잘 마무리됐던 과거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데, 그로부터 16년여만에 같은 회사 후배 기자에 의해 내 취재원과 나와의 일종의 off-the-record를 전제로 한 대화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말았다"며 "문제는 이것이 나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KBS기자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최 기자는 "KBS 기자와 그들이 만든 뉴스의 이미지가 엄청나게 훼손된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 KBS 기자에게 '기사는 쓰지 말라고 얘기해주는 것도 노조에 의해 다 공개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 기자는 이어 "KBS 기자 사회가 건강하다면 이번 사태에 대해 기자협회 차원에서 자발적이고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유감을 표명하고, 깊이 사과해야 하며 재발 방지를 다짐해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KBS 기자 사회의 윤리와 예의를 바로 세우는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대국민 신뢰 회복 노력과 KBS 기자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에 선후배 동료 기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KBS 기자 사회 내부에서 모두가 다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익명의 KBS 보도본부 후배기자는 이 글에 대해 "취재원을 노출당한 최 선배의 심정 모를리 없으나 그것때문에 KBS 기자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분해 하는 모습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며 "KBS의 신뢰는 KBS가 뉴스와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권력에 대한 감시, 불편부당한 보도, 약자에 대한 배려...그것이 KBS의 신뢰를 만들고 기자의 신뢰를 만든다"라며 "청와대 취재원도 취재원이라면 취재원이겠지만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최 선배의 정보보고가 단순한 정보보고 차원이 아니라 최 선배를 통해 건네지는 청와대의 입장이라는 것 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최 기자가 KBS 기자이기도 하지만 청와대와 KBS를 잇는 정보의 전달자이기도 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자 생활 17년 동안 가장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최 기자의 주장에 이 후배 기자는 "최선배가 오늘 겪은 일이 그 17년 중에 가장 끔찍한 일이라면 저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라며 "지금 우리가 겪는 가장 끔찍한 일은 권력자인 청와대의 취재원이 우리에 의해 외부에 의해 까발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자가 우리 KBS를 수족 부리듯 하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의중을 최선배를 통해 KBS에 전달하도록 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주인은 청와대가 아닌데도 어느새 청와대가 우리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며, 그런 부끄러움을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듯 엉뚱한 곳에 한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청와대의 그 취재원이 최 선배에게 그런 볼멘소리를 할 때 왜 당당하게 국민의 심부름꾼인 KBS 기자로서 항의하지 않으셨느냐. KBS의 주인은 국민이고 KBS의 프로그램과 뉴스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인 만큼 청와대의 입장과는 별개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라고 되레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기자라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출입처인 청와대 출입처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권력에 가깝게 다가가 그들과 친목을 다지며 자신의 스펙을 넓이는 자리로서가 아니라 가장 권력 깊은 곳에 들어가 국민의 소리를 전달하고 그들의 권력을 바른 곳으로 갈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이에 대해 최 기자는 다시 재반박글을 통해 "내 정보보고에는 대부분의 경우 내가 청와대 인사들에게 한 말은 생략된다는 점"이라며 "자네가 말한대로 난 기자로서 취재와 보도도 하지만, 동시에 KBS와 청와대 사이의 연락장교 역할도 맡고 있네. 그래서 K-View 문제라든지,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 문제 등에 있어서는 청와대가 KBS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고, 또 그들이 우리 보도에 대해 불만이 있을 경우에는 오해와 갈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네"라고 반박했다.

그는 "일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사람들도 수신료를 내는 소중한 시청자라는 점도 이해를 해주었으면 하네"라며 "우리는 그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하네. 그렇다고 꼭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 그건 우리 KBS의 몫이니까"라고 주장했다.

최 기자는 "내가 제기한 문제의 요점은 취재활동의 핵심인 취재원과 그가 말한 내용이 여과 없이 실명으로 공개됐다는 점"이라며 "이 점에 대해서는 추적 60분 문제와는 별도로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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