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찰의 창의력은 참으로 놀랍다. 얼마 전에는 전교조 교사들의 민주노동당 가입 여부를 확인한다며 PC방에서 남의 주민등록번호 80개를 이용해 로그인하였다. 우리가 통상 ‘해킹’이라고 부르는 짓거리이다.

지난 2일에는 경찰의 ‘기지국 수사’의 실태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매년 반기별로 감청 통계를 발표해 왔는데, 이번 통계에서는 휴대전화 통화내역이나 위치정보 제공건수가 무려 1577만8887건에 달했다. 이 수치는 전년도 동기 대비 무려 67배에 달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해명인즉슨, 그간 압수수색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던 ‘기지국 수사’가 이번 통계서부터 포함되어 수치가 불어난 것이라고 했다. 기지국 수사의 대부분은 경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기지국 수사란 무엇인가. 특정 시간에 한 기지국에서 잡히는 휴대전화번호를 모두 제공받는 것이다. 강력범죄 용의자를 쫓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2009년 하반기에만 1257건의 기지국 수사가 이루어졌는데, 한 번의 수사마다 통상 1만2000개의 전화번호 수가 제공되었다고 한다. 기지국 수사 방식에 의하면, 한두 명의 용의자를 추출하기 위하여 범죄가 일어난 주변 지역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한번에 1만2000명 가까이 수사선상에 올랐었다는 얘기이다.

특정지역 집회 참석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휴대전화번호 및 위치정보를 경찰이 입수해 왔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과거 뿐 아니라 실시간으로 제공받았을 수도 있다. 무서운 일이다.

사실 이번 감청 통계에서 놀랄 일은 그 뿐만이 아니다. 사상 최대치인 9497건의 감청 수치와 97.7%를 차지하는 국가정보원의 감청 비중도 경이롭다. 감청 수단으로는 인터넷 감청 증가가 두드러진다. 2009년 전체적으로는 통계 발표 이래 최대 건수이자 전체 감청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율이 62.1%를 달하였다. 이러한 인터넷 감청에 인터넷 메일 뿐 아니라 인터넷 회선 전체를 감청하는 ‘패킷 감청’이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해 보면, 인터넷 이용자의 통신 비밀이 큰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통신 이용자의 성명이나 주민등록번호가 수사기관에 제공된 건수 역시 2009년 전체적으로 6백만 건을 돌파하였는데 그 중 경찰이 무려 77.8%인 535만1080건을 제공받았다. 경찰이 범죄수사를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촛불시위 당시부터 경찰이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게시물을 사찰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되어 온 것을 상기해보면 찜찜하기 이를 데 없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인터넷 실명제가 경찰의 사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형국이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최근 스마트폰을 비롯한 통신수단의 발달로 일반 시민의 의견 발표와 소통이 만개할 것이라는 기대가 일고 있다. 그러나 통신수단이 발달할수록 국정원과 경찰의 감청과 감시가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비극적이다. 사람 대신 쫓아오는 통신 미행은 대상자가 전혀 그 낌새를 알아챌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음침하다.

인터넷 패킷 감청도, 기지국 수사도, 상관없는 사람들의 통신 비밀을 너무 많이 침해한다는 점에서 지독한 인권침해이다. 수사 편의를 위해 갖은 편법이 횡행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실태를 이제 겨우 더듬더듬 알아가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과 국정원은 여기서 한술 더 떠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휴대폰과 인터넷 감청을 더욱 확대해야 한단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사상 최대의 감청공화국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