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붙은 '삼성을 생각한다 2', 사실 이 책의 제목은 '언론을 생각한다', 또는 '한겨레를 생각한다'가 됐어도 좋았을 것 같다. 전편의 엄청난 성공에 기대려는 다분히 상업적인 기획의 냄새가 풍기지만 그래도 이 속편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뿌리 깊은 금기를 들춰내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정확히 전편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이 책 전편의 서평이 실렸을 때 제목은 "출간 이후의 풍경, 출간 이유를 보여주다"였다. 사실 속편의 주제는 정확히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언론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주요 언론사들이 이 책의 광고 게재를 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 책은 출간 5개월 만에 15만부가 팔려나갔다.

출판사의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었을 수도 있지만 한겨레까지도 이 책의 광고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하는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광고가 주요 수입원인 언론사가 광고를 거부할 이유가 있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 못하도록 삼성이 압박을 넣은 것일까, 아니면 삼성이 기분 나빠할까봐 언론사들이 눈치를 본 것일까. 속편에는 이 책의 출간 이후 뒷 이야기가 실려있다. 대부분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조선일보 광고 담당자는 "삼성을 문제 삼는 책은 광고할 수 없다"면서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는 항변에 "아무 책이나 광고할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누굴 잡으려고 이러느냐"고 화를 냈다고 하고 동아일보는 "단가가 맞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고 한다. 매일경제는 "미안하다"고만 했다고 한다. 무가지 메트로는 "광고 시안을 볼 수 있느냐"고 묻더니 다시 전화가 와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광고 게재를 거부했다고 한다.

한겨레도 다르지 않았다. 한겨레는 처음에는 "이번 주에 지면이 모두 차서 광고를 실을 수가 없다"고 했는데 사실 한겨레의 광고 지면이 3분의 1도 차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한겨레는 "담당자가 휴가 중"이라는 핑계를 대더니 이 사실이 알려지자 통상적인 출판광고 단가의 4배를 요구했다. "가격만 맞으면 언제든지 광고를 게재할 것"이라고 단서를 두긴 했지만 사실상 광고 거부였다.

경향신문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한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칼럼이 누락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이 책의 신간 안내 기사가 온라인에서 삭제된 일도 있었다. 대외적으로 쉬쉬했던 분위기의 한겨레와 달리 경향신문 기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다음날 경향신문은 1면 사고에서 "대기업을 의식해 특정 기사를 넣고 빼는 것은 언론의 본령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한때나마 신문사의 경영 현실을 먼저 떠올렸다"고 털어놓았다.

속편에는 미디어오늘 기사가 상당부분 전문 인용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국내 최대의 광고주의 보복성 광고 중단 방침에 두 신문사가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 신문사의 고위 간부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삼성을 비판하면 언제든지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처럼 될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경고가 언론계 전체에 먹혀들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대기업 문제를 전문적으로 취재해 왔던 한겨레 곽정수 기자가 항의 차원에서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반납한 것도 주목된다. 곽 기자는 노동조합 소식지에 기고한 글에서 "자기검열과 순치가 한겨레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돼 있는지 돌아볼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의 한 편집위원은 "삼성 관련 이슈를 다룰 땐 솔직히 마음 한 구석에서 삼성 광고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면서 "서로 말은 안 해도 다른 편집위원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9월 파기환송심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 받은 뒤 지난해 말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특별 사면을 받고 지난 3월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삼성은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 이후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에 2년 이상 중단했던 광고를 재개했다. 유전무죄의 초법적인 자본권력과 언론의 내면화된 굴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김 변호사의 폭로와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우리 사회는 과연 달라졌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주류 언론의 비겁한 침묵을 깬 누리꾼들의 분노와 일부 양심이 살아있는 기자들의 반성이다. 언론이 불의를 고발하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 보다는 이를 은폐하고 동조·공생하는 참담한 현실을 이 책은 폭로하고 있다. 삼성을 생각하는 동시에 삼성의 공범이었던 언론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다.

출판사 사회평론은 이 책을 당초 비매품 형태의 자료집으로 낼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어쨌거나 이 책은 기록으로서의 의미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삼성은 언론사들에게 이 책의 광고를 싣지 말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언론이 삼성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엎드려 기었을 뿐이다. 이 책은 한국 언론이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 앞에 얼마나 무력하고 취약했는지를 후대에 증언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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