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기사는 카메라와 필기구를 못 들고 가게 했다거나 클린룸에 들어가기 전 화장을 지우라고 지시를 받았다거나 30초 동안 에어샤워를 해야 했다거나 조수인 사장이 "영업 기밀이니 라인 배치는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했다"거나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반도체 공정을 하나하나 소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시스템 반도체 부문을 강화할 거라는 게 도대체 이날 견학의 목적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 서울경제 4월16일 13면. | ||
반도체 공장에 티끌 하나 안 보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과 백혈병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먼지가 많아서 백혈병에 걸리는 건 아니니까. 문제는 이 공장에서 유해 화학약품을 다루는 방식이다. 클린룸의 청결한 환경은 반도체의 수율을 높이기 위한 것일 뿐 노동자들의 안전에는 취약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고 본질이다. 방진복과 마스크만으로는 유해 화학약품과 가스로부터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
▲ 파이낸셜뉴스 4월16일 3면. | ||
파이낸셜뉴스는 "S1라인 최첨단 설비·자동화로 수공정 거의 없어"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수공정이 없다면 질병에 걸릴 이유도 없다. 작업 환경이 그만큼 다르다는 이야기인데 이 신문은 아무런 의혹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 신문은 놀랍게도 백혈병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삼성전자의 파란색 로고가 티 없이 청명한 봄 날씨와 어우러져 깨끗한 인상을 줬다"는 대목은 중학생이 쓴 수학여행 후기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 신문은 "이동하는 동안 눈에 들어온 사업장은 말끔히 정돈된 정원과 분수대, 편의시설, 체육관, 잔디 운동장, 질서정연한 건물 등 다양한 시설이 어우러져 공장이라기 보다는 대학 캠퍼스에 온 듯 했다"고 감상을 적고 있다. "문득 바라본 6층 입구에는 '역사 창조의 중심에 우뚝서자'는 문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며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 역사의 중심에 서려는 삼성의 파격적인 행보와 오버랩 됐다"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찬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 매일경제 4월16일 15면. | ||
경향신문은 "'작업장 안전' 짧은 공개… 실체 파악 한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현장 공개는 안전수칙을 지키고 최첨단 설비를 갖췄다는 삼성전자의 해명을 듣는 자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백혈병 발병, 삼성 해명은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전직 반도체 엔지니어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10년 동안 유지보수를 맡았던 그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손으로 직접 웨이퍼를 독한 화학약품에 넣었다 뺐다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관련기사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IBM과 페어차일드, 산요, 소니 등의 반도체 회사들에서 유해 화학물질 중독 사고가 보고된 바 있다. 설령 두 차례 역학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험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건 아무리 첨단 자동화 설비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위험 요인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의지를 보이는 게 삼성전자의 이미지 제고에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15일 설명회에서도 경제지들은 거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잘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괜히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한 경제지 기자는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오늘 처음 들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삼성전자가 공장을 공개한 이유조차 모르고 왔거나 큰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피해자들 모임인 반올림 소속의 한 회원이 기자들이 탄 버스에 오르려고 해 일부 기자들의 출발이 지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