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시선이 집중되는 대형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명박 정부는 쏠쏠한 정치적 재미를 봤다. 평소에 처리하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민감한 정치 과제들을 처리하기에 이 처럼 좋은 때도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KBS 당시 정연주 사장 교체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 사장을 정권 입맛에 맞게 교체하려는 시도에 대해 KBS 내부는 물론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거세게 반발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했던 2008년 8월 8일 KBS 이사회는 정연주 사장 해임을 건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사장 해임을 처리한 8월 11일은 주요 아침신문에 수영 박태환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 소식이 도배된 날이었다. 청와대 결정 소식이 전해진 8월 12일자 주요신문 1면은 양궁 남자 대표팀의 올림픽 3연패 소식으로 채워졌다. 바로 이날은 검찰이 정연주 사장을 전격 체포한 날이기도 했다. 언론이 ‘금빛 환희’ 가득한 뉴스로 도배하던 바로 그 시기에 KBS 사장 교체가 단행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이 정연주 사장을 체포하던 2008년 8월 12일 여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중국 13억의 인구가 하나가 되어 올림픽을 치르는 데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분열과 대립만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월드컵 기간에도 주요 방송은 연일 월드컵 뉴스로 도배했다. 최근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국무총리실 불법 민간인 사찰도 이때 불거졌지만, 방송에서는 관심 밖이었다. 특히 이 시기는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직후이다. 당시 야당은 지방선거 민심을 반영해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등 강경기류를 이어갔다. 이명박 대통령도 6월 14일 방송연설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 동아일보 6월28일자 1면.  
 
흥미로운 대목은 대통령 방송연설이 있던 이날은 한국이 월드컵 첫 경기에서 그리스에 2대0 완승을 거둔 소식이 주요 신문에 도배됐던 날이라는 점이다. 동아일보의 이날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거침없이 월드킥…훌쩍 큰 대한민국>이었다. 이 대통령은 선거에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지만, 국민과 언론 관심은 월드컵에 집중됐다.

야권과 종교시민단체들이 6월 15일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를 열고 4대강 사업 저지 열기에 힘을 쏟았지만,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6월 17일 아르헨티나전, 6월 23일 나이지리아전 등 중요한 한국대표팀 경기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6월 26일 우루과이와 8강 진출을 놓고 선전을 벌였고 1대2로 패한 소식은 6월 27일자 주요 일간지 지면을 장식했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2015년 12월로 연기하는데 합의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6월 27일 논평에서 “오늘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우려했던 대로 전작권 환수 시점 연기와 미국에 유리한 한미FTA 신속 비준이라는 사상초유의 가장 더러운 빅딜이 이뤄졌다”면서 “전작권 환수는 50년 만에 군사주권을 되돌려받으려는 국민들의 상식적 요구를 반영하여 추진된 한-미간 합의였으나, 손바닥 뒤집듯 이를 수포로 돌려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음날 동아일보 1면에는 <우린 행복했다 내일을 보았다>는 제목과 함께 허정무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과 주장 박지성 선수가 포옹하는 사진기사가 머리기사로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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