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1번' 글씨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TNT 260kg 분량의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는데도 유성 매직으로 쓴 글씨가 왜 날아가지 않았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어뢰 추진체 외부의 페인트가 모두 타버렸는데 '1번' 글씨만 남아있다는 것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난 2일 송태호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교수가 "폭발 직후 0.1초가 지나면 주변 온도가 28℃까지 낮아지기 때문에 '1번'이라고 적힌 어뢰 추진체의 디스크 후면 온도는 0.1℃도 상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 교수는 5일 공개한 논문에서 "송 교수는 폭발이 비가역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면서 "이공계 대학교 1학년 일반 물리에 나오는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논문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합조단이 지난 5월20일 공개했던 어뢰추진체 수거물. 알루미늄으로 돼있는 스크루의 경우 극심한 부식이 이뤄져있다. 이치열 기자.  
 
송 교수는 PV=C라는 단열 팽창 공식을 적용해 폭발 직후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는데 이는 안팎의 압력이 동일하게 유지되면서 비교적 천천히 팽창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이 공식에서 P는 압력, V는 부피, C는 절대온도다. 온도가 일정하다면 압력이 늘어날 때 부피가 줄어들고, 부피가 늘어나면 압력이 줄어든다는 열역학의 기본 공식이다. P와 V는 서로 반비례하고 각각 온도에 비례한다.

그런데 폭발의 경우는 외부와 차단된 단열 상황이 아니다. 압력이 일정한 상황에서 부피가 갑자기 늘어난다면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게 맞다. 그렇지만 폭발이 일어나면 압력과 부피가 동시에 급격히 증가하고 온도도 급격히 높아진다.

   
  ▲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는 어뢰 폭발 직후 주변 온도가 급격히 낮아질 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는 이를 상식 이하의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송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폭발 직후 초기 버블은 반지름 0.33m에 온도가 3003℃인데 버블이 어뢰 길이인 7미터 정도로 팽창하면 -63℃까지 낮아지게 된다. 폭발이 일어났는데 주변 온도가 낮아진다? 이 교수는 "사람이 거기 있으면 얼어 죽을 것"이라고 단호한 평가를 내렸다. 버블이 팽창하면서 온도가 낮아진다는 송 교수의 기본 가정이 틀렸다는 이야기다. 

송 교수는 단열팽창 상황을 가정했지만 단열팽창은 실험실에서나 가능하다. PV=C라는 공식은 단열팽창의 경우에만 적용된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얼어죽지 않는 건 부피와 온도가 반비례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 단열팽창일 경우 압력과 온도가 반비례한다. 그러나 어뢰 폭발은 단열팽창이 아니라 자유팽창에 가깝다는 게 이승헌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송 교수의 초기 조건을 쓰면 폭발 직후 초기 버블 내부의 압력은 2만 기압에 가깝다"면서 "버블 바깥의 압력이 상대적으로 진공 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팽창 전후 온도는 거의 같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버블이 7미터 크기로 팽창한 뒤에도 온도는 3000℃ 이상이 돼야 한다.

어뢰 추진체 뒷부분까지 3000℃ 이상의 고열의 버블이 전달됐을 거라는 이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어뢰 추진체 외부의 페인트가 날아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파란색 '1번' 글씨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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