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선생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인권탄압국가인 북한체제에 항거하고 북한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셨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영면에 드셨다.”

한국사회가 정체성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체사상 대부’를 추앙하는 광고가 보수신문에 그것도 극우 보수단체 이름으로 실렸다. 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 면인 39면과 40면에는 나란히 극우 보수단체들의 5단 홍보 광고가 실렸다.

   
  ▲ 조선일보 10월13일자 39면.  
 
39면에는 <고 황장엽 선생 추모 및 북한 3대 세습독재 규탄 국민대회 개최!>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행사 참여단체로는 국민행동본부, 조갑제 닷컴,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극우 보수 단체들이 참여했다.

조선일보 40면에는 <고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 통일사회장 공고>라는 제목으로 5단 광고가 실렸다. 10월14일 서울아산병원 영결식장에서 '통일사회장'을 지내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장지를 모시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 광고가 실린 시점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국립현충원 안장 문제가 최종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현충원 안장은 이들의 바람대로 결정됐다. 국가보훈처는 13일 법률에서 규정한 자격 요건을 갖춰 안장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황장엽 전 비서를 국립현충원에 안장시키고자 정부가 곳곳에서 무리수를 뒀다는 점이다. 정부는 서둘러 1급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를 신청했고, 곧바로 이명박 대통령 재가를 받는 등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황장엽 전 비서는 국가 유공자이기 때문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게 아니라 국립현충원에 안장시키고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주게 된 경우이다. 법의 형식 논리를 맞추고자 편법 훈장을 주도록 한 것이다.

국내 극우 보수단체들이 ‘황장엽 추앙’에 나선 장면은 그가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북한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린 인물이다. 74세의 나이까지 북한에서 살았으며 최고위 권력을 지낸 인물이다.

   
  ▲ 조선일보 10월13일자 38면.  
 
부정부패 문제로 국내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으로 들어온 이후에는 극우 보수단체들로부터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북한 체제비판에 누구보다 앞장섰고, 남북화해와 협력의 흐름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등 극우 보수단체들의 입맛에 맞는 행동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북한 주체사상 전도사로서 인생 황금기를 안락하게 보냈던 인물이 일흔 살이 넘는 나이에 남쪽으로 내려와 북한 체제를 비판했다고 ‘영웅’으로 대접해야 하는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주체사상 전도사가 호국영령이 잠든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는 것은, 그것도 보수를 자처하는 정부에서 보수를 앞세운 극우 단체들의 동의 하에 추진되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13일 “황장엽 전 비서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 분은 주체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닦은 분이고 오늘날 북한의 현실에 대해 책임져야 할 분”이라고 주장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또한 이 분이 남한에 와서도 주체사상을 부정한바가 없다. 그래서 만약 이 분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면 한국 정체성에 혼란을 제기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적절치 않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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