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재무부 공무원 시절인 지난 1992년과 93년에 논문 이중게재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을 수개월간의 취재로 밝혀놓고도 보도본부 고위간부의 압력으로 메인뉴스에서 직권으로 삭제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해당 KBS 고위간부와 박재완 수석은 친구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5일 밤 박중석 기자를 포함한 KBS 보도본부 기자들에 따르면 이화섭 KBS 보도제작국장은 박재완 청와대 수석의 논문 이중게재 사실을 밝혀낸 <시사기획 10> '학자와 논문-2 공직의 무게' 편을 요약한 리포트가 지난 4일 <뉴스9> 큐시트에 잡혀있던 것을 직권으로 이날 밤 9시1분에 삭제 지시했다.

이화섭 KBS 보도제작국장, 박재완 수석 논문 이중게재 리포트 직권 삭제

 

   
  ▲ 지난 4일 밤 방송된 KBS <시사기획 KBS 10> '학자와 논문-2 공직의 무게'  
 
KBS는 다만 이날 밤 1TV <시사기획 10>와 2TV <뉴스타임>에서는 박 수석을 포함한 교수출신 1급 이상 공직자와 국회의원, 그리고 국책연구기관장 등 교수출신 1급 이상 고위공직자 32명 가운데 이중게재 의혹이 있는 공직자는 12명이라는 내용을 방송했다.

 

KBS <시사기획 10>은 이날 "박 수석은 공무원(재무부) 시절인 1992년과 93년에 각각 한글과 영문으로 학술지 출판한 논문에 대해 이중게재 의혹이 제기됐고, 인용이나 출처 표기는 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 박 수석은 이메일 답변을 통해 '당시에는 중복게재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었고 번역 출간도 허용했으며 더구나 이중게재 논문과 관련해 연구비를 받거나 업정으로 활용할 지위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방송했다.

그러나 KBS의 메인뉴스인 <뉴스9>에는 <시사기획 10>의 보도책임자인 이화섭 보도제작국장의 직권으로 이 내용이 담긴 리포트 일체가 빠진 것이다.

박중석 KBS 탐사보도팀 기자는 5일 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화섭 국장과 채일 팀장은 '뉴스9' 원고 내용 가운데 '이밖에 차관급으로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이인실 통계청장 등이 이중게재 의혹 대상에 포함됐습니다'라는 문장에 대해 '너무 오래된 것 아니냐, 좀 뺄 수 없느냐'며 수차례 압력을 넣어 뺄 수 없다고 하자 당일 9시뉴스 방송이 시작된 9시1분께 전화해서 최종적으로 빠졌다"고 밝혔다.

4일 메인뉴스 방송 시작 직후 최종 삭제 지시…"박 수석과 이 국장 친구 사이"

박 기자는 박 수석이 취재당시 취재내용과 보도할 내용을 다 인정했고, 다만 육성 녹취한 부분 대신 이메일 답변한 내용으로만 방송해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었을 뿐 취재진에 직접적인 압력은 없었다고 전했다.

 

   
  ▲ 지난 4일 밤 방송된 KBS <시사기획 KBS 10> '학자와 논문-2 공직의 무게'  
 
그러나 이화섭 국장이 뉴스 원고에 거론된 다른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던 반면, 유독 박재완 수석 내용만 문제를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박중석 기자가 지난달 23일게 직접 박 수석에 전화를 걸어 이 국장과의 관계를 물어보니 박 수석이 "친구"라고 답했다고 박 기자는 밝혔다.

 

또한 박 기자가 취재한 내용 가운데 박 수석에 대한 취재내용을 방송하기 전부터 이 국장이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박 수석이 어떤 경로로든 이 국장에게 보도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박 기자는 "이 국장이 박재완 부분에 대해 원고에도 쓰지 않은 부분까지도 알고 있었다"며 "지난 92∼93년 논문이며, 재무부 공무원 시절이었다는 것, 논문을 한글과 영어로 번역한 것 등 박 수석 논문에 관한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 기자만 아는 내용도 파악…'너무 오래된 내용, 빼줄 수 없느냐' 압력"

박 기자는 박 수석과 관련된 내용을 뺄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취재 대상은 90년 이후 씌어진 교수 출신 공직자들의 논문이었고, 이 기준에 부합하는 박재완 수석의 논문만을 뺄 수가 없었으며 이는 형평성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기자는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 국장이 친구인 박 수석을 구하려 한 것 아니냐"며 "다른 청와대 사람인 김태효 비서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 지난 4일 밤 방송된 KBS <시사기획 KBS 10> '학자와 논문-2 공직의 무게'에서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이에 대해 이화섭 KBS 보도제작국장은 5일 밤 전화통화에서 각종 의혹에 대해 "홍보실을 통해 답변하겠다"면서도 박 수석의 보도삭제 요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본인(기자) 이야기는 틀린 얘기"라고 답했다.

 

이화섭 국장 "본인 얘기는 틀린 얘기…홍보실 통해 답변할 것"

한편 박재완 수석은 지난 2008년 7월18일 발매된 신동아 8월호와의 인터뷰에서 "KBS의 경우 방송의 중립성 측면도 고려해야겠지만, 정부산하기관장으로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최적임자인지를 한 번쯤 검증하고 재신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혀 KBS를 관영화하려는 노골적인 속내가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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