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월간 '고래가그랬어' 발행인이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를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끈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자유주의자라는 표현을 두고 최근 여러 차례 설전을 벌인 바 있다. 이하 존칭·직책 생략.

논쟁의 시작은 김씨가 6·2 지방선거 직후인 지난 6월 17일 한겨레 칼럼에서 심상정 당시 진보신당 경기도 지사 후보의 사퇴를 비판하면서부터다. 김씨는 "진보신당의 대중성은 진보정당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만 중요하다"면서 진보신당의 '대중성 강박'과 '프레임 오류'를 지적했다.

김씨는 작정이라도 한 듯 "진중권씨를 비롯한 진보신당 당적의 자유주의자들이 그나마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간직한 '전진' 같은 그룹을 마치 스탈린주의자들이라도 되는 양 마구잡이로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면서 "그런 자유주의자들이 촛불광장에서 활약한 덕에 당원이 늘었다지만, 그렇게 입당한 사람들은 지금 진보신당을 아예 자유주의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비판했다.

진씨는 다음달인 7월 9일 씨네21 칼럼에서 "'진보신당의 당적을 가진 자유주의자'라는 딱지는 모욕을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진씨는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면서 ""그런데 '자유주의자'에 대한 이 생뚱맞은 적의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80년대 이념서적에 난무하던 어법"이라고 지적했다.

진씨는 "'정체성'(identity)은 동시에 '동일성'을 의미한다"고 전제하고 "다른 모든 당원들을 제 형상대로 찍어내야 비로소 당의 정체성이 유지된다는 강박관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면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당원 받을 때에 아예 이념조회를 하는 게 낫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언제부터인가 진보정당과 그 언저리에도 배타적 자유주의자들이 출몰한다"면서 이들을 '좌파연하는 자유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내가 주목하는 건 그들의 '다름'에 대한 배타성, 자신보다 왼쪽의 사회적 상상력을 모조리 '닭짓'이라 매도하는 그들의 배타성,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반공주의"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좌파는 물론 이명박을 반대하며 이명박과 싸우지만 그것뿐이라면 그 싸움의 성과는 모조리 자유주의 세력이 차지하게 된다"고 '좌파연하는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 ⓒ레디앙.  
 

김씨는 11일 레디앙과 인터뷰에서도 "진중권은 점점 우경화하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김씨는 "내가 그를 굳이 자유주의자라고 한 건, 그를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자유주의적 경향, 혹은 반좌파적 경향이 진보신당과 좌파 전체에 해악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치를 폐기하려면 굳이 좌파일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대중성과 대중성 강박은 다르다"면서 "잘못된 대중성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이 대중성은 얻었지만, 진보정당에게 유의미한 대중성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씨는 "고생해서 자유주의자들에게 퍼주는 대중성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정당과 다른 이유를, 굳이 따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씨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변규항이라는 사람이 나보고 위험한 '반공주의자'라고... 살다 보니 별 소릴 다 듣네요. 논리가 거의 모스크바 재판 수준"이라고 짧게 남겼을 뿐 공식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김씨와 진씨가 벌이는 논쟁의 핵심은 진보신당의 '대중성 강박'에 있다. 김씨는 진씨가 좌파의 가치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닭짓'으로 조롱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고 진씨는 김씨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모욕이며 폭력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씨는 진보신당이 좀 더 명확하게 좌파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그게 대중성을 확보하는 바른 길이라고 주장한다. 진씨가 이에 대해 자유주의자는 진보신당에 들어오면 안 되느냐고 반박하면서 논쟁의 핀트가 약간 어긋난 느낌이다.

결국 둘의 논쟁은 진보신당의 정체성과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6·2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연대에 대한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갈등이 표출됐다고 볼 수도 있다. 김씨는 "심상정은 정도 인물이라면 민주당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게 개인에게도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고 냉소적인 평가를 내렸다.

김씨는 "맑스를 폐기하는 게 아니라 맑스를 어떻게 달라진 현실에서 읽고 실천하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계급이 사라졌다고 말할 게 아니라 계급의 변화한 양상과 자본의 계급 통합 전략에 맞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사회주의 개념 자체를 부인할 게 아니라 정말 현실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좌파"라고 규정한다.

진씨가 '전진' 등을 비현실적이라며 조롱하는 것처럼 김씨는 진보신당에 합류한 촛불세력을 평가절하한다. 김씨는 진보신당 지지자들을 좌파와 자유주의자로 구분지으면서 자유주의자를 이념적으로 치열하지 않은 현실 타협주의자 정도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논쟁은 감정 대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진보신당이 자유주의 정당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김씨의 우려는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진보신당이 어설픈 타협으로 대중성 확보에 목을 매기보다는 먼저 정책적 선명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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