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언론사 입사 시험을 ‘언론고시’라고 말한다. 국가고시만큼 어렵고 준비하는 기간이 고된 탓에 ‘고시’라는 단어가 붙었을 게다. 필기시험을 보고 실무테스트와 면접으로 인재를 뽑는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의 채용과 비슷하지만 수많은 언론사 지망생들은 언론사 입사를 위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4년간 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언론사 입사 시험은 고시에 가깝다. 언론사 입사 지망생은 올해를 ‘빙하기’로 기억할 것이다. 채용 공고가 늦어져 맘고생이 심했을 뿐 아니라 아예 채용을 하지 않는 언론사도 많았기 때문이다. 6월 SBS 공채로 시작해 12월 KBS 공채로 끝난다는 언론사 채용 공식은 들어맞지 않았다.

▷언론고시생 체감기온 영하 10도=임철원씨(30·가명)는 지난 2007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쉽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기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1년 반 정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언론사 입사 시험을 보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 입사는 예년보다 더 힘들어졌다. 6월 SBS 공채를 시작으로 언론사 채용 공고가 쏟아져야 하지만 올해 5월부터 8월까지는 거의 공채가 없었다. 임씨는 “올해 SBS, KBS, YTN, 한겨레, 경향신문이 아예 채용을 하지 않았다”며 “안 그래도 문이 좁은 상황에서 공채를 뽑지 않는 언론사까지 늘어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힘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신문박람회를 다녀왔다는 최정(24)씨는 “서울신문, 한국경제, 한겨레 등의 채용설명회를 들었는데 한겨레는 설명회는 했지만 올해 공채 계획은 없었다”며 “뽑지도 않을 거면서 설명회는 왜 했느냐”고 하소연했다. 경향신문, 세계일보, 한겨레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사가 예년 수준으로 수습기자를 채용했지만 방송사 채용 공고가 나지 않으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의 체감경기는 더욱 좋지 않았다.

▷아나운서·PD지망생에게 올해는 ‘최악’=기자 지망생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에 속한다. 아나운서와 PD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올해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이지혜씨(26·가명)는 지난해 말 슬럼프가 찾아왔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서류 통과도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서류를 통과해서 면접을 본 것은 딱 1번. 최종면접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재능이 없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어 올해 초까지 마음을 잡지 못했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힘을 내려고 했지만 이번엔 채용 공고가 나지 않았다. 이씨는 “올해 방송3사가 아나운서를 뽑지 않아 원서를 낼 기회조차 없었다”며 “이번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상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라디오PD 지망생 노민정씨(25·가명)는 “작년부터 언론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들려서 채용이 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안 뽑는 언론사가 많은데다 KBS마저 공고조차 내지 않고 있어 너무 답답하다”며 “부족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러다 올해는 아예 안 뽑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아나운서와 PD 준비생에게 올해는 ‘최악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원비만 수백만 원…“아나운서는 꿈 아닌 현실”=이현지(24·가명)씨는 지난해 겨울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녔다. 일주일에 1∼2회씩 3∼4개월을 다니는 게 보통이지만 지역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이씨는 방학 동안 아카데미를 수료해야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3∼4일씩 2달 만에 속성으로 과정을 끝냈다. 기초반과 심화반 합해서 300만 원 넘는 학원비를 냈다. 친척집에서 다녔던 이씨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부산에서 온 친구는 자취방을 얻었고, 또 다른 친구는 고시원에서 아카데미를 다녔다. 이씨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 바로 아카데미”라면서도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다니고 나니 혼자 했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군포에 있는 케이블 방송사 최종면접에서 “사는 곳이 군포가 아닌데 집은 어떻게 할 거냐”, “보수가 적은데 다닐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고는 ‘아나운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확실성이 가장 힘들다”=라디오PD 지망생인 노민정씨는 TV PD와 기자 공채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라디오PD는 애초 적게 뽑거나 아예 뽑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민정씨는 불확실하다는 것이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유명한 강사 수업을 듣고 교재를 몇 번 보는 식의 정형화된 공부방법이 없어 처음 준비할 때는 막막했다”며 “미친 듯이 스터디 준비를 하다가도 이렇게 공부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힘들다”고 말했다. 언론고시의 불확실성은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평상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공부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학교 언론고시반에서 언론사 채용을 준비하는 왕연진씨(23)가 일반 기업 입사를 함께 준비하는 것도 언론고시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래도 내년에는 뽑겠지요”=임철원씨가 1년 반 외도 끝에 다시 언론고시를 준비하게 된 이유는 기자가 꼭 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임씨는 “신문사 편집국장은 미국에서 야구감독, 영화감독과 함께 꼭 해볼 만한 직업 중 하나라고 할 만큼 매력적인 일”이라며 “정치부 기자가 되어 권력에 맞서 사회에 기여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아나운서 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이지혜는 “그래도 올해 공채가 없었으니 내년에는 뽑지 않겠느냐. 5년 내에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상상을 하며 오늘도 힘을 낸다”며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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