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조단 안에서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은 국내 과학계에 금기의 영역이 돼 있는 듯 했다. 하물며 대학생들까지도 말하기를 꺼려했다."

지난 17일 진통 끝에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란은 끝났나' 편을 제작한 강윤기 PD와 심인보 기자. 그들이 보기에 천안함의 '의문'과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은 바로 합조단 안에서 과학적 분석과 진상 규명을 가로막은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었다. 의혹과 논란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는 것 또한 학부생들마저 방송 참여를 주저할 수밖에 만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압력'의 반작용 때문일 것이다.

<추적60분>은 이번 방송을 위한 취재과정에서 몇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찾아냈다. 천안함 사고 현장에 더 가까운 백령도 남쪽 초소의 존재, 천안함 유턴지점이 군이 발표한 최초의 사고지점이라는 것, 그리고 군 당국이 천안함 어뢰 피폭의 결정적 물증으로 제시한 백색가루(군 주장 '흡착물질')가 폭발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분석 결과 등이 그렇다. 

그러나 강 PD와 심 기자 두 사람이 이번 취재에서 찾아낸 가장 결정적인 '사실'이라고 한다면 바로 천안함의 진상 규명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와 그 압력이 얼마나 강력한 '금기의 선'을 그어 놓고 있는지 하는 점일 것이다.

   
  ▲ 강윤기 KBS <추적 60분> PD. 이치열 기자  
 
18일 KBS 신관에서 미디어오늘과 만난 두 사람은 가장 먼저 '합조단 내에서 심각한 정보 통제와 왜곡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합조단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던 지난 5월 천안함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알루미늄 파편과 황산염의 존재.

당시 언론들은 이에 대해 상이한 보도를 내놓았다. "ADD(국방과학연구소)는 황산염의 경우 폭발과 무관하다고 했으나 국방부는 묵살했다"(경향신문)는 보도가 있었는가 하면 "황산염은 서방에서 쓰지 않는 특이한 화약성분"(동아일보 등)라는 보도도 나왔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한겨레21과 <추적60분>에서 확인한 ‘비결정질 알루미늄황산염 수화물’ 성분이 그 때 이미 합조단에서도 확인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황산염'의 존재는 어느 순간 언론 보도에서 삽시간에 사라졌다. 강 PD와 심 기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ADD 과학자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얘기했으나 내부에서 토론할 분위가 못됐고, 이런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조사까지 받기도 했다. 그 후에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군 당국이 천안함 선체와 어뢰, 파편 등에서 수거한 어뢰 폭발의 증거인 이른바 '흡착물'이 폭발과는 무관하거나 거리가 먼 '황산염' 성분인 것을 알고도 이를 묵살했다는 결정적 정황인 셈이다. 두 사람은 이에 관한 합조단 관계자들의 '발언'을 이번 방송에 내보냈다.

강 PD는 이에 대해 "분명한 왜곡이 이뤄진 것"이라고 단언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합조단의 결론을 그들이 폭발재(폭발에 의해 발생한 물질)라고 믿고 있는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는 쪽으로 내도록 몰아갔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알루미늄 실험, 부식실험도 했던 자연공학 전공 모 대학의 학부생들과 약속을 두 번이나 잡아 만났지만 돌연 '애쓰시는 것 감사하다'더니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그들은 '쥐20 낙서판을 봐라', '취직할 때 불이익 생기면 어쩌느냐'는 이유를 대더라.(심인보 기자)"

   
  ▲ 심인보 KBS <추적 60분> 기자. 이치열 기자  
 
"국내 전문가들이 천안함 논쟁에 뛰어들지 않으려 한 것도 이런 불이익을 걱정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그런 면에서 이번에 시료 분석을 해 준 정기영 안동대 교수는 용기있는 분이다.(강윤기 PD)"

두 사람은 취재 과정 내내 군 내부뿐만 아니라, 그 바깥에서도 ‘천안함 문제’는 관련 전문가들이 아예 관여 자체를 꺼리는 '금기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절감해야 했다. 한겨레21의 보도나 <추적60분>의 방송으로 '흡착물'의 과학적 근거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있는데도 군 당국이 막무가내로 이 물질을 여전히 '어뢰 폭발의 증거'라고 우기고 있는 것 역시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군이 천안함 어뢰 피폭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한 물질의 성분분석을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이는 '과학자와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라는 식의 한가한 해명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특히 '함미와 어뢰가 같은 장소에 있었고, 함수에도 이 백색물질이 있었으니 폭발'이라는 게 군의 주장인데, 그렇다면 보고서는 왜 냈나. 그 성분이 무엇이냐를 두고 6개월 가까이 논쟁을 벌여온 것 아닌가. 군 당국이 스스로의 주장을 부정하는 꼴이다.(강 PD)"

강 PD는 이 점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군 당국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인정할 것은 분명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합조단에도 분명한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해서는 그 어떤 의혹도 해소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 PD와 심 기자 두 사람은 군 당국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흡착물질'의 경우 모의수중폭발 재실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왜 합조단이 보고서에 사실과 다르게 기술했는지 그 과정도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번 방송이 국방부의 천안함 보고서에 대한 검증을 통해 보고서 내용의 핵심 내용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등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원인의 실체적 진상에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아쉬움도 드러냈다. "여타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었고, 언론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 지난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심 기자는 실체적 진상 규명과 관련해 "만약 (북한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는) 정부발표가 거짓말이라면 미국 언론에 의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처럼 과학적 검증을 통한 취재만로는 밝힐 수 없다. 정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며 "관련 정보의 유출 가능성은 국내 보다 미국이 더 높을 것"이라고 보았다.

천안함 문제를 다룬 이번 <추적6O분>은 방송 당일 '이중편성'이 되는 등 한 때 불방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제작진 윗선에서 방송 내용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내용을 조정해 방송됐지만, 방송 내용의 큰 줄기에는 별다른 가감이 없었다. 하지만 방송이 나올 때까지는 지금 같은 KBS에서 '천안함 문제'가 과연 온전히 다뤄질 수 있을까 하는 외부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도 이번 <추적60분>은 KBS의 기자들과 PD들에겐 중요한 전기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제작 현장에서 윗선과 간부의 지시에 일방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나름대로 제작자율성 지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무엇보다 취재를 통해 확인된 내용(팩트)들이 있어 방송이 지켜질 수 있었다고 본다.(심 기자)"

"KBS 안에서도 이번 방송은 단순히 특정 프로그램 하나를 방송하느냐, 못하느냐 그런 차원을 넘어 (기자와 PD들의 자존심이 걸린) 저널리즘의 문제로 보고 많은 격려를 해줬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적어도 우리가 취재한 확실한 팩트가 있는데 팩트까지 부정당하거나 방송이 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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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 지난 17일 밤 방송된 KBS <추적 60분> 천안함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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