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은 배추를 비롯한 채소값 폭등의 원인 분석이나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물가관리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언급하는데 그쳤다. ‘채소값이 비싸니 아예 길러 먹자’는 뉴스가 나온 반면, ‘배추가 비싸니 양배추김치를 자신의 식탁에 올리라’고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분통을 터트린 시민들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민경제에 관한 최소한의 비판 감시기능조차 실종됐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특히 지난 추석 연휴 첫날 이 대통령 부부를 출연시켜, 어머니 생각에 펑펑 우는 장면과 풀빵 장수를 도운 뒷얘기, 자식사랑 등 각종 친서민적인 이미지 극대화에 나섰던 KBS의 경우 오로지 정부의 대책 발표 위주로 보도할 뿐 민감한 쟁점은 외면해 극심한 이중성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SBS는 메인뉴스인 <8뉴스>의 신동욱 앵커가 양배추 김치 발언을 한 이 대통령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판에 오히려 역성을 내며 두둔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같은 방송 보도에 대한 냉소적인 시청자 반응에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은 쟁점을 심층 취재하기 보다는 외면하는 쪽으로 일관하고 있다.

▷마트 생중계 연결 “채소값 얼마에요”…“차라리 길러 먹자”?=MBC는 배추값이 한 포기에 1만5000원으로 뛰었다는 소식이 28일 한겨레 1면 등에 보도되자 이날 저녁 <뉴스데스크> 9번째 리포트 ‘배추 한 포기에 만원’을 중계차로 대형 마트 현장을 연결해 생중계 보도했다. 그 원인 분석이 주된 뉴스 초점이 되고 있었지만 이어진 보도(산지작황 최악)는 올여름 이상 ‘폭염’으로 산지 작황이 최악이라는 피상적인 분석에 그쳤다.

그 다음 뉴스는 생뚱맞기까지 했다.‘채소값 사정이 이러니 차라리 직접 채소를 길러서 먹는 가정이 늘고, 재배용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SBS의 한 기자도 거들고 나섰다. 조성현 SBS 기자는 SBS 홈페이지 취재파일 코너에 ‘이참에 상추 한 번 길러봐?’라는 글을 통해 서울 강남 논현동 양재동에 사는 도시농부의 사례를 들면서 “치솟는 채소값, 이참에 상추 한 번 길러보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나 하는 보도인지, 전문 농부들도 어쩌지 못한 것을 아마추어 도시농부라고 해서 잘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보도고 촌평이다. 배추 농사를 망친 농민들의 처지에 대한 고려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

▷정부·서울시 대책 받아쓰기 급급=배추값 파동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3일, 방송사들은 일제히 서울시가 배추 30만 포기를 확보해 싼 값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일엔 정부의 중국 배추 수입 대책을 소개했을 뿐, 적절한 대책인지,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는지, 물량은 충분한지, 국내 농가에 미칠 파장 등에 대한 분석이나 검증은 없었다. 정부·기관 발표 저널리즘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원인에 대해서도 주로 ‘이상 기후’, ‘유통과정에서의 매점매석’ 등 정부 측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하는 데 바빴다. 반면 4대강 공사로 인한 채소 경작 면적의 감소 여부와 그것이 채소값 앙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등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쟁점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나 깊이 있는 분석은 거의 없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최근 발표한 논평에서 “우리 방송 보도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참담하다”며 “방송 3사 보도국 구성원들은 만약 지난 정권 아래 ‘배추 한 포기 1만5000원’ 사태가 벌어지고 대통령이 ‘양배추 김치’를 말했다면 어떤 보도를 내보냈을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이명박 정권 앞에 방송 3사의 보도가 날이 갈수록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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