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로 악질적인 악역은 해본 적이 없거든요. 20분 요약 영상을 봤는데 나쁜 놈이더라구요.”

‘소시민’ 딱지를 달고 다닌 손현주(45·사진)가 악역을 맡은 것 자체가 의아했다. 마산 MBC(연출 전우석, 대본 김운경)에서 오는 26일 방송하는 3·15의거 50돌 드라마 <누나의 3월>에서다. 그는 지난 1960년 3·15 부정선거부터 4·19혁명까지를 다룬 이번 드라마에서, 마산 시위 현장 발포 책임자이자 친일 출신의 공안 형사 박 주임을 연기했다. 박 주임은 3·15 부정선거를 폭로한 남매를 붙잡고, 남동생을 볼모로 양미(<돌아온 뚝배기> 김지현씨)를 가로채는 등 “몹쓸 짓”을 많이 했다.

“박 주임은 국회 조사단이 와서 발포 이유를 묻자 ‘돌멩이가 날아와서 총알에 맞아서 휘어져 내리 꽂혔어요’라고 궤변을 해요. 국회 조사단이 ‘지금 말이라고 하냐’고 되묻자 ‘최선을 다해 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죠. 뻔뻔한 캐릭터죠.”

이런데도 그가 선뜻 악역을 자처한 배경이 궁금했다. 지난해 KBS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쥔 그가 19년 만에 극중 변신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의 달’, ‘옥이이모’를 쓴 김운경 작가와는 1991년에 첫 출연한 드라마 ‘형’을 같이 했고 인연이 굉장히 깊어요. 대본을 봤을 때 선뜻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또 마산 MBC 분들을 직접 만나보니까 제가 창피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어요.”

   
  ▲ 이치열 기자 truth710@  
 

드라마 <누나의 3월>은 지역 방송이 3·15의거를 다룬 사실상 첫 드라마다. 70분 2부작에 제작비 5억 원이 투여됐고, 김주열 열사 출신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출연에 나서는 등 지역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준비 기간만 2년여 걸린 작품이다. 지역의 열기에 “제가 창피할 정도였다”고 거듭 말할 정도로 손현주는 연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손현주가 박 주임이라는 인물에 들어갔을 때 박 주임의 향이나 냄새를 낼 수 있느냐는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또 박 주임이 실존 인물이었고, 당시 고초를 당한 마산 시민들이 현존하고 있는 것도 고민의 대상이었다.

“아무래도 발포 명령을 내리는 시점에서 갈등이 컸죠. 그 당시에 제가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아직도 마산에 생존해 계신 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물론 대본에는 발포라고 써 있지만, 합천에서 새벽에 찬바람 맞아가면서 발포 명령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 “고민”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항상 순한 양 같은 연기만 어떻게 합니까”라고 되묻던 그도 시민들에게 발포를 하는 장면에선 떨릴 수밖에 없던 셈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고 주장하기엔 그 시대에 짓밟힌 사람들의 상처는 현재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 마산 MBC <누나의 3월>. 손현주 김지현씨. ⓒ마산 MBC  
 

그는 “민주화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편안히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희생된 분이 안 계셨고 (시민들이)일어서지 않았더라면 아마 대한민국도 이렇게 많이 번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극중 인물 중 칭찬을 해달라는 말에 양미 역을 맡은 김지현을 꼽았다. 그는 “김지현씨가 1~2부를 책임졌다고 보면 되고 나머지는 카메오”라며 “참 속이 깊은 연기자,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연기자”라고 평가했다.

지역 MBC 제작진의 열정, 손현주의 악역 연기, 김지현의 내공 깊은 연기가 어우러진 <누나의 3월>은 오는 26일 첫 방송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까. 손현주는 “예전 같지 않아서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위에 있고, 싱겁고 짜고 맵고 단 드라마의 향이나 맛을 다 알아버린다”며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얼마나 공감할지 궁금해했다.

그렇지만, 그 시대의 진정성을 담은 연기엔 시청자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그 모습에 3·15 50돌에 이뤄진 인터뷰에 나선 연기자 손현주의 진미를 맛볼 수 있었다.

“진정성은 시청자들이 금방 알아요. 거짓 눈물을 흘리는지 거짓 웃음을 하는지 시청자를 못 속입니다. 드라마가 사랑 받으려면 죽을 때까지 진정성을 잊지 말고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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