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25일 최저임금위원회 6차 전원회의에서는 노동계가 21.7% 인상을 요구한 반면 경영계는 0.7% 인상을 제안해 교착상태에 빠졌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당초 26%와 0.2%를 제안한 바 있는데 서로 한발씩 물러선 상황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요구하고 있는 시급 5천원과 경영계가 마지노선이라고 제안한 4140원의 격차는 매우 크다. 올해 최저임금은 4110원이었다.

참여연대는 28일 성명을 내고 "경영계는 경기지표 호전에도 중소기업의 경영위기를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에 난색을 표하지만 중소기업 경영위기의 최대 주범은 다른 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설문 자료를 인용,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원자재 등 제조원가 상승(47.4%)'이고, 두번째는 '자금 등 유동성 확보(22.7%)'였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중소기업은 가장 큰 애로는 원하청 하도급 거래 과정에서 부리는 대기업의 횡포"라면서 "원자재 값은 뛰는데 납품단가를 동결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위기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두번째 애로는 유독 중소기업에게만 높은 은행 문턱인데 이는 정부가 금융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라면서 "중소기업은 재벌과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중소기업 실태조사에서 최저임금과 간접적이나마 관련된 '인건비 물류비 등 경영비용 증가'의 애로를 지적한 비율은 고작 5.6%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인력부족'을 지적한 비율이 10.9%로 두 배 가까이 더 높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 위기와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중소기업 경영상황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대기업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경기가 살아났지만 중소기업에겐 그 몫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면서 "대부분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저임금 노동자는 더욱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영계는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며 심지어 저축까지 가능하다"는 망언까지 늘어놓고 있다. 8원 인상안을 내놓았다가 노동계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 올해는 46.2%로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 최저임금과 평균임금 추이.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 단위는 원.  
 
올해 1분기 한국경제는 8.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요 증권사들은 2분기에도 전체 상장기업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70% 가량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노동부도 올해 전체 노동자 임금인상률을 5%로 전망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한국처럼 양극화가 심화된 나라에서 전체 노동자의 임금이 5% 오르는데 최저임금을 그보다 더 낮게 책정하자는 건 헌법 정신을 짓밟는 만행"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작년과 경제지표만 비교하더라도 올해와 같은 성장기에는 최저임금이 대폭 상승돼야 한다"면서 "노동부가 전망한 올해 노동자 임금의 평균 인상률을 감안하더라도 최저임금은 당연히 그 이상 올라야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도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설명해 준다. 참여연대는 "평균 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인 시급 518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 노동자 평균 대비 최저임금의 비율을 보면 1988년 25.5%에서 지난해 29.9%까지 늘어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3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최저임금을 5180원으로 인상한다고 해도 월급 기준으로는 108만2620원 밖에 안 된다. 보건복지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최저생계비는 올해 4인 가족 기준 133만원인데 여기에도 크게 못 미친다. 외국과 비교해도 미국은 한 시간에 1만648원, 영국은 1만1775원, 호주는 1만3685원, 네덜란드는 1만5011원으로 우리나라의 2~3배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열악한 최저임금 조차도 제대로 못 받는 노동자들이 많다는데 있다. 한국경제인총협회 추산에 따르면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전국적으로 180만명에 이른다. 올해 4월 민주노총이 전국의 임금 노동자 297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간당 4천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659명, 22.2%나 됐다. 이 비율은 특히 20대 미만과 50대 이상에서 높게 나타났다. 정규직은 11.7%인데 비정규직은 29.7%나 된다.

   
  ▲ 2011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하루 앞둔 28일 서울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열린 양대 노총 공동 기자회견에서 여성연맹의 한 조합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경영계는 올해 최저임금액(4,110원)에서 0.7%(30원) 인상한 4,140원, 노동계는 21.6%(890원) 인상한 5,000원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OECD 기준 한국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21개국 중 17위이며 ILO 기준으로는 59개국 중 48위에 머물고 있다. ⓒ노컷뉴스  
 
최저임금을 안 지키는 사업장이 많지만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저임금을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업장이 1만4896개로 2007년 4072개에서 2.7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다가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는데 대부분 경고에 그치는데다 반복해서 적발되더라도 벌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강제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최저임금 결정 시한을 하루 남겨둔 시점에서 노동계와 경영계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과연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흥정으로 해결할 문제일까. 최저임금위원회가 이달 29일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해서 제출하면 노동부 장관이 이를 8월5일까지 확정하고 9월1일부터 적용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가 각각 9명씩, 그리고 공익위원 9명을 더해 27명으로 구성된다.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 구성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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