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한 검찰과 언론의 인권침해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부녀 '무죄'

대부분의 언론은 처음에 작은 뉴스로 다뤘다. 2009년 7월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으로 2 명이 숨지는 그저 그런 정도의 사건이었다. 방송은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일부 언론에서도 초기에는 조심스럽게 중립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이 사건이 2009년 9월 14일 검찰의 일방적인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모든 언론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내용은 엽기적이고 인권침해소지가 다분했지만 검찰의 발표를 마치 진실인양 믿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개선되지 못했다. 당시 9월 14일 15일자 보도에서 ‘청산가리 막걸리’ 검색을 해보면 전국의 신문, 방송이 어떤 식으로 보도했는지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부녀 부적절한 관계가 발단”(문화일보). “근친상간 숨기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세계일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부녀 불륜 숨기려 범행”(아시아 경제)...

인용부호를 달았지만 검찰의 발표란 내용이 제목에 조차 없다. 이런 식의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보도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고 사건은 엽기적으로 확대, 전국을 뒤흔들었다.

심지어 “15년 성관계 부녀, 짜고서 어머니에게 청산가리를”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범인은 남편과 딸” 등으로 범인을 단정했다. 차마 보도하기조차 민망하고 믿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언론은 검찰의 발표를 나팔수처럼 떠들어댔다.

내용이 엽기적이고 기상천외 할 경우, 저널리즘에서는 더욱 신중하게 보도하라고 주문한다. 심지어 검찰의 발표를 ‘진실인양 보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오히려 검찰의 발표내용이나 수사과정의 치밀함, 논리성, 물증여부를 검증하고 확인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용감성, 무모함, 상업성은 이런 저널리즘의 기본은 간단하게 무시한다. 이들이 인권침해, 명예훼손으로 법적소송을 한다면 언론이 도저히 이길 수 없지만 힘없는 사람들은 막강한 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책임도 제대로 물을 수 없는 구조와 관행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이 재판에 계류중이었고 1심판결도 나오지 않았지만 저널리즘상에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 지난해말 언론정보학회에서 ‘청산가리 막걸리 보도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언론의 보도는 문제투성이었고 1심 판결에서 유죄를 받기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는 반향없이 흩어졌다.

캐나다 동계올림픽 금메달 소식으로 국민이 흥분하고 있는 사이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홍준호)는 ‘청산가리 막걸리 부녀’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청산염을 탄 막걸리를 마시게 해 각각 살인과 존속살인, 살인 등의 혐의로 각각 구속 기소된 A씨(60.전남 순천시 황전면)와 A씨의 딸 B씨(27)에게 사형과 무기징역이라는 극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고 한다.

물론 아직 1심 재판 결과일 뿐 최종심은 아니다. 허나 이 사건은 이미 국민 사이에 관심권밖으로 밀려났다. 모두가 이 사건을 잊어도 검찰과 언론은 반성하고 재발방지에 나서야 한다. 2심, 3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그때 가서 결과를 보고 판단, 보도하면 된다.

1심 판결을 존중하고 그 이전에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개개인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 주자. 무죄로 풀려난 아버지와 딸은 이미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언론의 무자비한 보도 때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짐승같은 인간’이라며 돌팔매질을 받았을 정도였다. 재판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여론재판으로 유,무죄가 결론난다면 이것은 법치사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1심판결을 보면 문제의 아버지와 딸은 사랑한 아내이자 어머니를 졸지에 잃은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다. 이 피해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검찰에 의해 극형에 처해야 할 살해공모자가 됐고 언론은 덩달아 과장, 확대보도했다. 얼마나 기가막힌 일인가. 누가 언론에 그런 초법적 권한을 줬는가. 약자의 가슴에 두 번 세번 못질을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부당함을 알고도 말리기는커녕 ‘잘한다’고 더욱 요란한 북소리를 울리는 행태는 공동정범의 죄를 구성한다. 설혹 유죄가 선고된다하더라도 법의 처벌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검찰과 언론의 기본 자세를 되돌아보고 선진사회에서 소중한 인권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는 교훈과 반성, 다짐의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