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병사의 가족들이 언론보도와 정부·군 당국의 정보은폐에 대해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실종자 46명의 가족 대표로 구성된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대변인 이정국)'는 31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 부대 내부의 안보교육관 강당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전원에 대해 마지막 1인까지 구조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현재까지 진행된 해군 및 해경의 구조작업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제공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한 실종자 가족의 의혹 해소를 위해 별도의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밖에도 가족협의회는 언론에 대해서도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 잠입해 취재하는 행위, 확인되지 않은 보도와 추측 보도를 하지 말고 △영외 가족을 취재하지 말라고 했다. 이정국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무분별한 취재 경쟁과 오보, 사실과 다른 발표 내용으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며 "가족들이 통곡하는 모습이나 링거를 맞고 있는 장면을 내보내면 기분이 좋으냐"고 비판했다.

실종자 가족, 언론에 "추측보도 삼가해야…통곡하는 모습만 내보내나"

특히 실종자 가족들은 일부 기자들이 해군2함대 밖의 가족이나 친지 취재를 위해 집에까지 찾아가 취재를 한 사례도 있다는 점을 들어 전날(30일) 대기소로 찾아온 기자들에게 취재에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 방송사 기자가 전했다.

   
  ▲ 지난 29일 오후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군의 브리핑을 듣고 나오는 실종자가족들이 군관계자들을 붙들고 군의 늑장대응을 원망하며 실종된 가족을 살려내라고 통곡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번에 실종된 한 병사의 가족인 김모씨는 3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정부와 군 발표 내용 위주로 보도되는 언론과, 최소한의 정보조차 통제하고 있는 군 당국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마치 정부와 군 당국이 구조활동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되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다"라며 "또한 해군이 초기 대응했던 것에 대해 가족들에게 정보를 알려줘야 하는데 (최소한의) 그것조차 얘기하지 않고, 구조작업 하는데 장비를 얼마나 어떻게 투입되는지에 대해서도 실제와 언론보도가 맞지 않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모 장성, '국익위해 참아달라'? 어떻게 이런 말 하나"

그는 최근 가족들이 함대 사령관을 만나려고 본관 앞에서 항의했을 때 모 장성이 했던 말을 거론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엊그제 2함대 사령관 만나러 가겠다고 하는 와중에서 어떤 기자가 뭐라고 물어보니 그 자리에 있던 투스타(소장급) 장성이 '여러분이 참아달라, 국익을 위해서'라고 하더라. (병사 46명을 실종시켜놓고) 국익이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 해군제2함대사령부 연병장에 설치된 50여개의 군용천막에 대해 실종자가족들은 분향소로 쓰려고 세운 것이라고 보고 모두 무너뜨렸고 그 와중에 가족들 사이에 숨어들어온 평택경찰서 정보과형사들을 발견하고 신분증을 뺏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씨는 군 당국의 철저한 정보통제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사고 당시 천안함이 왜 그 자리에 갔는지 △속초함이 왜 발포했는지 △생존한 승조원들이 구조될 당시에 한 승조원이 '내가 마지막'이라고 했다는데 그렇게 단정한 이유가 뭔지 등"이라며 "군에서 오픈을 안해주니 자꾸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없던 얘기가 더 생기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한 생존 병사들과의 접촉을 막고 있는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김씨는 "생존한 친구들과 왜 접촉을 막느냐"며 "사고난 시각 실종된 애들이 모두 함미에 있었는지, 함미 쪽에 있었다는 32명 외에 나머지 병사는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이런 얘기는 무슨 근거로 하고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생존자 접촉 왜 막나…가족에까지 오픈 안해줘 의혹 눈덩이"

그는 또 △구조 이후에도 생존자들이 함내 식당에서 따로 모여서 함장으로부터 30여 분간 지시를 받았다는데 함구령을 지시한 것인지, 도대체 무슨 얘기를 전달한 것인지 의문이며 △해경의 구조 동영상 중에 천안함 풀넘버가 찍혀 거꾸로 침수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함미 부분인데 어떻게 된 것인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항해일지와 통신일지, 미국과 일본의 위성사진이라도 판독해 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그는 "왜 실종자 가족의 오열하는 모습만 기사화하느냐"며 "이제 시간이 흘러 엿새째 되니 가족들이 차분하게 냉정을 찾을 수 있도록 기사도 냉정하게 정리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의 처우에 대해 김씨는 "직접 가족들을 지원해주는 현역 군인은 잘 챙겨주려고 노력은 한다"면서도 "우리 원하는 것은 실종된 애들을 먼저 찾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은 '희망'이라는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제 오늘부터는 이제 '기적'을 바라는 심정"이라고 했다.

"정부·군 믿고 기다렸다가 뒤통수 맞은 격"

그는 지난 일주일 가까이 동안 정부와 군 당국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런 일을 경험해본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경황이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정부와 군이 제대로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바랐다가 뒤통수 맞은 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뭘 해준 건가. 산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쫓아올라가 보기라도 할텐데, (바다에서 실종되다보니)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우리 애들이 우리 곁으로 온전한 몸으로 와줬으면 좋겠다. 또한 하나의 왜곡됨이 없이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