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직전인 2008년 2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 타 무너졌을 때 이 대통령은 "복원 비용이 2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십시일반 국민들의 성금으로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국민 한 명 한 명의 정성으로 복원해서 마음을 추스르는, 그리고 소망을 다시 깨우는 그런 제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여론은 냉담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 숭례문을 전면 개방하면서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수습하는 사람 따로 만만한 게 국민이냐", 이제 와서 국민들에게 복원 비용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경숙 위원장이 나서서 "이 당선인의 본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강제모금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 5월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에도 강제적인 성금 모금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국방부는 "장병들 월급에서 일정액을 모으거나 국민성금 모금으로 유가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순직한 사병의 경우 보상금이 3천만원 수준인데 관련 법을 개정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임시 방편으로 국민 모금을 제안한 것이라는 국방부 해명이 있었지만 역시 국민들 반응은 냉담했다.

KBS가 앞장 서서 추모 생방송을 내보내면서 성금을 모금하기 시작했고 행정안전부는 공문을 내려보내 고위 공무원 이상 5만원, 3급 4만원, 4급 3만원, 5급 2만원, 6급 이하 자율참여 등을 지시하기도 했다. 아직 사고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데다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국가가 국민들에게 성금을 강요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이런 일 하라고 세금 내는 것 아니냐, 왜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느냐"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 머니투데이 8월16일 3면.  
 
그리고 65주년 광복절을 맞은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은 반드시 온다"면서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담론 수준에 머물렀던 통일을 국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통일 재원을 미리 준비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통일에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고 미리 재원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을 전면 부정하고 일촉즉발의 남북 대결 국면을 조장해 왔던 걸 돌아보면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집권 초기부터 온갖 반발을 무릅쓰고 부자 감세를 밀어붙였던 이 대통령이 새로운 세금을 신설한다는 건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이다.

   
  ▲ 동아일보 8월16일 3면.  
 
기획재정부는 아직까지 통일세의 추진 일정이나 징수 방법 등과 관련, 논의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언론은 대부분 "소득세나 법인세 같은 직접세 방식과 같이 세목을 별도로 신설하기 보다 각종 부담금이나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늘리는 방식으로 통일세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과거 폐지됐던 방위세를 통일세로 이름을 바꿔 부활시키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동아일보는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 "부가세를 2~3%포인트 올리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면서 "목적세 형식을 취하면 조세 저항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정부의 부가세 예상 수입은 48조7000억원으로 전체 국세 수입(171조1000억원)의 28.5%를 차지한다. 부가세 세율을 2%포인트만 올려도 연간 세수가 약 10조원 늘어난다. 이 신문은 "국민경제적 부담과 그에 따른 조세 저항도 정부가 풀어야 할 큰 숙제"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는 아예 "소득세나 법인세 등과 같은 직접세의 세목을 신설하거나 인상하는 방식보다 조세저항을 줄일 수 있고, 현재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율(10%)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에 비해 낮아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벌써부터 명분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대부분 언론이 연합뉴스 보도를 간접 인용해 간접세 세율 인상이 통일세의 유력한 대안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 우리나라의 간접세 비중은 OECD 회원국 가운데 3위다. 멕시코와 터키 다음으로 높다.  
 
우리나라 부가가치세 세율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부가가치세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교묘한 통계 왜곡이다. 전체 조세 총액에서 부가가치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금도 매우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전체적으로 낮고 특히 직접세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직접세 비중이 낮다는 건 그만큼 조세의 소득 재분배 효과가 낮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연합뉴스 등은 직접세는 거론하지 않고 부가가치세 세율만 문제 삼고 있다.

부가가치세를 비롯해 간접세가 늘어날수록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이다. 조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를 얻으려면 직접세를 늘리고 정부 공공지출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보수·경제지들은 간접세가 조세 저항을 줄이는 방안이 될 거라고 노골적인 훈수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간접세 비중이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 GDP 대비 직접세 비중은 8.4%로 거의 최하위 수준이다. 1위 덴마크의 3분의 1 수준 밖에 안된다.  
 
지난해 국세청 통계 연보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전체 세목 가운데 부가가치세 비중이 24.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법인세가 21.6%, 소득세가 20.0%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을 잇달아 낮춘 탓에 조세총액 대비 법인세와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조세총액 가운데 간접세 비중이 OECD 회원국 가운데 3위, 멕시코와 터키 다음으로 높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부동산 보유세 역시 우리나라는 OECD 평균 대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보유세는 기준시가 기준으로 0.3%인데 실거래가 대비로는 0.1~0.2% 수준밖에 안 된다. OECD 평균은 1%가 넘는다. 조세 총액 대비 보유세 비중은 미국이 11.9%, 영국이 9.4%, 일본이 8.2%인 반면 우리나라는 1.8% 밖에 안 된다. 통일세를 신설하기 앞서 종합부동산세를 원상 복구시키는 것이 우선 아닐까.

   
  ▲ 조세부담률도 20.2%로 뒤에서 4위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과 기업들 세금 부담이 낮다는 이야기다.  
 
통일비용은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에서는 2300조원,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에서는 2006조원, 조세연구원 연구에서는 10년 동안 GDP의 12% 127조원 정도가 투입될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통일한 독일의 경우 3천조원 정도를 쏟아 부었는데 통일 직후 1년 동안 소득세와 법인세에 각각 7.5%씩, 이후 1995년에 각각 5.5%씩을 징수했다. 독일의 경우는 대부분 직접세로 통일비용을 충당했다.

정부·여당과 보수·경제지들이 통일세를 신설한다는 핑계로 부가가치세 세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후안무치한 터무니없는 억지라고 할 수 있다. 추가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면 선진국 수준으로 직접세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인하한 소득세와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세율을 원상 복구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더도 말고 OECD 평균 수준만 되도 통일 비용의 상당부분을 조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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