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 등에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에 맞서 수신료거부·광고불매운동을 벌이라는 글을 올린 직원에 대해 중징계를 내려 파문이 커지고 있다. 당사자는 징계를 수용할 수 없다며 재심을 신청했다.

14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징계통보서에 따르면, KBS는 13일 저녁 황보영근씨에게 취업규칙 제4조(성실)와 제5조(품위유지)를 위반했다며 정직 3개월에 처한다고 통보했다.

KBS, 다음 아고라서 KBS장악 비판한 직원에 정직 3개월 중징계 파문

   
  ▲ 한 누리꾼(아이디 '아옥련') KBS 노조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8월1일 다음 아고라 토론 게시판에 올린 글.  
 
KBS는 지난해 8월3일 다음의 토론 사이트 '아고라'에 올라온 ID '아옥련'의 'KBS 노조위원장 이하 3명은 국민이 제명했다'는 게시글에 대해 황보씨가 ID 'mypaul'을 사용해 단 댓글을 문제삼았다. 황보씨는 "KBS 노조원이고 엔지니어입니다. 죄송스러운 말 뿐입니다. 만약 정(연주) 사장 보내고 낙하산 못막는다면 수신료 거부운동에 광고 불매운동도 추가하십시오. 현재 조중동 광고불매식으로 하는 겁니다. 한 놈만 팬다는 생각에 조선보다 KBS를 제일 먼저 패겠다고 하십시오"라고 댓글을 달았다.  

KBS는 이에 대해 "비록 표현의 자유가 넓게 보장된 포털사이트 공간이기는 하나 스스로 KBS 직원임을 밝히면서 '수신료 거부운동과 광고 불매운동'을 하라는 선동성 의견을 개진해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공사의 재정적 존립기반마저 무너뜨리는 명백한 해사행위를 해 공사 직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했다"며 "사내게시판(KOBIS)에 이 글이 옮겨졌는데 자신이 썼다고 시인해 많은 직원의 사기를 저하시켰다"고 주장했다.

KBS는 지난달 16일 황보씨가 다른 사람이 작성한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린 '펌-KBS수신료 거부 길라잡이'도 문제삼았다. 이 글에는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고지를 해지하는 방법' 'KBS의 수신료 담당부서에서 확인전화가 올 경우 대응하는 방법' '수신료 납부거부 이유를 둘러대는 방법' 등이 담겨있다. KBS는 이 글에 달린 댓글 '한 푼의 수신료를 더 걷기 위해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나 하시는지요?' '더운 날에 수신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등을 제시했지만, 글을 퍼 게시판에 올린 행위가 어떻게 취업규칙을 위반했는지는 거론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적 달성 위해 존립기반마저 무너뜨려…사기저하"

   
  ▲ 황보영근씨가 지난해 8월3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오른 글에 게재한 댓글 이미지.  
 
그런가 하면 KBS는 황보씨가 김제송신소로 전보돼 근무하는 과정에서 지난 3월25일 보수업무(통상근무)로 지정되자 김제송신소장과 선임 팀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낸 것까지 문제삼았다. 메일의 내용은 "무리수를 두지 않겠지 기대했다가 엄청 실망했습니다…무리한 인사에 따른 부작용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인사를 통해 저를 통제하겠다, 악용하겠다는 의사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부장과 노조간부를 통해 공식 의견제시를 할 것이고, 소장의 독단적인 인사횡포를 고발할 것"이라는 요지다.
 
KBS는 이 이메일 내용에 대해 "협박조의 메일을 상급자인 김제송신소장과 선임 팀원에게 보내 부서장의 정당한 업무상 지휘명령에 항명하는 등 직장 근무질서를 문란케 했다"고 주장했다. 

KBS는 또 황보씨가 지난해 9월 김제송신소 전보 이후 지난달 16일까지 모두 15회에 걸쳐 근무시간 중에 사내게시판(코비스)에 업무와 무관한 게시물을 올려 김제송신소장과 선임 팀원으로부터 자제를 요청받았음에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 "본부장이 시키는 건가"라면서 직장 근무 분위기를 어지럽혔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황보씨는 14일 "인터넷 포털에서 익명에서 쓰는 것을 이 자리에서 단죄하려 하느냐. '낙하산을 못 막는다면'이라고 썼듯 낙하산 사장이 들어오면 정권에 봉사하게 되고, 그것은 공익을 해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공익을 지킬 의도로 쓴 글"이라며 "이를 두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존립기반을 흔든다'고 표현한 것은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만 나무라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당사자 "공익을 지킬 의도로 쓴 글, 포털에 익명으로 쓴 글까지 단죄?…수용못해"

   
  ▲ KBS ‘사원행동’ 소속 기자·PD·직원들이 지난해 8월8일 이사회에서 KBS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이 의결된 뒤, 사옥 1층 민주광장에 모여 공영방송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던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710@  
 
황보씨는 수신료 거부 관련 글을 퍼올린 것과 관련해 "수신료를 인상하려면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야지, 국민의 호주머니만 봐서 되겠느냐는 취지로 퍼 올린 것"이라며 "이를 문제삼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보수업무(통상근무) 배치 항의메일을 문제삼은 것에 대해 황보씨는 "보수업무는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게돼 사실상 주중엔 본사로 올라가거나 다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날 통제하기 위한 인사가 아니냐'는 항의를 한 것"이라며 "이런 항의 내용이 징계의 대상이라는 것도 자의적일 뿐 아니라 어떻게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연실색할 뿐"이라고 밝혔다.

황보씨는 이번 징계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오는 17일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한편, 인사위 재심을 신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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