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들의 기업 기사는 대부분 기업들이 제공한 보도자료에 기초해서 작성된다. 천편일률적인 비슷비슷한 기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 휴대폰이 북미 시장에서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고 내년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35%에 이를 것이라는 등의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낙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서울경제는 13일 1면에 "한국 휴대폰 '노키아, 게 섯거라'"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내걸었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내년 판매목표를 올해보다 대폭 늘리는 등 일제히 공격경영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아시아경제는 12일 1면 "삼성폰 내년 글로벌 점유율 22%"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내년부터는 휴대폰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20%대의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삼성전자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 서울경제 11월13일 1면.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운영체제 '바다'를 공개했다는 소식도 홍보성 기사로 도배됐다. 아시아경제는 12일 "히든카드 빼든 삼성 '아이폰 비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하드웨어 경쟁력을 소프트웨어로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음을 의미한다"는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경제는 9일 "삼성이어 LG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도전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LG전자의 스마트폰 전담 사업부 소식을 비중있게 전하기도 했다.

   
  ▲ 아시아경제 11월11일 1면.  
 
경제지들은 유난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친절하다. 이들이 보도자료를 낼 때마다 빠지지 않고 기사를 내보내는데 누가 더 그럴 듯하게 잘 포장하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들 기업들이 국내 대표기업이고 최근 놀라운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이른바 '빨아주는' 기사가 이들을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들고 오히려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을 보면 올해 3분기 기준으로 노키아가 38.0%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21.0%와 11.0%로 그 뒤를 쫓고 있다. 한때 이 시장의 맹주였던 모토로아와 소니에릭슨은 4.7%와 4.9%까지 추락했다. 주목할 부분은 애플과 RIM, HTC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의 약진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휴대폰 시장의 최대 화두가 스마트폰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가 블룸버그통신 자료를 인용해 정리한 자료를 보면 세계 휴대폰 업체를 8개라고 가정할 경우 노키아는 판매수량에서 44.6%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매출액 기준으로는 30.2% 밖에 안 된다.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저가 휴대폰 판매에 주력해 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노키아 보다는 하이엔드 제품 판매가 많기 때문에 판매수량과 매출액 점유율이 비슷하다.

   
  ▲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추이. 신한금융투자.  
 
애플과 RIM, HTC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을 보면 판매수량으로는 2.3%와 3.2%, 1.0% 밖에 안 되는데 매출액으로는 9.6%와 5.7%, 3.9%씩이다. 수익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모두 20%가 넘는데 노키아와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10%를 조금 넘는 정도다. 애플은 휴대폰 부문 매출액의 삼성전자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영업이익으로는 절반이 넘는다.

   
  ▲ 주요 휴대폰 업체 영업이익률 비교. 신한금융투자.  
 
신한금융투자 하준두 연구원은 "최근 한국 휴대폰 업체들의 실적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향후 휴대폰 산업은 스마트폰 부문에서 결정될 것"이라면서 "애플의 아이폰이나 RIM의 블랙베리에 필적하거나 이를 뛰어넘을 스마트폰을 보유하지 않으면 진정한 승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내년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폰 비중이 21%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전체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30%를 넘어섰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4%도 안 된다. 시장 점유율 2위와 3위의 국내 업체들이 이처럼 스마트폰 부문에 취약한데는 폐쇄적인 국내 무선 인터넷 시장의 영향이 크다. 무선 인터넷 요금이 비싼 탓도 있고 이동통신사들이 음성통화 매출 하락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데이터 통신 활성화를 꺼려왔던 탓도 있다.

심지어 해외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국내에 들여올 때는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 기능을 빼는 등 오히려 스펙을 다운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햅틱 아몰레드를 출시하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와이파이 보다는 DMB 기능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군색한 변명을 내놓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홍보성 기사가 후진적인 관행을 고착화하고 기업들의 변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던 셈이다.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35%라는 자화자찬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4%에 지나지 않는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이미 확고한 입지를 굳혔고 노키아가 심비안이라는 휴대폰 운영체제를 주력으로 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이제서야 운영체제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나 운영철학에서도 이미 한참 뒤져있다는 이야기다.

과거 휴대폰 시장의 맹주였던 모토로라가 스타택 이후 디지털화에 적응하지 못해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내줬다가 2004년 레이저를 출시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다시 고꾸라진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모토로라 레이저는 세계적으로 1억대 이상 판매돼 단일 모델로는 최대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때 20%에 이르렀던 점유율이 올해 2분기에는 5.46%까지 추락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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