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wikileaks.org)는 고발·폭로 전문 소셜 미디어다. 지난 2007년 이라크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로이터통신 기자 등 민간인 12명을 사살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지난 4월 이 사이트에 오른 이 동영상은 이라크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들을 사살하고 "나이스"라고 외쳤던 헬기 조종사는 희생자들을 반군으로 판단하고 기자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무기로 착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위키리크스가 25일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밀문서 9만여건을 공개했다. 모든 작전과 총격, 폭발, 범죄 등 그야말로 아프간 전쟁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하다. 엄청난 기밀문서가 공개됐으니 미국 정부가 발칵 뒤집힌 건 당연한 일. 이 자료에 따르면 민간인 사망자가 최소 195명, 부상자는 17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가운데는 어린이와 여성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불 전쟁일지(war diary)'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방대한 기록은 기자들에게는 기사의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끔찍한 전쟁의 실상이 폭로되면서 온갖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북한이 아프간 반군, 탈레반에게 미사일을 판매했다는 기록도 나왔고 파키스탄이 미국에서 지원금을 받아 탈레반을 지원하는 이중플레이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탈레반 요인을 암살하기 위한 특수부대의 현황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아프간 전쟁 관련 미국 국방부 기밀 문서의 한 페이지.  
 

사상 최대의 기밀 유출이라고 할 만한 이번 사건으로 미국 정부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충격적인 일"이라면서 "아프간 주둔 미군을 위험에 빠뜨리고 군의 기밀 유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미국 국방부는 즉각 유출자 색출에 나섰고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샌지 체포령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위키리크스는 흔히 협업 문서 작업에 쓰이는 위키 기반의 사이트다.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구조는 비슷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링크를 걸고 수정할 수 있다. 언뜻 간단한 디자인이지만 위키리스크는 해킹과 개인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으며 정보 제공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웨덴과 아이슬란드 등 취재원 보호가 보장된 나라에 서버를 두고 있다. 자원봉사자만 800여명, 후원금도 답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샌지는 한때 이름을 날렸던 해커 출신이기도 하다. 어센지는 최근 영국 런던에서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수천여 건의 문건을 더 갖고 있다"고 추가 폭로를 시사했다. MSNBC는 "수사 망을 피해 잠적 중인 어센지는 같은 장소에서 이틀 이상 자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뉴스위크는 최근 "위키리크스의 다음 목표는 이라크 전쟁이며 군사 보고서가 공개되고 미군의 대량 살상 현황이 폭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국방부는 아파치 헬기 동영상을 유출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군인 브래들리 매닝을 구금하고 있다. 매닝은 23만여건의 기밀 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매닝이 체포된 뒤에도 고급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키리크스는 매닝이 제공한 자료를 곧 공개할 예정이다. 매닝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과 수천명의 미국 외교관들이 하루아침에 심장마비에 걸릴 만한 자료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센지는 위키리크스의 소개 글에서 미국 대법원 판례를 인용, "오직 자유로운 언론만이 정부의 비리를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자유로운 언론의 책임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국민을 타지에서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게 하거나, 테러 및 폭격에 의해 상해를 입게 하는 등 그 어떤 것이라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센지는 "자유와 정의가 결핍된 곳에서는 윤리적으로 무장된 시민의 저항이 불가피하다"면서 "우리는 모든 독재정권과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기관 및 비윤리적인 기업들에게 있어 단순히 국제적 외교관계, 선거, 정보의 자유에 대한 제재뿐 아니라 보다 강력한 수단을 통한 압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정부나 기관들 내부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양심과 윤리관에 의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위키리크스의 기본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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